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591 |
---|---|
한자 | 申點 |
영어음역 | Sin Jeom |
이칭/별칭 | 성여(聖與),척재(惕齋),충경(忠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신대광 |
[정의]
조선 전기 안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성여(聖與), 호는 척재(惕齋). 증조할아버지는 신영석(申永錫)이고, 할아버지는 신원(申援)이다. 아버지는 신정미(申廷美)이며, 어머니는 이장배(李長培)의 딸이고, 부인은 박자봉(朴自芃)의 딸이다. 큰아버지 신순미(申順美)에게 입양되었다.
[활동사항]
신점(申點)[1530~1601]은 1564년(명종 19) 생원시에 합격하고 같은 해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1569년(선조 2) 사간원정언이 되었다. 이어 사헌부장령·홍문관수찬·홍문관교리·홍문관부교리·홍문관부응교 등을 거치며 경연관(經筵官)으로 입시하여 기묘사화(己卯士禍)에 관련된 인물들의 신원(伸寃)에 힘썼다.
1578년(선조 11) 사헌부집의가 되어 야인(野人)의 침입에 대비한 국방 강화를 주장하였으며, 1584년(선조 17) 경기도감목관이 되어 마정(馬政)을 순시하고 수령을 규찰하였다. 의주목사와 강원도관찰사로 나아갔다가,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파견되었다. 이곳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명나라 병부상서 석성(石星)의 도움을 받아 병부와 예부에 계속 상주하면서 요동병(遼東兵) 3,000명을 동원하도록 하였다.
명나라에서 돌아와 승지·오위부호군·동지중추부사·병조참의·형조참판·지중추부사·오위도총부도총관·동지의금부사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전란의 혼란을 수습하는 데 노력하였다. 1597년(선조 30) 강릉부사로 나아갔다가 판의금부사가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세운 공으로 1604년 선무공신(宣武功臣) 2등에 녹훈되고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에 봉해졌다.
[묘소]
묘소는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영의정으로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경(忠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