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달성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0389
한자 獨立運動[達城郡]
영어공식명칭 independence movement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정의]

일제 강점기 달성군에서 독립을 위하여 전개된 민족 운동.

[한말 독립운동]

한말 달성군은 근대 자주적 국민 건설 운동을 전개하였다. 먼저, 대구에서 펼쳐진 계몽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906년 대구 광문사(大邱廣文社)와 대구 광학회(大邱廣學會), 1907년 대동 광문회와 현풍군 단연 보상회(玄風郡斷煙報償會)를 통해 국채 보상 운동, 1908년 대한 협회 대구 지회 등을 통해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 계몽 운동 단체들은 교육 진흥, 식산 흥업 등의 목표 아래 사범 학교, 측량 강습소, 대구 양성 여학교, 협성 학교, 수창 학교 등의 학교 설립, 근대 서적 출판 활동, 강연회와 토론회 등을 통해 근대적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다. 나아가 현풍 단연 동맹회와 같이 국채 보상 운동을 벌이는 등 국권 회복을 위한 경제적 실력 양성 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하였다. 다음으로, 의병 운동을 통한 일제 침략에 맞선 무력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달성의 의병 항쟁은 달성군 출신 인물들이 달성군이 아닌 여타 지역에서 항쟁을 전개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정경춘(鄭敬春)이 200여 명의 의병진과 함께 경상북도 북부의 봉화(奉化)와 영양(英陽)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최초의 을미 의병을 전개한 문석봉(文錫鳳)은 공주에서 창의하여 항일 의병 운동에 크게 기여하였다.

[1910년대 독립운동]

1910년대 달성군의 민족 운동은 헌병 경찰 제도를 기반으로 한 무단 통치 아래에서 전개되었다. 대표적 독립운동은 달성 친목회와 강유원 간친회(講遊園懇親會)를 통한 항일 운동이다. 달성 친목회는 한말 계몽 운동에서 일제 강점기 민족 운동 조직으로 전환하여 1910년대 대표적 비밀 결사로 활동하였다. 3·1 운동기 달성 친목회를 통해 만세 시위 확산 노력과 독립운동 자금 마련, 파리 만국 평화 회의에 독립 청원서 제출 등이 전개되었다. 1919년 3·1 운동기 달성군은 대구의 만세 독립 운동에 참여하였고, 달성군에서도 동화사 지방 학림의 대구 남문 시장 시위, 수성구 대명동 만세 시위, 공산면 미대동 만세 시위 등이 일어났다. 또한 1910년대 말 1920년대 초 달성군에서는 일본 유학생 독립운동 자금 조달 사건[일명 이용로 사건], 대한민국 길림 주재 군정사 독립 자금 마련 운동, 신흥 학교 학우단 폭탄 사건, 이현수의 독립 자금 모집 운동과 워싱턴 회의의 청원 운동, 지린성 군정서 흥업단 군자금 모집 사건, 관공리를 대상으로 한 독립운동 권고 활동, 김판경의 독립 격문 시위, 김석주의 비밀 결사 결성 사건 등이 다방면으로 전개되었다.

[1920년대 독립운동]

1920년대 달성군의 민족 운동은 보통 경찰 제도 아래 민족 분열 정책을 내용으로 한 문화 통치에 저항하면서 전개되었다. 1923년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는 가운데 발생한 일본 경찰 가이[甲斐] 순사 살해 사건[일명 제2 경북 중대 사건], 의열단을 통한 국내 주요 기관 파괴와 암살 그리고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개된 의열단 폭탄 반입 사건[일명 황옥 사건], 유림 세력이 국외 독립운동 근거지 마련을 위해 전개한 제2차 유림단 사건 등 국외와 연계된 의열단 투쟁과 유림계의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또한 달성군 지역민의 일제 통치에 저항하는 투쟁이 수차례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곧 달성군 수성면민의 가창면 순사주재소 습격 사건, 구지면민과 성서면민의 자치 요구 투쟁 등이 펼쳐졌다. 또한 청년 운동과 소년 운동, 형평 운동 등의 대중 운동, 가창면 농업 협동회를 필두로 가창, 논공, 화원, 성서 등 달성군 농민 운동, 신간회 대구 지회 화원 분회를 통한 민족 협동 전선 운동과 ㄱ당 사건 등 민족 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1930년대와 전시 체제기 독립운동]

일제 강점기 말 전시 체제기 달성군 출신 인사들은 대구 사범 학교 비밀 결사 무우원(無憂園)에 참여하여 국내외에서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고, 또 일본시마무라[島村] 토공 회사에서 전개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44년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고 완전한 독립을 준비하기 위해 비밀리에 조선 건국 동맹 달성군 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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