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찰서
-
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 미군정의 실정을 비판하고 개선을 요구하며 시작된 대규모 민중 항쟁. 10월항쟁은 미군정의 친일 관리 고용, 식량정책의 실패 등에 항의하며 대구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자 경찰이 총격을 가하면서 발생하였다. 경찰의 발포로 대구 시민 수백 명이 희생되었고, 이후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으로 확산되며 두 달 동안 계속되었다. 농민뿐만 아니라 노동자, 학생, 지식...
-
1946년 10월 대구에서 노동자와 학생, 시민이 미군정의 실정 개선을 요구하며 일으킨 항쟁. 10월항쟁은 1946년 대구에서 9월총파업의 와중에 노동자와 학생, 시민들이 미군정의 실정 개선을 요구하며 일으킨 광복 후 최초 항쟁이다.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을 과제로 안고 있는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다....
-
1950년대 후반 대구에서 「국가보안법」 제3차 개정안에 반대하며 벌인 민주주의 운동. 이승만 정권 말기 여당인 자유당은 1958년 8월 11일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하였다. 야당은 강력히 반대하며 「국가보안법」 개악 반대 투쟁을 벌였다. 그러자 자유당은 1958년 12월 24일 300명의 무장 경관을 동원하여 저항하는 야당 의원들을 국회에서 폭력으로 몰아내고 대공 사...
-
1948년 대구에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여 일으킨 파업 투쟁. 2·7구국투쟁(二·七救國鬪爭)[일명 2·7총파업 또는 2·7폭동]은 1948년 1월 8일 유엔조선위원단이 유엔 감시 하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통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하여 서울에 오자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여 일으킨 파업 투쟁이다. 1948년 2월 5일 군정장관 아서 러취(Archer L. Lerch)가...
-
1947년 3월 1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민주주의민족전선 대구시위원회 주최로 열린 시민대회. 1947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대구시위원회는 광복 후 두 번째로 맞는 3·1절 기념식을 3·1운동 기념과 함께 모스크바삼상회의의 결정안을 지지하는 시민대회로 개최할 계획이었다. 시민대회는 대구의 경찰 당국이 ‘3·1일 폭동설’에 대비하여 무장 경관과 기관총 부대를 대회 장소에 출동시키고, 대...
-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발생한 만세 시위. 3·8 서문시장 만세 시위는 대구에서 일어난 첫 만세 시위로, 대구를 비롯한 경상북도 지역으로 만세 시위가 확산하는 계기가 되었다....
-
1919년 4월 15일 대구 대명동 지역에서 전개된 만세 시위. 4·15 대명동 만세 시위는 1910년 8월 일제의 한일합병조약 체결 이후 무단통치로 인한 폭압적 분위기와 경제 침탈 속에서 대구가 일본 우위의 전형적인 식민도시로 전락하는 가운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민족자결주의에 고무되어 제기된 독립선언과 3·1운동의 영향으로 발생하였다. 대구에서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윤옥(姜潤玉)[1889~?]은 1889년에 태어났다. 지금의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거주하며 제조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15일 만세 시위를 전개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 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학봉(姜學奉)[1898~1931]은 1898년 11월 30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서 태어나 제화노동자로 일하였다. 1919년 3·8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강학봉(姜學鳳)으로도 알려져 있다....
-
1937년 중일전쟁 당시 일제가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서 시행한 소방 조직체. 1939년 말 경방단의 전국 조직 상황은 경방단과 분교를 합쳐 2천7백53개 조, 단원 18만 1천2백21명 수준이었다. 이는 소방조가 해체되기 전해인 1938년 말의 소방조 1천3백93개조, 조원(組員) 6만 9천4백14명에 비하면 크게 증가한 수이다. 또한 경방단 설치와 동시에 방공 설비의 강화와 방...
-
대구 지역의 전통적인 교통로를 대체한 근대 문명의 상징 경부선과 대구역. “차마다 모두 바퀴가 있어 앞차에 화륜이 한 번 구르면 여러 차의 바퀴가 따라서 모두 구르게 되니 우뢰와 번개처럼 달리고 바람과 비처럼 날뛰었다. 한 시간에 삼사백 리를 달린다고 하는데 차체는 안온해 조금도 요동하지 않으며 다만 좌우에 산천, 초목, 가옥, 인물이 보이기는 하나 앞에 번쩍 뒤에 번쩍하므로 도저...
-
1941년 12월 8일 대구 서문교회에서 열린 기독교 교역자의 종교 간담회. 일제가 미국에 선전포고를 한 1941년 12월 8일 열린 경북노회 남녀교역자 종교보국간담회는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이 동양 평화를 위한 것이라는 선전을 펼친 자리였다....
