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전기 안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득길(得吉). 증조부는 강이행(姜利行), 할아버지는 예조참판 강징(姜澂), 아버지는 사옹원정 강억(姜億)이다. 강덕서는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에서 태어났다. 1573년(선조 6) 진사시에 합격하고 참봉을 지낸 뒤 158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예문관검열을 거쳐 홍문관응교, 평창군수 등을 지냈다. 한산군수 재직시 한산에...
-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기중(期中), 호는 표운(豹雲)·정은(貞隱). 증조부는 표암(豹庵) 강세황(姜世晃), 할아버지는 강빈(姜儐), 아버지는 현감 강이구(姜彛九), 어머니는 남리익(南履益)의 딸이다. 강세황 이후 후손들이 안산에 우거하였다. 강로는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에서 태어났다. 1837년(헌종 3) 진사시를 거쳐 1848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이진(而進), 호는 취금(醉琴). 할아버지는 좌승지 강응서(姜應瑞), 아버지는 현감 강종윤(姜宗胤), 어머니는 노경린(盧景麟)의 딸, 처는 임극순(林克恂)의 딸이다. 강면은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에서 태어났으며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05년(선조 38) 진사시에 합격하고 1610년(광해군 2) 별시...
-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여량(汝亮, 汝良). 진창군(晉昌君) 강인(姜絪)의 8세손으로 증조부는 강필득(姜必得), 할아버지는 강세정(姜世靖), 아버지는 강준흠(姜浚欽), 어머니는 권빈(權儐)의 딸이다. 강시영은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에서 태어났다. 1809년(순조 9) 진사가 되고, 1820년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수찬을 지냈다. 1829년 진...
-
조선 전기 안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중소(仲邵). 증조부는 강안복(姜安福), 할아버지는 강이행(姜利行), 아버지는 예조참판 강징(姜澂), 어머니는 연일정씨(延日鄭氏) 정미(鄭湄)의 딸, 처는 유응대(柳應臺)의 딸이다. 형으로 내자시판관 강의(姜儀)와 신창현감 강희(姜僖)가 있다. 강억은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에서 태어났다. 1534년(중종 29) 생원이 되고,...
-
조선 전기 안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중관(仲寬). 강안복(姜安福)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이조판서 강이행(姜利行)이고, 아버지는 예조참판 강징(姜澂)이며, 신창현감 강희(姜僖)와 내자시판관 강의(姜儀)의 동생이다. 어머니는 연일정씨로 정미(鄭湄)의 딸이다. 강위는 1539년(중종 34)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545년(명종 즉위) 진하사(進賀使)의 서장...
-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여승(汝承). 할아버지는 사옹원정(司甕院正) 강억(姜億)이고, 아버지는 응교(應敎) 강덕서(姜德瑞)이다. 강윤조는 1568년(선조 1)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1606년(선조 39) 생원이 되었고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내섬시직장(內贍寺直長), 한성부참군을 지냈다. 이후 외직으로 나아가 경상도의 성현도찰방(省峴道...
-
일제강점기 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4년(고종 21) 당시 경기도 시흥군 군자면 원곡리[지금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에서 출생하여 거주하였다. 강은식은 1919년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4일 오전 11시경 당시 경기도 시흥군 군자면 주재소 부근에는 약 1,000여 명이 집합하였다. 이미 3일 “거모경찰관주재소 및 군자면사무소를 불 질러 부숴버리자.”라...
-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자천(自天). 증조부는 강백년(姜栢年), 할아버지는 강현(姜鋧), 아버지는 강세황(姜世晃), 어머니는 진주유씨(晋州柳氏)로 유뢰(柳耒)의 딸이다. 강인은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에서 태어났다. 1765년(영조 41) 진사가 되었으며, 1772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75년 응제(應製)에서 수석을 하여 특별히 승륙(陞...
-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안산 출신의 유생. 본관은 진주. 자는 우경(羽卿), 호는 청천(菁川). 할아버지는 강현구(姜鉉九), 아버지는 강규환(姜奎煥)이다. 강재홍은 1835년 안산에서 태어났다. 강재홍은 향리에 우거하면서 많은 문집을 남겼으며, 향리에 세거하고 있는 성씨들의 족보인 『연성성보(蓮城姓譜)』의 정사보(丁巳譜)와 무인보(戊寅譜)를 편집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양...
