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의병. 강태건(姜泰健)[1878~1952]은 의병장 곽한일(郭漢一)과 함께 홍주의진(洪州義陣)에 참여하였고, 독립의군부에서도 활동하였다. 강태건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동화리 출신이다. 아버지는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강호선(姜浩善)이다. 강태건은 슬하에 4남 4녀를 두었으며, 장남인 강인식(姜仁植)은 독립...
-
1864년(고종 원년)부터 1910년까지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역사. 개항기(開港期)는 1876년(고종 13)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기존의 봉건적인 사회 질서를 타파하면서 근대적 사회를 지향해 가던 시기이다. 충청남도 아산 지역은 본래 온양군, 신창현, 아산현으로 충청도 소속이었으나,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갑오경장]의 지방제도 개혁으로 온양군, 신창군, 아산군으로 개편되...
-
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의병장이자 독립운동가. 곽한일(郭漢一)[1869~1936]은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출신으로 1906년(고종 43) 홍주의진(洪州義陣)에 참여하여 돌격장, 소모장(召募將)으로 활약하였다. 종신 유배형을 받고 전라남도 신안군 지도(智島)로 유배되었으나 1912년에 풀려났다. 1913년 독립의군부에서 총무총장(總務總長)으로 활동하다가 1914년...
-
1907년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나라 빚을 국민들의 모금으로 갚고자 일어난 국권수호운동. 아산 지역의 국채보상운동 지회 건설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는다. 아산 지역의 국채보상운동은 지역민이 자발적으로 국채보상금을 의연(義捐)[사회적 공익이나 자선을 위하여 돈이나 물품을 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여성들에 의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충청남도 아산 지역...
-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를 전후하여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행하여진 근대적 교육 활동. 1905년 러일전쟁 개전을 전후하여 한반도에서는 나라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계몽론자들은 계몽 단체를 조직하고, 그 활동을 공고히 하고자 하였다. 특히 서울 지역에 집중되었던 이전의 상황과 달리 이 시기의 계몽운동은 전국 각지에서 활발히 일어났다. 충청남도 지역에...
-
조선 후기 개화파의 지도자로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묘와 제실이 있는 정치인. 갑신정변의 주역이며 반역범으로 암살당했으나 복권되어 충달(忠達)이란 시호(諡號)를 받았다. 김옥균(金玉均)[1851~1894]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백온(伯溫), 호는 고균(古筠)·고우(古愚)이다. 1851년(철종 2) 1월 23일 충청도 공주 정안면[현재 공주시 정안면]에서 태어났다...
-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백석포 일대에 상륙한 중국 청나라 군대의 동향이 기록된 조선 말기의 고문헌. 『동비토록(東匪討錄)』은 1차 동학농민전쟁의 시기인 1894년 음력 4월 5일부터 6월 6일까지 양호(兩湖), 즉 충청도와 전라도 지방의 동학농민군이 봉기한 상황과 관군이 대전한 실제 상황 관련 여러 문서를 정부 측에서 날짜별 일록체로 정리한 자료이다....
-
청일전쟁 시기 충청남도 온양, 신창, 아산 지역의 동학도와 주민들이 일제 침략에 저항하면서 양반 중심의 신분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무장투쟁을 전개한 운동. 안교선(安敎善)이 이끄는 아산의 동학도들은 1893년(고종 30) 동학교단의 보은 집회에 참여하여 외세 침략에 저항하였다. 이어 청일전쟁으로 항일의식을 고조시킨 아산 지역민들은 동학에 입도하여 항전 의지를...
-
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서병림(徐丙林)은 충청남도 온양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으로 활동하였고, 1907년(고종 44) 10월 운강(雲岡) 이강년(李康秊) 의진(義陣)에 합류하여 일본군과 싸웠다. 서병림의 본관은 이천(利川)이고, 의병 운동 당시 거주지는 온양이었다. 1907년 7월 헤이그(Hague) 밀사 사건으로 고종이 강제 퇴위를...
-
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의병. 성재한(成載翰)[1860~1906]은 홍주의진(洪州義陣)에 참여하여 운량관(運糧官)으로 활동하였으며, 1906년(고종 43) 5월 31일 홍주성(洪州城) 전투에서 분전하였으나 전사하였다. 성재한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운거(雲擧), 일명 성재평(成載平)이다. 1860년(철종 11) 2월 17일 신창현(新昌縣) 원당(元堂...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에 있는 애국지사 이남규의 순절지에 세운 비. 수당 이남규선생 순절비(修堂李南珪先生殉節碑)는 1906년(고종 43) 병오의병(丙午義兵) 당시 홍주의병장 민종식(閔宗植)이 패퇴하였을 때 민종식의 은신처를 마련해 주었다가 체포된 뒤 공주 감옥에 투옥되어 고초를 겪는 등 일제에 맞서다가 순절한 이남규를 기리기 위해 1986년 충청남도지사...