-
대구광역시 중구 서문로에 있었던 일제강점기 때 건립된 대구경찰서. 1905년 일본은 을사조약을 체결한 이후 거류지의 보호와 식민지 전초기지로 대구경찰서, 통감부 산하기관인 대구이사청 등을 건축하였다. 구 대구경찰서는 1909년 일본이 만들었으며, 구조는 목조 2층의 일·양 절충형의 건물이다. 1929년까지 사용하였으나 경찰서를 신축하기 위하여 철거하였다....
-
1963년 대구에서 박정희 군사정권이 발표한 군정 연장에 반대하며 전개된 운동.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군사정부를 수립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1962년 12월 17일 1963년 8월경에 정권을 민정으로 이양할 예정이라고 발표하였다. 다음 해인 1963년 2월 18일에는 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1963년 3월 15일 수도경비사령부 소속 군인 80여 명...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권성우(權聖佑)[1896~1980] 1896년 9월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학미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권중수(權重秀)·권중식(權重植)이라는 이름도 사용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영화(權永和)[1899~1935]는 1899년 4월 5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아버지 권의윤(權義允)과 함께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권주섭(權周燮)이라는 이름도 사용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의윤(權義允)는 1868년 3월 7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서 태어났다. 계성학교(啓聖學校) 교사로 재직 중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권종태(權鍾泰)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권중윤(權重潤)[1900~1928]은 1900년 2월 3일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법상동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조선 기독교인과 일본 기독교인이 연합하여 결성한 친일 협력 종교 단체. 기독교대구연합회(基督敎大邱聯合會)는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제의 전쟁 동원 정책이 추진되는 가운데 대구 지역의 조선 기독교인과 일본 기독교인이 친선 제휴를 명목으로 결성하여 황국신민으로서 보국((報國)을 실현하기 위한 친일 협력 종교 단체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김관제(金觀濟)[1886~1951]는 1886년 6월 18일 지금의 경산남도 고성군 개천면 명성리에서 태어났다.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중국 만주로 망명하여 민족계 학교를 설립하였다. 이후 국내로 돌아와 대구에 한약방을 열고 사회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건국동맹에서 활동하였다. 광복 후에는 조선건국준...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낙형(金洛衡)[1911~?]은 1911년 11월 26일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노곡리에서 태어났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항일 비밀결사 조직을 결성하고 활동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무생(金武生)[1898~1971]은 1898년 7월 9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사월동에서 태어났다. 평양 숭실학교(崇實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삼도(金三道)[1900~1967]는 1900년 지금의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후암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상길(金相吉)[1926~2018]은 1926년 12월 29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상업학교 재학 중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태극단(太極團)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수천(金洙千)[?~?]은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에서 태어났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영서(金永瑞)[1880~1975]는 1880년 지금의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교감으로 재직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영수(金永壽)[1905~?]는 1905년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산전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항일 비밀결사 우리동맹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용해(金湧海)[1897~1919]는 1897년 7월 26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윤덕(金潤德)[1888~1952]은 1888년 11월 19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에서 태어났다. 한약상으로 일하던 1919년 3월 10일 동문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대구에서 활동한 사회운동가. 김장수(金章洙)[?~?]는 대구에서 교원노동조합 간부로 활동하며 이대악법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재범(金在範)[1900~1931]은 1900년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화전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재병(金在炳)[1893~1930]은 1893년 1월 26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에서 태어났다. 전당포를 운영하고 있던 1919년 3월 10일 동문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재소(金在炤)[1900~?]는 1900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에서 태어났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10일 동문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정진(金正鎭)[1925~2013]은 1925년 12월 26일 지금의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해저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상업학교 재학 중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태극단(太極團)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치운(金致雲)[1864~?]은 1864년 3월 12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던 1919년 3월 10일 대구 동문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태련(金兌鍊)[1879~1943]은 남산교회 조사로 있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김주현(金周鉉)으로도 알려졌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한약상. 김홍조(金弘祖)[?~?]는 개성 출신으로, 1892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성로로 이주하였다. 일제강점기 약령시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며 약령시 부흥에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나상기(羅相基)[1901~1981]는 1901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부에 있었던 권번. 달성권번(達城券番)은 노래와 춤을 가르쳐 기생을 양성하고, 교육과정을 수료한 기생들이 요정에 나가는 것을 지휘하고 감독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
1922년 5월 대구광역시에서 개최되었던 체육대회. 대구각희대회(大邱角戱大會)는 1922년 5월 대구토목공려회가 주최로 개최되었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 있었던 치안 행정기관. 대구경찰서(大邱警察署)는 일제강점기 대구·경상북도 일원의 치안 행정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
일제강점기 대구경찰서 내에 설치된 관영 사회사업 기관. 대구경찰서 인사상담소(大邱警察署人事相談所)는 대구부민에게 직업소개와 생활법률 안내 및 상담을 지원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
1928년 4월에 대구의 대구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벌인 학생운동. 1928년 4월에 대구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역사 교사의 이순신 폄하 발언을 계기로 학생자치, 언어와 집회, 비인간적 대우 철폐, 조선어 시간 연장과 조선 역사 시간 신설, 교장 실책 개선, 일본인 교장 및 일본인 국어·역사 교사 배척 등을 요구하며 동맹휴학 투쟁을 전개하였다. 대구고보폭압정책반대동맹은 3·1운동 이후...