-
조선 전기 안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백승(伯承), 호는 우정(牛井). 증조부는 예조참판 강징(姜澂), 아버지는 교위 강응서(姜應瑞), 어머니는 용인이씨(龍仁李氏)로 정랑 이영성(李永成)의 딸이다. 강종윤은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에서 태어났다. 1567년(명종 22) 진사에 오른 후 1596년(선조 29) 남평현감을 거쳤다. 묘소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양상동에...
-
조선 전기 문신이자 서예가.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언심(彦深), 호는 소재(少齋)·심재(心齋). 아버지는 강이행(姜利行), 어머니는 양천허씨(陽川許氏)로 허손(許蓀)의 딸이다. 강징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특하여 외삼촌인 우의정 허종(許琮)의 가르침을 받았다. 1486년(성종 17)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494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를 거쳐 예문관...
-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이헌(而憲). 아버지는 강종윤(姜宗胤), 어머니는 곡산노씨(谷山盧氏)이다. 강칙은 1617년(광해군 9)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선교(宣敎)로서 1621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같은 해 신지익(申之益)과 이이첨(李爾瞻)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벌이면서 이이첨의 충성스러움과 굳은 절개를 강력하게 변호하는 상소를...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증조부는 강주년(姜柱年), 할아버지는 판중추부사 강현(姜鋧), 아버지는 강세황(姜世晃), 어머니는 진주유씨(晋州柳氏)로 유뢰(柳耒)의 딸이다. 아내는 동래정씨(東萊鄭氏)로 진사 정광서(鄭光瑞)의 딸이다. 강흔은 1763년(영조 39) 경외(京外)에서 지영(祗迎)[백관이 임금의 환행(還幸)을 공경하여 맞음]하면서 영조가 유생에게 친시(親試)하...
-
조선 전기 안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중열(仲悅). 아버지는 예조참판 강징(姜瀓), 어머니는 연일정씨(延日鄭氏), 처는 나주김씨(羅州金氏)이다. 동생으로 내자시판관 강의(姜儀), 지제교 강억(姜億), 해주목사 강위(姜偉)가 있다. 나주김씨와의 사이에 자녀를 두지 못해 동생인 강의의 아들 강응서(姜應瑞)를 입양했다. 강희는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에서 태어났다. 음직...
-
일제강점기 안산 지역에서 국민들의 모금으로 국채를 갚기 위하여 전개된 국권회복운동. 1905년 강제적인 을사조약 체결을 통해 통감부 체제를 구축한 일본은 한국을 자신들의 식민지로 삼기 위한 본격적인 식민지 기초작업에 착수했다. 아울러 자국으로부터 거액의 차관을 도입하여 이를 식민지화 작업에 필요한 재원으로 충당하였다. 이러한 통감부의 차관 도입 정책에 따라 한국의 대일 부채는 19...
-
일제강점기 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이고, 1900년(고종 37) 당시 경기도 시흥군 군자면[지금의 안산시 단원구]에서 출생하여 1955년 사망하였다. 권희는 1919년 4월 6일 시흥군 군자면 집에서 자신이 발의하고 집필한 『비밀통고(祕密通告)』라는 제목 아래 글을 작성하고, 이를 각 마을에서 차례로 회담하도록 그림으로 표시하였다. 또한 “조선이 일본에 강점된 이래로...
-
일제강점기 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본관은 안산(安山), 자는 의전(義田), 호는 신암(愼庵)이다. 아버지는 김정락(金定洛)이다. 1882년(고종 19) 지금의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김경념은 5세에 한문과 서예를 사사하였고, 약관 20세에 사서삼경(四書三經)과 독학으로 사학과 법제·경제학을 두루 섭렵하였다. 1897년 신문화 수입을 주창하면서 부조금제의 폐지...
-
김시흥을 시조로 하고 김충주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안산의 세거 성씨. 안산에 살고 있는 김녕김씨(金寧金氏)는 단종 복위운동을 꾀하였던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의 후손들이 안산에 세거하면서 형성된 성씨이다. 김녕김씨의 연원은 계림김씨(鷄林金氏), 곧 경주김씨(慶州金氏)의 선원세계(璿原世系)로부터 시작된다. 시조 김시흥(金時興)은 김알지왕(金閼智王)으로부터 35세손이자 경순왕(敬...
