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문반직과 무반직에 임용된 충청북도 충주 출신 관인. 충주는 국토의 중앙부에 위치하여 일찍부터 군사와 교통의 요지로 중시되어 고구려의 국원성(國原城)과 통일신라의 중원경(中原京)이 설치되었다. 고려시대 이후에도 행정상의 중심지로 충주목(忠州牧)이 설치되어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충주 출신으로 문무관료가 된 인물은 충주목이 오늘날의 음성군과 괴산군 일...
조선 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창세(昌世), 호는 눌재(訥齋), 시호는 문간(文簡). 증조할아버지는 박광리(朴光理), 할아버지는 박소(朴蘇)이다. 아버지는 진사 박지흥(朴智興), 어머니는 생원 서종하(徐宗夏)의 딸이다. 박상은 1496년(연산군 2) 진사시에 급제하고, 1501년 식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교서관정자(校書館正字)가 되었...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같은 성과 같은 본관을 갖는 세거 성씨. 성씨의 연원은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다음 전국의 군·현의 이름을 개정하고 개국 공신을 책봉했던 940년(태조 23)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이전 고대국가에서는 성씨는 왕족과 극히 일부 중앙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후삼국시대 성주, 장군, 촌주 등의 신분을 지니면서 지방 세력을 대표하던 지방 귀족 이...
충주 출신이거나 충주 지역과 연관이 있는 사람을 ‘충주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충주는 국토의 중심이었고 예부터 사통팔달의 도시였기에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또한 충주 지역 자체에서 인물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었음도 한 몫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고장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는 면면을 지녔기에 충주를 인물의 고장이라 칭하...
박영을 시조로 하고 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충주박씨는 박영(朴英)을 시조로 한다. 박영은 신라 경명왕의 다섯째 아들 박언창(朴彦昌)의 12세손으로 고려시대 부정(副正)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충주박씨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세거 성씨로 나와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 각종 지리지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충주에...
신라 후기부터 고려 전기까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사회 변동을 주도하며 존재한 지방 세력. 신라 하대에는 중앙 귀족들의 정권 다툼으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됨에 따라 호족이라는 새로운 지방 세력이 대두하였다. 호족은 몇 가지의 부류로 구분된다. 중앙 귀족들의 정권 다툼에서 패배하여 지방으로 내려가 정착한 경우, 지방의 토착세력이던 촌주(村主)들이 성장한 경우, 청해진의 장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