-
1931년 대구 광선고무공장 노동자들이 회사의 퇴직금 미지불에 맞서 일으킨 노동쟁의. 광선고무공장은 1930년 8월 남녀 노동자 60명을 채용하여 고무를 생산하여 오다 1931년 2월 중순에 회사 경영 문제로 인하여 휴업하게 되었다. 광선고무공장의 경영주는 노동자들에게 3월 10일에 다시 공장을 가동할 예정이니 기다려 달라고 요청하였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6차례나 재가동을 미루다가...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조선인 자본가들로 결성된 친일 단체. 조선총독부는 민풍(民風)을 개량한다는 명목하에 친일 지주, 지역 유지, 금융 자본가, 부·도·군협의회 회원 등을 구성원으로 하여 교풍회(矯風會)를 설립하였다. 1911년 마산 교풍회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교풍회가 설립되기 시작하였으며 1919년 3·1운동을 기점으로 더 증가하였다. 대구 교풍회(大邱矯風會)는 1917년 10월...
-
1916년 9월 대구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벌인 독립운동. 정운일(鄭雲馹), 김재열(金在烈), 최병규(崔丙圭), 최준명(崔俊明) 등은 1915년 4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대구의 부호 서창규(徐昌圭)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받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15년 11월 무렵 정운일, 최병규, 김진우 등은 대구의 부호 정재학(鄭在學), 이장우(李章雨), 서우...
-
개항기 대구에서 결성된 사설 기생조합. 대구기생조합(大邱妓生組合)은 1909년 4월 일제에 의하여 관기제도가 폐지되자 경상감영과 대구부(大邱府)[현 대구광역시] 관청에 예속되어 있던 교방(敎坊)의 관기(官妓)들이 사회로 진출하게 되면서 영업과 권익 보호를 위하여 결성한 사설 기생조합이다. 대구조합, 대구기생조합소, 대구예기조합이라고도 하였다....
-
1925년 9월 15일 대구노동친목회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일으킨 노동쟁의. 대구운수노동자친목계는 1923년 7월경 설립되었다. 신재모·김광서·김학삼·서병하·김성곤·장춘동 등 6명이 주축이 되어 운수 노동자 30여 명을 규합하여 설립하였다. 대구역은 대구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곳이자, 각종 문물이 모여드는 집산지였다. 따라서 물건을 나르는 일용직 날품팔이 육체노동자가 밀...
-
1926년 대구노동친목회가 임금 인하를 단행한 진목운송점을 상대로 일으킨 노동쟁의. 운수 노동자 친목계는 1923년 7월 설립되었다. 신재모, 김광서, 김학삼, 서병하, 김성곤, 장춘동 6명이 주축이 되어 운수 노동자 30여 명을 규합하여 설립하였다. 대구역은 대구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곳이자, 각종 물산이 유통되는 집산지였다. 따라서 물건을 나르는 일용직 날품팔이 육체노...
-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에 있는 삼국시대 성곽. 달성은 신라가 대구 지역을 통치하기 위하여 중심부에 쌓은 군사 및 공해 시설이다. 처음에는 토성의 형태로 쌓았다가 5세기 이후 석축을 부가하여 토석혼축성(土石混築城)으로 완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에는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첨해이사금(沾解尼師今) 15년(261) 2월 달벌성이란 이름으로 축성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후 『경상도속...
-
일제강점기 말 대구상업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항일·독립운동 단체. 대구상업학교 태극단(大邱商業學校太極團)은 민족자결 원칙에 따라 당면 최대 목표인 조선의 자주독립을 이룩하고, 세계 인류의 영원한 평화·자유·평등을 실현하고자 결성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의 고아를 수용한 기관. 대구소년보호소는 소매치기, 구두 절도 등 치안을 불안하게 하는 고아를 교화하고자 설립되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주거 불명인 고아도 강제수용하였다....