-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용(景用), 호는 영어(穎漁). 아버지는 이조판서 김수근(金洙根)이며, 형은 영의정 김병학(金炳學)이다. 김병국은 경기도 안산현 구룡골[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일동]에서 태어났다. 1850년(철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대교(待敎)를 거쳐 1853년 대사성에 올랐다. 1857년 예조판서를 거쳐 이듬해 병조판서,...
-
일제강점기 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병권은 1879년(고종 16)에 출생하여 1953년 사망하였다. 묘는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 너빌마을에 있다. 김병권은 1900년 10월 무관학교 제2회 학도(學徒)에 선출되어 1903년 6월 졸업하고 육군 보병참위(步兵參尉)에 임관되어 복무하였다. 1907년 9월 14일 정미칠조약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면직되었다. 이후 안산 화정 너빌로 돌아와...
-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교(景敎), 호는 영초(穎樵). 아버지는 이조판서 김수근(金洙根)이며, 백부(伯父) 김준근(金浚根)에게 입양되었다. 영은부원군(永恩府院君) 김문근(金汶根)의 조카이다. 후사가 없어 김병유(金炳儒)의 아들 김승규(金昇圭)를 입양하였다. 김병학은 1825년(순조 25)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1853년(철종 4) 현...
-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회부(晦夫), 호는 계산초로(溪山樵老). 증조부는 김원행(金元行), 할아버지는 김이직(金履直)이고, 아버지는 목사(牧使) 김인순(金麟淳)이며, 어머니는 신일식(申日式)의 딸이다. 당대 세도가의 출신으로서 동생 김문근(金汶根)은 철종의 장인으로 영은부원군(永恩府院君)에 봉하여졌고, 두 아들 김병학(金炳學)·김병국(金炳國)은 모...
-
일제강점기 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수웅은 시흥군 농회 지도원으로, 1945년 2월 태평양전쟁 당시 시흥군 수암면 부곡리 411번지[지금의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에서 이와무라 다케오[岩村武雄] 등에게 “어떤 사람에게서 들은 바에 의하면 최근 부산 상공에 미국 비행기 B29가 내습하여 금년 4월에는 조선의 징용이 폐지된다는 전단이 다수 살포되었다.”라는 이야기를 전하였다. 이로 인...
-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사서(士舒), 호는 건암(健庵). 증조부는 김익겸(金益兼), 할아버지는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 김만기(金萬基), 아버지는 판서 김진규(金鎭圭), 어머니는 정소하(鄭昭河)의 딸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가 대제학을 역임하여 당대에 이름을 떨쳤다. 김양택은 1741년(영조 17) 생원이 되었으며, 1743년 알성문과에...
-
일제강점기에서 현대 안산 출신의 교육자. 본관은 김녕(金寧), 호는 향운(香雲)이다. 1907년(순종 1) 지금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 너빌마을에서 출생하였다. 김창성(金彰聲)의 2남이며 어머니는 경주이씨 이유학(李裕鶴)의 딸이다. 1987년 사망하였고, 묘는 경기도 포천군 영중면 금주리 금주공원묘지에 있다. 김용호는 안산공립보통학교를 거쳐 경기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경기도...
-
일제강점기 안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윤규는 1894년(고종 31) 당시의 경기도 수원군 은덕면 신남리에서 출생하였으며, 1962년 사망하였다. 김윤규는 1919년 3·1운동 당시 부천군 대부면 동리에 거주하던 중 4월 1일 대부도(大阜島)[지금의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에서 노병상(盧秉相)·홍원표(洪元杓)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시위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자신의 집에 모여...
-
경기도 안산 출신의 교육자이자 경제학자. 본관은 김해(金海), 초명은 김복태(福泰)이다. 1932년 지금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시동 범직이마을에서 아버지 김종선(金鍾宣)과 어머니 이순환(李舜煥) 사이의 3남으로 출생하였다. 묘는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신양리 대지공원묘지에 있다. 김이태는 1961년 동국대학교를 졸업한 후, 같은 해 농림부 농촌진흥청 공보관으로 있다가 1965년...
