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정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청학(權淸學)[1899~1981]은 1899년 4월 15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음리에서 태어났다. 동화사(桐華寺) 부속 지방학림의 학승으로 있던 1919년 3월 30일 대구 남문 밖 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문옥(金文玉)[1898~1955]은 1898년 2월 10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에서 태어났다. 동화사(桐華寺) 부속 지방학림의 학승으로 있던 1919년 3월 30일 대구 남문 밖 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윤덕(金潤德)[1888~1952]은 1888년 11월 19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에서 태어났다. 한약상으로 일하던 1919년 3월 10일 동문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윤섭(金潤燮)[1900~?]은 1900년 12월 10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에서 태어났다. 동화사(桐華寺) 부속 지방학림의 학승으로 있던 1919년 3월 30일 대구 남문 밖 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김홍주(金洪周)로도 알려졌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재병(金在炳)[1893~1930]은 1893년 1월 26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에서 태어났다. 전당포를 운영하고 있던 1919년 3월 10일 동문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재소(金在炤)[1900~?]는 1900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에서 태어났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10일 동문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종만(金鍾萬)[1901~1926]은 1901년 7월 25일 지금의 경상북도 군위군 우보면 이화리에서 태어났다. 동화사(桐華寺) 부속 지방학림의 학승으로 있던 1919년 3월 30일 대구 남문 밖 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치운(金致雲)[1864~?]은 1864년 3월 12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던 1919년 3월 10일 대구 동문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1923년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결성된 사회단체. 남산정(南山町)[현 중구 남산동]은 덕산정(德山町)[현 중구 덕산동], 봉산정(鳳山町)[현 중구 봉산동], 신정(新町)[현 중구 대신동], 달성정(達城町)[현 중구 달성동], 시장정(市場町)[현 중구 동산동] 등과 함께 대구 지역의 대표적인 조선인 거주지였다. 남산정은 1922년 1,300여 호에 약 4만여 명이 살았던 대구...
-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었던 한인 세탁 시설. 1920년대에 조선총독부는 한인이 위생 시설, 문화시설, 체육시설 등을 공립으로 설립하게 하여 문화통치를 선전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특히 대구역 개통 이후 매년 대구 지역 인구가 폭증하면서 상하수도 시설, 세탁 처리 시설, 생활 시설 등의 절대적 부족은 대구 사회의 문제로 부각하였다. 한편, 대구부에서는 1920년대 초부터 도시...
-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었던 기상 및 기후 관측 기관. 대구측후소(大邱測候所)는 대구 및 경상북도 지역의 기상 및 기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
대구의 특색을 상업 도시로 각인되게 한 대구의 시장. 조선 후기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면서 시장이 생겨나고, 시장을 배경으로 객주가 등장하였다. 더욱이 대구는 경상감영이 설치된 경상도의 수부였고, 낙동강 물길을 배경으로 바닷가의 해산물과 내륙의 곡물을 교환하는 방식의 어염미두(魚鹽米豆) 무역의 주요 지점이었다. 조선 후기 대구에는 10여 개소의 시장이 열렸으며, 지금도 그 명맥을 엿...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남준(朴南俊)[1892~?]은 1892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정상리에서 태어났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3월 10일 동문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창호(朴昌鎬)[1901~?]는 1901년 11월 16일 지금의 경상북도 영천시 매산동에서 태어났다. 동화사(桐華寺) 부속 지방학림의 학승으로 있던 1919년 3월 30일 대구 남문 밖 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박월룡(朴月龍)·박명룡(朴明龍)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태현(朴泰鉉)[1899~1974]은 1899년 7월 14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침산동에서 태어났다. 계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10일 대구 동문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상철(徐相喆)[1900~?]은 1900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덕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재봉직공으로 일하던 1919년 3월 10일 동문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1928년 대구 약령시 이전을 둘러싸고 일어난 사건. 대구 약령시는 경상감영의 객사(客死)인 달성관(達城館)을 중심으로 봄·가을 두 차례 정기적으로 약령 시장을 개설한 데서 시작되었다. 1908년 일제에 의한 경상감영 객사 철거로 대구 약령시는 남성정[현 중구 남성로]으로 이전하였다. 대구 약령시가 남성정으로 이전한 이후 약령시의 운영 및 관리는 상인들이 만든 자치 조직에 의하여...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학조(尹學祚)[1895~?]는 1895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진인동에서 태어났다. 경성 중앙학림(中央學林)에 다니던 1919년 3월 30일 대구 남문 밖 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덕주(李德周)[1897~1970]는 1897년 5월 25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던 1919년 3월 10일 대구 동문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보식(李普植)[1900~?]은 1900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에서 태어났다. 동화사(桐華寺) 부속 지방학림의 학승으로 있던 1919년 3월 30일 대구 남문 밖 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성근(李成根)[1901~?]은 동화사(桐華寺) 부속 지방학림의 학승으로 있던 1919년 3월 30일 대구 남문 밖 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영호(李齡鎬)[1893~1964]는 1893년 7월 14일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0일 대구 동문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대구 지역에서 조선시대에 대체로 5일마다 열리던 정기시장. 조선시대 시장은 일반적으로 장시, 혹은 장(場)이나 시(市)라고 불렀다. 지방에서 열리는 시장이라 해서 향시(鄕市), 또는 넓은 공터에서 열리기 때문에 허시(墟市)라고도 불렀다. 장시는 매일 열리는 상설 시장이 아니었고, 일정한 간격을 정하여 정기적으로 열리는 정기시장이었다. 조선 초기에는 한 달, 보름 또는 열흘 간격으로...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허선일(許善一)[1896년~?]은 동화사(桐華寺) 부속 지방학림의 학승으로 있던 1919년 3월 30일 대구 남문 밖 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