-
1909년 경상북도관찰사 박중양이 주도하여 만든 대구 최초의 십자도로. 을사조약을 계기로 1906년 대구에 이사청이 설치된 이후 대구읍성이 헐리고 대구읍성이 헐린 자리에 순환도로가 조성되었다. 이어 경상감영 객사가 철거되었다. 그 뒤 경상북도 관찰부의 관찰사 박중양(朴重陽)은 시가지 간선도로 개설 사업을 벌이면서 경상감영을 관통하는 십자도로 건설에 나섰다....
-
개항기 대한제국 순종 황제가 대구 방문 기념으로 내린 은사금과 지역 인사의 기부금으로 대구 공중의 이용 장소로 지은 건물. 대구 은사관은 1909년 1월 대한제국 순종 황제가 남순(南巡)할 때 대구를 방문하여 대한협회 대구지회에 하사한 2,000원을 기초로 지역 인사의 기부를 받아 건립한 건물이었다. 대구 은사관은 대한협회 대구지회의 회관으로 사용되다 대한협회 대구지회가 해산된 뒤...
-
일제강점기 대구의 인력거 노동자들이 결성한 노동단체. 대구인력거노우회(大邱人力車勞友會)는 1924년 대구 지역의 인력거 노동자들이 결성한 노동단체이다. 대구 인력거 노동자 80여 명이 중구 종로1가의 만경관(萬鏡館)에서 인력거 노동자들의 권익을 향상시키고 단결하기 위하여 창립하였다....
-
1929년 5월 14일자 『대구일보』 사설의 조선 민족 모욕에 대하여 대구 지역 사회단체가 대응한 사건. 『대구일보』는 1928년 10월 1일에 대구에서 발간된 일본어 일간지였다. 『대구일보』 조선 민족 모욕 기사 사건은 1929년 5월 14일자 『대구일보』 사설이 조선 민족을 모욕한 내용으로 채워졌다고 판단한 대구의 사회운동단체들이 『대구일보』의 주필 및 편집국장에 대해 사과를...
-
1925년 대구 한문양행자동차회사의 운수 노동자들이 대우 개선과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일으킨 노동쟁의. 한문양행자동차주식회사는 1921년 9월에 경상북도 포항에서 설립된 운수회사로 대구에 영업소를 설치 운영하였다. 사주는 경상북도 영덕의 자본가 문명기(文明琦)였다. 대구와 포항 사이를 하루 1회씩 운행하고 있었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결성된 청년운동 단체. 대구제4청년회(大邱第四靑年會)는 제4청년 계급의 역사적 사명을 위하여 청년의 단결과 교육, 훈련을 목적으로 하여 결성되었다....
-
1934년 대구 지역에서 운송 노동자들이 일으킨 노동운동. 조선운송회사는 1930년 5월 24일 자본금 700만 원으로 주식회사로 설립되었다. 조선운송회사는 사장 무라카미기이치[村上義一]를 비롯하여 부사장, 전무, 이사, 감사 모두 일본인이었으며, 대주주는 주로 중일본통운회사(中日本通運會社), 조운영락회(朝運永樂會), 조선신탁(朝鮮信託), 조선우선(朝鮮郵船), 오사카상선[大阪商船]...
-
대구광역시 중구 서문로1가에 있는 치안 행정기관. 중부경찰서(中部警察署)는 대구광역시청 등 각급 기관과 단체가 집중되어 있으며, 경상감영공원·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대구광역시립중앙도서관·대형 백화점이 밀집한 시민 생활의 중심지이자 지역 유통 및 경제의 중심지인 대구광역시 중구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다....
-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의 청년을 침략전쟁에 동원하기 위하여 설치한 군사훈련기관. 육군특별지원병 제도가 시행된 이래 대구에서 지원병이 최초로 입영한 것은 1938년 12월이었다. 서울의 지원병훈련소 제1회 수료생 201명 중 대구 출신의 24명은 1938년 12월 9일 기차로 대구에서 도착하여 달성군수와 대구경찰서 서장 등의 관민 유지의 환영을 받고 대구신사에 참배한 뒤 12월 10일...
-
일제강점기 대구에 있던 소년 운동 단체. 대구혁영회(大邱革英會)[이칭 대구소년혁영회]는 소년의 인권옹호와 의식 개혁 등을 추진하기 위하여 결성되었다....
-
1945년 8월 16일 열린 대구형무소 출옥자를 위한 환영 대회. 미군정의 보고서에 따르면 해방 직전 대구형무소에는 1,600여 명이 갇혀 있었다. 1945년 8월 15일 오후 5시 무렵 대구의 유지들이 대구형무소를 찾아 한국인 정치범을 즉시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
1920년대 다양한 이념과 폭넓은 운동 노선의 독립운동이 펼쳐지는 배경이 된 1919년 대구의 3·1운동.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전민족적 항일운동의 서막이 올랐다. 한국인의 의식에 농축된 자주와 독립에 대한 열망이 민족자결이 고조되는 국제정세의 변화와 맞물려 폭발한 것이었다....
