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
홍은열(洪殷悅)을 시조로 하고 홍시원(洪時源)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원 시조 홍천하(洪天河)는 중국의 강남 휘주 사람으로 태학사였다. 640년(고구려 영류왕 23) 당 태종이 사신 8명을 파견할 때 그중의 한 사람으로 평양에 들어온 뒤, 은수포의 당관으로 옮겨 고구려 문화 진흥에 많은 공을 세웠다. 왕이 홍천하가 사는 곳을 당성(唐城)이라 하고 관적으로 삼...
-
1919년 3월 1일을 기해 경상북도 청도군을 포함하여 전국에서 일어난 항일 독립 만세 운동. 3·1 운동 당시 청도군에서는 3월 중순부터 5월 초순에 걸쳐 모두 7회의 크고 작은 만세 시위운동이 발생하였다. 특히 만세 시위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시위 참가자들은 관공서 습격, 일본 경찰 구타, 일본인과의 충돌, 자위회 공격 등 점차 격렬한 무력시위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제1차...
-
천암(千巖)을 시조로 하고 천선부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영양 천씨(潁陽千氏)는 명나라 관리 천암(千巖)을 시조로 받들고 있다. 영양(潁陽)은 현재 중국 하남성 등봉현 영양진으로, 고대 중국의 왕도였던 낙양과 정주 사이 숭산 근처에 위치한 유서 깊은 곳이다. 우리나라의 영양 천씨는 조선 시대 명나라를 건너온 천암의 9세손 천만리를 중시조로 한다. 천만리(千萬...
-
형옹(邢顒)을 시조로 하고 형대걸(邢大傑)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진주 형씨(晋州邢氏)의 시조 형옹(邢顒)은 중국 당(唐)나라 태종(太宗) 때 사람으로, 고구려 영류왕(榮留王)의 요청에 따라 8학사(八學士)의 한 사람으로 평양에 들어와 정착하였다. 형웅의 13세손 형방(邢昉)이 고려 명종(明宗)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고, 15세손 형공미(邢公美)가 충...
-
조선 후기에 청도 군수를 지낸 무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덕여(德轝)·여빙(汝憑), 호는 일제당(日躋堂). 거주지는 중화(中和)이다. 아버지는 차득보(車得輔)이다. 차은로(車殷輅)[1563∼?]는 1591년(선조 24) 29세의 나이로 별시(別試) 무과에 병과로 합격하였다. 이듬해인 1592년(선조 25) 9월 별장으로 황주 목사(黃州牧使) 김진수(金進壽)와 함께 요로에 매...
-
1919년 3월 14일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유호리에서 계획된 만세 시위운동. 3·1 운동 당시 경상북도 청도군에서는 3월 중순부터 5월 초순에 걸쳐 모두 7회의 크고 작은 만세 시위운동이 발생하였다. 만세 시위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시위 참가자들은 관공서 습격, 일본 경찰 구타, 일본인과의 충돌, 자위회 공격 등 점차 격렬한 무력시위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경상북도 청도군 청...
-
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주일은 1876년 청도군 운문면 오진리(梧津里)에서 출생하여 1927년 사망하였다. 1908년 달성 친목회, 1915년 조선 국권 회복단,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하였고, 1921년 교남 학교(嶠南學校)를 설립하고 항일 사상을 고취하였다. 본관은 남양(南陽). 호는 해동(海東). 홍주일(洪宙一)[1876∼1927]은 31세에 일본 규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