-
조선 후기의 문신. 안산김씨(安山金氏)로 자는 사중(士重)이며, 아버지는 교리 김취의(金就義)이다. 1624년(인조 2) 사마시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고 단성현감 등을 역임했으며, 인조조에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었다. 묘소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에 있다....
-
일제강점기에서 현대 안산 출신의 교육자.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1910년 지금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시동 범직이마을에서 김상욱(金相郁)의 3남으로 출생하였다. 어머니는 김녕김씨이다. 1980년 사망하였으며, 묘는 경기도 시흥시 거모동 군자중학교 뒷산에 있다. 김진섭은 경기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안산공립보통학교에 들어감으로써 처음으로 교육계에 투신하였다. 1945년 광복이 되자...
-
일제강점기 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천복은 1898년(고종 35) 당시의 경기도 시흥군 군자면 죽률리에서 출생하였다. 김천복은 안산 지역의 3·1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벌어지자 4월 4일 당시 시흥군 군자면사무소가 있던 거모리에서도 만세시위가 있었다. 4월 4일 오전 11시경 주재소 부근에 약 1,000여 명이 집합하였다. 이미 3일 “거모경찰관주재...
-
홍은열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안산의 세거 성씨. 안산시의 남양홍씨(南陽洪氏)는 남양(南陽)에서 안산 지역으로 이거해 오면서 형성된 성씨이다. 시조 홍은열은 『고려사(高麗史)』에 기록된 고려 혁명 4공신의 한 사람인 홍유(洪儒)와 동일인으로 추측되고 있다. 당홍(唐洪) 측에 의하면, 홍은열의 초명은 홍유, 자는 술(術)이었는데 고려 개국에 공을 세웠으므로 ‘은(殷)나라의 부열(傅說)...
-
일제강점기 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노병상은 1919년 전국 각지에서 만세 시위운동이 행해지고 있음을 듣고, 3월 31일 같은 동리에 사는 김윤규(金允圭)·홍원표(洪元杓) 등과 영전면의 사적장에서 만나 시위를 결의하였다. 그 날 밤 김윤규의 집으로 간 노병상은 준비한 포목으로 태극기를 만들고 다음날인 4월 1일 주민 다수를 규합하여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
18세기 안산에서 활동한 여주이씨와 주변 문인들의 시모임을 다룬 시회첩. 18세기 경기도 안산 단원에서 이광환, 이재덕, 이현환 등 여주이씨 집안과 강세황, 권매 등 문인이 참여했던 시회를 다룬 것으로, 당시 안산에 거주하던 재야 인사들의 자유로운 정신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분량은 얼마 되지 않으나 근기 지역 문인들의 활동을 잘 보여주고 있다. 1753년 이재덕의...
-
일제강점기 경기도 부천군 대부면 남리[지금의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1919년 3월 31일 경기도 부천군 대부면(大阜面) 신남리(新南里)에 사는 김윤규(金允圭)·노병상(盧秉相)·홍원표(洪元杓) 등은 영전리(營田里) 사적장(射的場)에서 만나 만세시위를 거행할 것을 약속하고 이날 밤 11시에 김윤규의 집에 모여 포목으로 태극기를 만들었다. 이튿날인 4월 1일...
-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19세기 말부터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항거하여 전개되었던 민족운동. 안산 지역 주민들은 1894년 갑오농민전쟁을 계기로 우리나라 내정 간섭을 한 시기부터 1945년 해방 때까지 다양한 형태로 저항운동을 전개하였다. 1895년 을미개혁·을미사변·단발령 등에 반대하여 안산 지역 주민들이 안산관아(安山官衙)를 습격하고, 관리(官吏)들의 주택 8채를 공격하여...
-
일제강점기 안산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사람들. 개화기로 접어들어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었던 안산 지역은 어느 지역보다 일제에 대한 저항이 강하게 나타났다. 1894년 일제는 안산 풍도에서 청나라 군함을 선제공격하여 청일전쟁을 일으켜 승리함으로써 동북아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그 후 일제에 의해 저질러진 을미사변에 이어 단발령이 내려지자, 안산 지역에서는 약 4천 명의 의병이 관...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이동에 있는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안산캠퍼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제동 318-18[통일로37길 60]에 본교를 두고 있고, 안산캠퍼스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이동 715-5에 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는 1997년 2월 사이버서울문예대학으로 개교하였다. 2001년 11월 4년제 정규 학사학위 과정 인정을 받아, 2002년 3월...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서 일어난 공사장 붕괴 사건. 1991년 6월 안산시의 도시 건설 과정에서 도심 지역인 고잔동에 롯데프라자를 신축하던 중 집중호우가 내려 사고 위험이 예측됐으나 건설사 측이 안전 조치를 하지 않은 채 지하 굴착 공사를 강행하였다. 롯데프라자 지하 3층 터파기 공사 도중인 6월 13일 오후 2시경 지하 흙막이벽이 지압에 밀려나 도로 우측에서부터 붕괴하며...