-
4·19혁명 시기 대구에서 전개된 민주·민족운동. 대구광역시의 4·19혁명은 2·28민주운동에서 시작되어 3·15부정선거 시위를 거쳐 4·19로 이어지면서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민족운동이 싹트게 하였다. 4·19혁명 시기 대구광역시에서 다양한 민주·민족운동이 봇물 터지듯 표출되어 한국의 민주·민족운동을 선도하였다....
-
1929년 10월부터 1930년 3월 사이 대구에서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여 발생한 학생운동. 1929년 10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 전국적으로 파급되고, 광주학생운동을 계기로 신간회도 활성화될 때, 대구에서도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여 일제에 저항하는 학생 중심의 민족운동이 전개되었다....
-
대구의 특색을 상업 도시로 각인되게 한 대구의 시장. 조선 후기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면서 시장이 생겨나고, 시장을 배경으로 객주가 등장하였다. 더욱이 대구는 경상감영이 설치된 경상도의 수부였고, 낙동강 물길을 배경으로 바닷가의 해산물과 내륙의 곡물을 교환하는 방식의 어염미두(魚鹽米豆) 무역의 주요 지점이었다. 조선 후기 대구에는 10여 개소의 시장이 열렸으며, 지금도 그 명맥을 엿...
-
1960년 대구와 경북의 각급학교 교사들이 교원의 이익 옹호와 학원의 민주화를 위하여 만든 교원 노동조합. 4·19혁명을 계기로 대구와 경북의 각 학급 교사들이 ‘정치적 중립’, ‘학원의 자유’를 내세우며 대구지구중등학교교원노동조합, 대구지구초등학교교원노동조합, 경북지구중등학교교원노동조합을 설립하여 교원의 지위 향상 및 신분 보장, 교원노조의 합법화 투쟁, 학원 부정부패 척결, 이...
-
1922년에 대구의 대성학관 학생들이 교사의 유임을 위하여 벌인 학생운동. 1921년 12월에 강습소로 개관한 대성학관이 1922년 건물 신축과 함께 학관의 규칙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교사들과 의견 갈등 끝에 교사들이 사직하게 되자 대성학관 학생들이 교사들의 유임을 요구하였다....
-
1927년 11월 대구의 동부정거장 나네기운송점 노동자들이 임금 인하에 반대하며 일으킨 노동쟁의. 대구의 동부정거장 부근에 있는 나네기운송점[眞木運送店] 노동자 40여 명은 1927년 11월 28일 현미 211 가마니를 창고에 운반하여 넣고 한 가마니 당 임금 1전씩을 받지 못하자 파업을 단행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조직된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 1940년 대구사범학교의 비밀결사 무우원은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 독립을 쟁취한 뒤 근심과 걱정이 없는 민족의 낙원을 건설하려는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
1946년 미군정이 대구 10월항쟁에 대응하고자 포고한 긴급조치. 대구 지역에서는 해방되고 1년이 지나도록 극심한 식량난이 지속되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이 미군정의 식량 정책 실패에 항의하며 시위에 나섰고, 이에 경찰이 총격을 가하면서 시위가 무장 항쟁으로 발전하였다. 이 사건이 바로 10월 항쟁이다. 10월 항쟁을 진압하기 위하여 미군정은 해방 이후 최초의 계엄령을 선포하기에 이르...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남준(朴南俊)[1892~?]은 1892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정상리에서 태어났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3월 10일 동문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만준(朴萬俊)[1897~1965]은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명근(朴命根)[1909~1987]은 1909년 3월 2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덕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혁우동맹(革友同盟)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몽포(朴夢圃)[?~?]는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문영(朴文瑛)[1871~1943]은 1871년 지금의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법기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 거주하며 잡화상을 운영하던 중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상호(朴常浩)[1904~?]는 1904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서 태어났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항일 비밀결사 혁우동맹(革友同盟)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장호(朴章鎬)[1886~1961]는 1886년 8월 29일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효선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성경학교(聖經學校) 강습생으로 있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재헌(朴在憲)[1900~1986]은 1900년 1월 25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유곡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특파원으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을 이...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제원(朴齊元)[1884~1961]은 1884년 5월 6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김천예수교회 전도사로 재임하며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태현(朴泰鉉)[1899~1974]은 1899년 7월 14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침산동에서 태어났다. 계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10일 대구 동문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백기만(白基萬)[1902~1969]은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후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하였다. 호(號)는 목우(牧牛)이고, 필명은 백웅(白熊)이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백춘갑(白春甲)[1909~1950]은 1909년 2월 16일 지금의 강원도 영월군 남면 북쌍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교남학교(嶠南學校) 재학 중 항일 비밀결사 학생대표자회(學生代表者會) 결성에 참여하고 활동하였다....
