1999년 대구광역시에서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하여 설립된 단체. 제1차 인민혁명당 사건과 함께 제2차 인민혁명당 사건이라고도 하는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은 박정희 정권의 대표적 인권탄압 사례로 꼽힌다. 1974년 4월 25일 중앙정보부는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를 조직하고 국가...
1915년 대구에서 결성되어 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을 대표한 항일 독립운동 단체. 광복회(光復會)[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는 무장투장을 전개하여 독립을 달성하고자 하였던 대표적인 국내 독립운동 단체이다. 광복회는 1915년 초 대구에서 박상진(朴尙鎮)을 중심으로 창립한 재건 달성친목회[조선국권회복단]와 1913년 경상북도 풍기에서 채기중(蔡基中)을 중심으로 창립한 풍기광복단(豐...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귀임(金貴任)[1911~?]은 1911년 9월 23일 대구부 남성정[현 대구광역시 중구 남성로]에서 태어났다. 경성여자상업학교 재학 중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여 일어난 제2차 서울 연합 시위에 참여하였다....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무열(金武烈)[1887~1929]은 1887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계산동1가·계산동2가]에서 태어났다. 중국 만주에서 대공단(大公團)을 조직하고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김성열(金聖烈)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1908년 7월 대구에 설치되어 운영된 교정 시설. 대구형무소는 사회로부터 격리·구금된 범법자와 형이 확정된 수용자에게 교정 교화를 통하여 건전한 사회인으로 복귀하도록 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일제강점기 대구의 학생운동과 1930년대 학생운동의 중심인물 김일식. 김일식(金一植)[1912. 10. 3.~1953]은 1912년 대구의 남산동에서 분성김씨(盆城金氏) 김영우와 이귀갑의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일식은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형제와 아버지 형제에게서 항일독립운동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하였다....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친일 반민족 행위자. 박중양(朴重陽)[1874~1959]은 1874년 5월 3일 지금의 경기도 양주시 양주동에서 아전 가문 출신의 박정호(朴鼎鎬)와 전주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호는 해악(海岳)이며, 다른 이름은 박원근(朴源根)이다....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우열(尹又烈)[1904~1927]은 1904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윤필오(尹弼五)의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에서 고려공산동맹과 조선청년총동맹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대구에서는 대구제4청년회·철성단·신사상회·경북사회운동자동맹 등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망우공원 내 기념비가 있는 이경희가 1923년 일제의 주요인물과 식민지 지배기구를 폭파하기 위해 벌인 사건. 의열단이 러시아 공산당으로부터 자금을 공급받아 일제의 주요 인물의 암살과 건물 파괴를 단행하는 방법으로 조선의 독립을 꾀하는 과정에서 일명 ‘황옥 사건’이 발생하였다. 제2차 암살파괴계획이라고도 한다. 황옥사건에 관련된 이경희[1880~1949]는 무...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갑성(李甲成)[1886~1981]은 1886년 10월 23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세브란스연합병원에서 근무 중이던 1919년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3·1운동을 주도하였고, 광복 후에는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운동가. 장홍상(張弘相)[1902-?]은 1902년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신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항일 비밀결사 신우동맹(新友同盟) 결성을 주도하였고, 조선공산당 경상북도 책임자로 활동하며 1927년 신간회 대구지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장적우(張赤宇)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운해(鄭雲海)[1893~1945]는 1893년 9월 14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2가에서 정만원(鄭萬源)의 이들로 태어났다. 중국에서 무장 독립투쟁을 전개하였고, 대구에서 사회주의 계열 단체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경진(李景珍)·이봉화(李奉華)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대구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언론인. 조용수(趙鏞壽)[1930~1961]는 1930년 4월 24일 지금의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에서 조판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4·19혁명 후 민족일보사 사장에 취임하여 혁신계를 대변하는 언론인으로 활동하였다. 호는 산남(山南)이다....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소복(崔小福)[1911~?]은 1911년 7월 4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에서 퇴학당한 뒤 서울로 유학하여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대구 출신의 사회주의운동가. 최원택(崔元澤)[1895~1973]은 1895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수동에서 태어났다. 1920년 대구청년회 활동을 시작으로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 준비위원 및 조선노농총동맹 조사부 담당 상무집행위원 등을 지냈다. 이후 중국 만주로 건너가 활동하였으며, 광복 후 남조선노동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석초(石樵)·서상필(徐相弼)·김성덕(金聲德)이라는 이름으로도...
해방공간기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에서 전개된 공산 비정규군[유격대 활동, 빨치산]. 빨치산은 유격대원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파르티잔(partisan)에서 온 것으로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은 좌익의 무장 유격 부대 활동의 주요 근거지였다. 6.25전쟁 이전에는 초기적 형태의 좌익 무장 유격대인 야산대 활동이 전개되었다. 1949년 6월 조선노동당의 창당 직후인...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윤우열이 조직한 무력 투쟁 독립운동 단체. 윤우열(尹又烈)[1904~1927]은 대구교풍회 회장, 대구자제단 발기인, 국민협회 대구지부 지부장 등 친일 단체에서 간부로 활동한 윤필오의 아들이다. 윤우열은 일본 세이소쿠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 속성과를 다닌 유학파였다. 유학 후 서울계의 사회주의 진영에 가담하여 활동한 윤우열은 서울과 대구에서 청년운동을 중심으로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