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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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橃 |
영어공식명칭 | Nam Bal |
이칭/별칭 | 공제(公濟),화은(華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역촌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명진 |
출생 시기/일시 | 1561년 - 남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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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88년 - 남발 생원과 입격 |
활동 시기/일시 | 1610년 - 남발 별시문과 급제, 공조좌랑에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614년 - 남발 세자시강원 필선에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619년 - 남발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옴 |
몰년 시기/일시 | 1646년 - 남발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646년 - 남발 승정원 도승지 증직 |
거주|이주지 | 거주지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역촌리 |
외가|처가 | 처가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
묘소|단소 | 남발 묘 - 충청남도 태안군 삭선리 금굴산 문중 묘지 |
성격 | 문관 |
성별 | 남 |
본관 | 의령 |
대표 관직|경력 | 보은현감|세자시강원 필선 |
[정의]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에 거주하였던 문신.
[개설]
남발(南橃)[1561~1646]은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조선 광해군 대에 활약하였던 문신이다. 온양군 설애산(雪厓山)[현재 아산시 송악면 역촌리] 아래에 집을 짓고 살았다.
[가계]
남발의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공제(公濟), 호는 화은(華隱)이다. 조선 개국 일등공신 영의정 남재(南在)의 8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남치욱(南致勗)이고, 아버지는 장예원사평(掌隸院司評) 증(贈) 사복시정(司僕寺正) 남언진(南彦縝)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아들은 남황(南熀)[또는 남엽]이다.
[활동 사항]
1588년(선조 21) 생원과에 입격(入格)한 뒤에 의금부도사, 종묘서직장(宗廟署直長), 사헌부감찰, 보은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1610년(광해군 2) 별시문과에 급제한 뒤 공조좌랑(工曹佐郞)에 제수되었고, 1619년(광해군 11)에는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왔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을 수 있는 남발의 마지막 관직은 필선(弼善)이다. 『광해군일기』 권76, 1614년(광해 6) 3월 16일 무진(戊辰)에 "남이준(南以俊)을 장령으로, 남벌을 필선으로, 우치적(禹致績)을 경상병사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필선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정4품으로, 세자의 강학(講學)에 참여하는 관직이었다. 1623년(광해군 15)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에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묘소]
남발의 묘소는 충청남도 태안군 삭선리 금굴산 문중 묘지에 안장되었다. 증손 남구만(南九萬)이 찬(讚)한 비(碑)가 있다.
[상훈과 추모]
사후에 승정원 도승지(都承旨)로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