-
1927년 8월 대구에 주둔하던 보병80연대 소속 육군 대위 세가와 마사오가 조선인 일가족을 폭행한 사건. 1927년 8월 초 대구 주둔 보병 80연대 소속 육군 대위 세가와 마사오[瀨川正雄]가 자신의 조카와 말다툼을 하던 신구실(辛玖實)을 폭행하였다. 이어 세가와 마사오는 신구실의 여동생과 삼촌을 폭행하고, 어머니까지 머리채를 잡고 폭행하였다. 피해자 신구실은 10세의 어린이였고...
-
1946년 1월 대구에서 결성된 진보적 여성단체. 부녀동맹 대구지부는 1946년 1월 13일 대구광역시 중구 태평로에 있던 대구공회당[현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결성된 진보적 여성단체이다. ‘대구시 부녀동맹’으로도 불린다. 부녀동맹 대구지부의 조직과 임원은 위장장 우신실(禹信實), 부위원장 정귀악(鄭貴岳), 총무부장 배영옥(培英玉), 조직부장 고윤녀(高胤女), 선전부장 박복조(朴福祚...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결성된 사회주의 사상 단체. 상미회(尙微會)는 1923년 12월 13일 대구노동공제회관에서 이상훈(李相薰), 최원택(崔元澤), 신철수(申哲洙), 이여성(李如星) 등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사상에 대한 연구를 목적으로 결성한 사상 단체이자 운동 단체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동성(徐東星)[1895~1941]은 1895년 12월 13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장관동에서 태어났다. 일본 유학 중 형설회(螢雪會)·흑우회(黑友會)에서 활동하였으며, 1923년 무정부주의를 표방하는 후도이샤[不逞社]를 결성하였다. 귀국 후에는 무정부주의 단체인 진우연맹(眞友聯盟)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상교(徐尙敎)[1923~2018]는 1923년 11월 7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상업학교 재학 중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태극단(太極團)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상철(徐相喆)[1900~?]은 1900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덕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재봉직공으로 일하던 1919년 3월 10일 동문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손석봉(孫石鳳)[1901~1965]은 1901년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시 황오동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손치봉(孫致奉)[?~?]은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 초계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1946년 10월 미군정의 양곡 배급 정책의 실패에 맞서기 위해 대구광역시에서 시작된 사건이 대구광역시 동구를 비롯해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전라도, 경기도, 황해도 등 전국적으로 퍼져나간 사건. 10월항쟁은 1946년 조선공산당의 신전술[이른바 8월 테제]에 따른 9월 총파업이 전개되는 가운데 1946년 10월 1일 대구시[지금 대구광역시]에서 촉발되었다. 대구의 항쟁은 빠르...
-
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 9월총파업 중 경찰 발포로 사망한 시민 시체 1구로 대구의과대학, 대구농과대학과 대구사범대학 학생들이 벌인 시위. 대구에서 9월총파업이 벌어지고 있던 1946년 10월 1일 오전 남선전기주식회사에서 파업이 발생하고, 정오 무렵 여성과 어린이를 중심으로 대구부청에서 식량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기아데모(飢餓데모)가 발생하였다. 1946년 10월 1일 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신태근(申泰根)[1870~?]은 1870년 지금의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에서 태어났다. 칠곡 신동교회 남전도회장으로 있던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신현욱(申鉉旭)[?~?]은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심문태(沈文泰)[1895~1978]는 1895년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봉산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1920년대 이후에는 경상남도 지역에서 교육 활동을 전개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경수(安敬秀)[1888~1952]는 1888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안영두(安泳枓)[?~?]는 지금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굴화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안의중(安懿仲)[1881~?]은 1881년 5월 9일 지금의 경상북도 예천군 유천면에서 태어났다. 대구 나병원에서 소사[잔심부름꾼]로 일하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1928년 대구 약령시 이전을 둘러싸고 일어난 사건. 대구 약령시는 경상감영의 객사(客死)인 달성관(達城館)을 중심으로 봄·가을 두 차례 정기적으로 약령 시장을 개설한 데서 시작되었다. 1908년 일제에 의한 경상감영 객사 철거로 대구 약령시는 남성정[현 중구 남성로]으로 이전하였다. 대구 약령시가 남성정으로 이전한 이후 약령시의 운영 및 관리는 상인들이 만든 자치 조직에 의하여...