-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에 있는 개화기의 척화비. 척화비(斥和碑)는 척양비(斥洋碑), 위정척사비(衛正斥邪碑) 등으로도 불리며,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와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를 겪은 뒤 서양 세력의 침략을 경계하기 위해 1871년 흥선대원군의 명에 따라 전국에 세워진 비석이다. 김택영(金澤榮)이 지은 『한사계(韓史綮)』에는 "대원군이 스스로 양인(洋人...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의 가옥. 아산 외암마을 참판댁은 1891년(고종 28) 문과 급제 후 규장각직학사(奎章閣直學士)와 참판 등을 지낸 퇴호(退湖) 이정렬(李貞烈)이 19세기 말경에 고종으로부터 자금을 하사받아 새로 짓고 살았다. 원래 충청북도 보은 출신인 이정렬은 아산 외암마을 이상규(李相逵)의 양자로 왔는데, 이상규의 어머니 한...
-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 큰새말에 있는 윤보선 전 대통령이 살았던 한옥. 아산 윤보선 대통령 생가(牙山尹潽善大統領生家)는 1984년 12월 24일 국가민속문화재 제196호로 지정되었다.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 143번지에 있다. 아산만의 조수가 드나들던 둔포에서 직선거리로 3.6㎞ 떨어진 낮은 구릉지에 자리 잡고 있다. 윤보선...
-
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항일운동가 이남규가 살해되자 시신을 지켜준 마을 주민. 유진원(兪鎭元)은 수당(修堂) 이남규(李南珪)가 1906년(고종 43) 홍주의진(洪州義陣)과 연관되었다는 혐의로 일본군에 의해 연행되던 중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평촌리에서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시신을 잘 지켜주었다. 유진원은 충청남도 온양군 군내면 장존리[현재 아산시...
-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지식인이자 관료.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의 무신이자 일제강점기의 관료이다. 구한말 개화파의 일원으로 갑신정변과 을미사변에 참여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참의(中樞院參議) 등 고위 관료, 대지주, 기업가로 활동하여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려져 있다. 유혁로(柳赫魯)[1852~1940]의 본관은 진주(晋州),...
-
구한말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군인이자 정치인. 1878년(고종 15) 무과에 급제한 이후 대한제국 시기 육군참장(陸軍參將)과 여러 군에서 군수를 지냈다. 윤영렬(尹英烈)[1854~1939]의 본관은 해평(海平)이며, 자는 백웅(白熊), 호는 연구(蓮龜) 또는 경재(敬齎)이다. 1854년(철종 5) 음력 4월 15일에 윤취동(尹聚東)과 윤취동의 두 번째 부인 안동김씨(安東...
-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 큰새말에 있는 개화기 윤제형의 주거 건축. 윤제형가옥(尹瑅亨家屋)은 1900년경에 윤경선이 건립한 해평윤씨(海平尹氏) 가문의 가옥이며, 1986년 11월 19일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었다.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 121번지에 있다. 윤제형가옥은 새말 뒤편의 낮은 언덕을 배산(背山)으로 삼아 남서향으...
-
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의병 지원 활동을 한 지방 관료. 이규남(李圭南)[1862~1907]은 아산군아(牙山郡衙) 수서기(首書記)로서 1907년(고종 44) 11월 16일 의병이 아산분파소(牙山分派所)를 습격할 때 의병과 연계하여 길 안내를 하는 등 의병 지원 활동을 하다가 일본군에 체포되어 압송되던 중 동생 이규찬(李圭瓚)과 함께 피살되었다. 공훈전자사료관 독립...
-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 시기 충청남도 아산 지역 출신의 문신. 1905년 을사늑약 후에 민종식(閔宗植), 이시영(李始榮) 등과 의병을 규합하기로 하고 군자금을 마련하였으나 의병 명부 압수로 많은 사람이 체포되자 단식, 자결하였다. 이성렬(李聖烈)[1865~?]의 본관은 예안(禮安)이며, 호는 퇴암(退庵)이다. 외암(巍巖) 이간(李柬)의 6대손이다.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
조선 후기 동학농민군과 홍주의병 진압에 큰 공을 세운 문신.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혁명 당시 홍주목사(洪州牧使)로 있으면서 초토사(招討使)에 임명되어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승우(李勝宇)[1841~1914]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치경(穉敬)이다. 1841년(헌종 7) 태어났으며 효령대군 15세손으로 종친부직장(宗親府直長)으로 일하였다...
