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의 관료. 1888년(고종 25) 파주목사 재임 시 전무위원(電務委員)으로 기해전선(畿海電線) 가설에 공을 세웠다. 1890년 양주목사, 한성판윤, 1894년 함경도병마절도사를 거쳐 1896년 중추원 의관으로 덕수궁 수리의 임무를 맡아 수행했다. 또한 이유인 자신이 천주교도였으므로 천주교구장 뮈텔(Mutel) 주교를 고종에게 소개하여 국호(대한제국)와 연호(광무) 제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