-
1960년대 대구에서 활동한 민주화운동가. 여학룡(呂學龍)[?~?]은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이소리에서 태어났다. 대서 교사로 근무하며 이대악법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
1925년 대구 지역 청년들이 창립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 단체. 용진단(勇進團)은 대구 지역의 용맹한 신흥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단원 간 단결, 부조, 옹호, 친목 등을 목적으로 1925년 1월 발기회를 열었고, 사상 연구를 통한 민중의 교양기관을 지향하며 1월 5일 창립하였다....
-
일제강점기 말 대구 원대동에서 단파방송 ‘미국의 소리’를 청취하고 결사대를 조직한 항일운동 사건. 원대동사건은 1944년 대구 원대동에서 미국 국무부 소속 국제협력국에서 운영한 단파 국제방송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VOA]’를 몰래 듣고 독립운동을 위한 결사대[원대결사대(院垈決死隊)]를 조직한 사건이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삼룡(尹三龍)[1925~1947]은 1925년 2월 6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공업학교 재학 중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태극단(太極團)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
대구 출신의 계몽운동가이자 친일 관료. 윤필오(尹弼五)[1860~1924]는 개항기 경상북도관찰부 주사를 시작으로 일제강점기 초반까지 영양군수·예안군수·비안군수를 역임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자제단 결성에 참여하고 대구교풍회(大邱矯風會) 회장을 지내는 등 친일반민족 행위를 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강희(李康熙)[1898~1943]는 1898년 2월 17일 지금의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항일 비밀결사 ㄱ당을 결성하고 활동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남숙(李南淑)[1903~?]은 1903년 6월 17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덕주(李德周)[1897~1970]는 1897년 5월 25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던 1919년 3월 10일 대구 동문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두석(李斗錫)[1912~1938]은 1912년 5월 19일 지금의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에서 태어났다. 고향 왜관에서 청년동지회(靑年同志會)를 결성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종교인이자 독립운동가. 이만집(李萬集)[1876~1944]은 대구 남성정교회 목사로 재임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이병학(李柄學)[1862~1942]은 1862년 10월 17일에 태어났다. 대구에서 기업인으로 활동하며 대구교풍회(大邱矯風會)·자제단(自制團)에 참여하고 중추원 참의를 지내는 등 친일반민족 행위를 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복건(李福健)[?~?]은 지금의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성경학교(聖經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삼문(李三文)[1909~?]은 1909년 지금의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본관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항일 비밀결사 사회과학연구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상길(李相吉)[1911~?]은 1911년 1월 29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시장북로에서 태어났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항일 비밀결사 조직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상호(李相虎)[1926~1945]는 1926년 2월 19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상업학교 재학 중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태극단(太極團)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이상화(李相和)[1901~1943]는 1901년 5월 22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성내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고, 신간회 대구지회와 ㄱ당에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의 작품을 발표한 대표적인 민족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석도(李碩道)[?~?]는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선희(李善希)[1896~1926]는 1896년 11월 17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2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선애(李善愛)·이선희(李先希)로도 알려졌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성해(李聲海)[1903~?]는 1903년에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승욱(李陞旭)[1898~1962]은 1898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하대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운옥(李云玉)으로도 알려져 있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영호(李齡鎬)[1893~1964]는 1893년 7월 14일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0일 대구 동문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원현(李元鉉)[1926~1945]은 1926년 11월 9일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상업학교 재학 중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태극단(太極團)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이석(李利錫)[?~?]은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중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재우(李載雨)[1912~?]는 1912년 7월 14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2가에서 태어났다. 대구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항일 비밀결사 학생대표자회(學生代表者會) 결성에 참여하고 활동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재인(李在寅)[1887~1968]은 1887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신명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재춘(李載春)[1877~?]은 1877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남산정[현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태학(李泰鶴)[1890~1962]은 1890년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등장한 극장들과 극장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 우리나라의 전통연희는 옥외에서 이루어지므로 극장이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극장의 역사는 개항과 함께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1876년 부산이 개항되고 이어 원산[1879년], 인천[1883년] 등이 차례로 개항되면서 몰려든 일본인들에게는 가부키[歌舞伎], 노[能], 분라쿠[文樂], 교겐[狂言], 나...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임봉선(林鳳善)[1897~1923]은 1897년 10월 10일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신명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재직 중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임용한(林容漢)[1897~1977]은 1897년 10월 3일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에서 태어나 대구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임석백(林碩佰)으로도 알려졌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봉수(張奉守)[1901~1927]는 1901년 8월 4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용암(張龍岩)[1895~?]은 1895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5일 만세 시위를 전개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1931년 대구경찰서 이치가와 순사의 조선인 상해 사건을 보도한 장인환이 일제 관헌에게 탄압받은 사건. 장인환 필화사건은 대구경찰서 이치가와[市川] 순사의 민간인에 대한 상해 사건이 발단되었다. 그 과정을 보면 대구경찰서 소속의 이치가와 순사가 1931년 6월 10일 오전 1시 무렵 대구 서성정 1정목[현재 서성로1가]에서 청각장애자 최봉조(崔鳳祚)를 보고 행동이 수상하다며 경찰서...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장해동(張海東)[1901~1927]은 1901년 8월 4일 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조사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운동가. 장홍상(張弘相)[1902-?]은 1902년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신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항일 비밀결사 신우동맹(新友同盟) 결성을 주도하였고, 조선공산당 경상북도 책임자로 활동하며 1927년 신간회 대구지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장적우(張赤宇)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광순(鄭光淳)[1880~1961]은 1880년 7월 9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성내동에서 태어났다. 의료계에 종사하며 신정교회 장로로 있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광해(鄭光海)[1927-1950]는 1927년 7월 11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대구상업학교 재학 중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태극단(太極團)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원조(鄭元祚)[1898~1942]는 1898년 3월 23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정인엽(鄭寅曄)[?~?]은 지금의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우망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종교인. 정재순(鄭在淳)[1877~1948]은 1877년 5월 24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서 태어났다. 신정교회 목사로 봉직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후 일제에 협력하여 친일 행보를 보였다. 아들 정원조(鄭元祚)도 서문시장 만세 시위 때 체포되어 대구형...