-
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동학 지도자. 1894년(고종 31) 10월 홍주성(洪州城) 전투에 참여하였으며 동문 밖에서 참살당했다. 이신교(李信敎)[1840~1894]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회안대군파(懷安大君派) 17세손이다. 입향조인 13대조 이사눌(李思訥) 이후 약 400년간 세거해 온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면 용화리[지금의 아산시 용화동]에서 태어나고 거주하였다...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에 있는 1870년대 온양군수 이응우의 선정비. 이응우(李膺愚)는 1871년(고종 8) 6월에 온양군수로 부임하여 3년여 동안 재임하였는데, 세수 감소 등으로 군의 재고가 부족해지자 자신의 녹봉을 내놓아 충당하였다. 이응우가 재임 중 충당한 비용이 모두 3천여 금이었다고 한다. 이응우는 온양군수직을 마치고 1874년 7월에 무주부사로 이임...
-
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대한제국군 해산에 맞서 싸운 군인. 이준영(李峻永)[1879~1907]은 1907년(고종 44) 4월 30일 대한제국군 시위보병(侍衛步兵) 제2연대 1대대에서 복무하던 중 군대 해산에 격분하여 일본군과 용감하게 싸우다 사망하였다. 이준영의 본관은 덕수(德水), 호는 운계(雲桂)이다.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의 형인 이요신(...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무신으로 동학농민혁명 때 토벌을 위한 관군으로 출동하여 전라도 장성 황룡촌전투에서 전사한 인물.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라도 장성 월평전역(月坪戰役)[황룡촌(黃龍村) 전투]에서 동학농민군과 싸우다 패하고 전사하였다. 이학승(李學承)[1852~1894]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습(景習)이다.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한...
-
개항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동학 지도자.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아산 일대의 동학농민군을 이끌고 봉기하였다. 정태영(丁泰榮)[1859~1922]의 본관은 나주(羅州), 본명은 정건섭(丁建燮)이다. 본적은 충청남도 아산군 선장면 대정리[현 아산시 선장면 대정리]이다. 1895년(고종 35) 부인 김태화와의 사이에서 장남 정규희(丁奎熙)[정수길(丁壽...
-
청일전쟁 시기 청국 군대가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주둔하면서 일본군에게 패배할 때까지 지역민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사건. 청국 군대는 1894년(고종 31) 6월 8일부터 25일까지 순차적으로 2,800명을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상륙시켜 주둔하였고, 7월에는 2,300명을 증파하여 모두 5,100명이 주둔하게 되었다. 아산과 인근 지역에서는 청국 군대의 주둔...
-
충청남도 아산시의 옛 온양군 지역에 대한 근대의 토지대장. 대한제국은 전국적인 양전(量田), 즉 토지를 조사·측량하기 위한 양지아문(量地衙門)[1898~1902]을 설치하여 수세에 활용할 양지아문양안(量地衙門量案)을 작성하였는데, 『충청남도온양군양안(忠淸南道溫陽郡量案)』은 1901년(광무 5)에 양지아문에서 작성한 온양군 내 9개 면에 대한 토지대장이다....
-
한말 을미사변 이후 1909년까지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국권 회복을 위하여 일어난 의병들의 활동. 한말 의병은 국가와 민족을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보전시키고자 자발적으로 무장 항쟁한 군사 집단이다. 주자학적 의리론과 존화양이론(尊華攘夷論)[중화를 받들고 이적을 물리침]을 기본으로 하는 국수보복론(國讐報復論)[국모의 원수를 갚아야 함]과 안민론(安民論) 등의 이념적 성격을 띠었다....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에 있는 현충사 터를 알리기 위해 1906년에 세운 비석. 현충사는 이순신과 이완, 이봉상의 제향을 이어오다가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철폐되었다. 그 뒤 일제의 강압으로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에 항거하며 지역 유림이 1906년 2월에 현충사 터에 유허비를 세웠다. 현충사 유허비는 충청남도 아...
-
1931년 충무공 이순신의 묘소와 위토가 일본인의 손에 넘어갈 상황에서 전개된 거족적 모금운동. 1931년 충무공 이순신의 묘소가 경매로 일본인의 손에 넘어갈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동아일보에서는 관련 기사를 작성하여 실었으며 송진우(宋鎭禹)·정인보(鄭寅普) 등은 이충무공유적보존회를 조직하여 동아일보사의 협력으로 성금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이후 전국적으로 자발적인 성금이 답지하여...
-
개항기 때에 활동한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면 세교리[현 배방읍 세교리] 출신의 항일운동가이자 교육자. 일본의 황무지 개척권 요구에 반대하는 규탄 선언서를 발표하였다. 홍필주(洪弼周)[1857~1917]의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호는 자은(紫隱)이다. 모당공(慕堂公) 홍이상(洪履祥)의 9세손이다. 할아버지는 홍희락(洪羲洛)이며 홍재모(洪宰謨)의 둘째 아들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