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사고는 1390년(공양왕 2)부터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1592년까지 약 200년 동안 고려의 중요 전적과 조선 전기의 역대 실록 그리고 중요한 서책과 문서를 보관하던 창고의 하나였다. 그러나 1592년 4월 28일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신립이 패하여 충주시가지가 불탈 때 시가지 내에 있던 충주사고와 그에 보관된 서책들도 사라졌다.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역사를 기록하여...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육영사업가. 이당세는 1943년 3월 31일 단암초등학교를 개교할 때 차남 이종희와 상의하여 자신이 소유한 토지 11,174㎡를 희사하였다. 또한 장남 이종학은 세종대왕 동상을 세웠고, 장손 이두호는 피아노를 기증하여 학생 교육을 위한 기반을 확보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당세와 그의 일가가 학교 발전 및 교육에 기여한 공로를 기리...
조선시대 호적대장에 기재된 충청북도 충주 지역의 호와 인구 수. 호구는 사전적 의미로 호적대장에 기재된 집과 식구의 수를 말한다. 호구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국역 복무자와 공부(貢賦) 부담자를 확정짓고 대민정책을 수립하는 데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조선 정부에서는 정확한 호적대장을 마련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조선시대의 호적대장은 조선 정부가 국가정책 수행이라는 특정한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