-
일제강점기 재건 달성친목회 밀고인. 정진영(鄭震泳)은 1873년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태어났다. 1908년 대구로 이주하여 지금의 중구 남성로에서 약종상을 경영하던 중 항일 비밀결사 재건 달성친목회에 가입하였다. 1919년 중순 대구경찰서 형사 박준영(朴埈永)에게 재건 달성친목회를 밀고하였다. 정진영은 법정에서 자신이 밀고한 계기에 대하여 “많은 부호와 그 밖의 양민이 그들의 동지가...
-
일제강점기 일제가 방공 사상 및 국방 사상을 강화하기 위하여 대구에 조직한 전시체제기 친일 단체.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하여 국가총동원 체제로 개편한 일제는 공산주의 사상을 단속하고 ‘일본 정신’을 앙양하며, 일상에서의 선전 감시 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1938년 8월 15일 조선방공협회를 조직하였다. 조선방공협회 조직 이후 각 지역 단위 조직이 빠른 속도로 결성되었다....
-
일제가 전시 동원 체제 강화를 위하여 대구·경상북도 지역에 결성한 종교계 전쟁 협력 단체. 조선총독부는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던 1945년 2월 종교계를 총망라하여 전쟁 협력 단체를 결성하였다. 종교와 종파를 막론하고 강력한 교화 활동을 펼쳐 전쟁에 매진하기 위함이 목적이었다. 1944년 12월 8일 각 종교 단체가 연합하여 조선전시종교보국회가 결성되었다. 조선전시종교보국회 경...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교육자이자 종교인. 최경학(崔敬學)[1890~1976]은 1880년 8월 15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신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후 일제에 협력하여 친일 행보를 보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친일 반민족 행위자. 최석현(崔錫鉉)[1893~1956]은 1893년 지금의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태어났다. 일본식 이름은 야마모토 쇼시[山本祥資]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경찰, 군수를 지내며 일제의 식민 통치와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소복(崔小福)[1911~?]은 1911년 7월 4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에서 퇴학당한 뒤 서울로 유학하여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최영학(崔永學)[?~?]은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사전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으로 친일 반민족 행위를 한 사람. 일제는 조선을 강점한 후 민족 동화를 조선 통치의 최고 방침으로 설정하고, 민족 동화의 완성을 위하여 조선인 협력자, 곧 친일파를 양성하였다. 친일파를 양성하는 과정에서 자발적 친일파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일제의 친일파 양성 정책과 자발적 친일파의 특성은 시기마다 차이가 있었다....
-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하윤실(河允實)[?-?]은 대구에서 태어나 지금의 중구 수창동에서 거주하였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건립한 은행 건물. 한국산업은행대구지점(韓國産業銀行大邱支店)은 1931년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세워졌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한순(韓錞)[1911~?]은 1911년 9월 2일 지금의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거진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항일 비밀결사 사회과학연구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허담(許澹)[1886~1972]은 1886년 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에서 태어났다. 대구 성경학교(聖經學校)에서 강습을 받고 있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허방(許枋)[?~?]은 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조사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허범(許範)[?~?]은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계성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독립운동 단체. 혜성단(彗星團)은 김수길, 이종식 등이 대구 지역에서 결성한 독립운동단체이다. 대구 3·1운동의 지속과 확대를 위한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으며, 국외의 독립운동 세력과의 연계를 모색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