-
조선 말기 및 대한제국기 관료였던 유원성의 시문집. 유원성(柳遠聲)[1851~1945]은 개산(皆山) 유석(柳碩)의 7대손, 퇴당(退堂) 유명천(柳命天)의 6대손으로, 아버지는 유방(柳霶)이다.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주명(周鳴), 호는 모산(帽山), 백산(白山)이며, 조선 후기와 구한말에 활동한 관료이다. 1851년 안산 부곡동에서 출생하여 벼슬이 개천군수에 이르렀으나, 19...
-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자후(子厚). 증조할아버지는 찰방(察訪)을 지낸 박여헌(朴黎獻)이고, 할아버지는 호조참판을 역임한 박충생(朴忠生)이다. 아버지는 도승지를 지낸 박창(朴敞)이며, 어머니는 신임(愼恁)의 딸이다. 박종부(朴宗阜)[1600~1645]는 1633년(인조 11) 생원시에 장원 급제한 뒤 증광문과에 갑과 방안(榜眼)[전시의 갑과에 둘째...
-
경기도 안산에서 활동한 발탈[재담]예능 보유자. 박해일은 무성영화 변사였던 조하소로부터 재담과 화술을 배우면서 본격적으로 재담의 길로 들어섰다. 1953년 대한담우협회(大韓談友協會) 창립회원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장님타령」과 「잔칫집 풍경」이라는 덕담으로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1967~1974년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을 역임하였다. 1983년 안산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뒤...
-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반월면 팔곡리[지금의 안산시 상록구 팔곡동] 반월장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1919년 4월 1일 경기도 수원군 반월면 팔곡리 반월장터에서 600여 명의 주민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불렀다. 시흥군 수암면 비석거리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던 유익수(柳益秀)는 인근 지역인 수원군 반월면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그곳으로 가서 시위를 주도하였다. 유익수는 군중들에게...
-
김류 사후 유문을 모아 정리한 문집. 인조반정의 핵심 인물이었던 김류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부친은 임진왜란 당시 신립 장군과 함께 탄금대에서 왜적을 맞아 싸우다가 전사한 김여물이다. 1595년(선조 28)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간 뒤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모두 역임하였다. 반정공신이라는 공훈 이외에도 문장으로도 이름이 높았다고 전하며, 명나라에도 접반사...
-
일제강점기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 수암리[지금의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비석거리 만세운동은 경기도 내 주요 시위 중의 하나로, 1919년 3월 30일 오전 구 안산치소(安山治所)로 면사무소와 경찰주재소, 보통학교, 향교 등이 집중되어 있는 비석거리[碑立洞]에서 18개 리 2,000여 명의 군중이 모여서 벌인 독립만세운동이다. 비석거리 만세운동은 이미 전날인...
-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되어 경기도 안산 지역까지 확산된 독립만세시위.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은 그해 5월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인 독립운동으로 확산·전개되었다. 3·1운동의 목적은 민족 자주와 국권 회복에 있었다. 비록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성공하지는 못하였으나, 민족사적으로 우리의 독립 의사를 국내외에 평화적으로 알렸다는 점에 커다란 의의가...
-
예로부터 내려오던 경기도 안산 지역의 사설 기초 한문 교육 기관. 서당은 사족(士族)과 일반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향촌 사회에 생활 근거를 두고 면(面)·동(洞)·이(里)를 기본 단위로 하여 설립한 초·중등 교육기관이다. 학당(學堂)·사숙(私塾)·학방(學房) 등이라고도 한다. 서당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나 삼국시대 고구려에 경당(扃堂)이라는 마을...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 있는 사립 예술 전문대학. 서울예술대학교는 안산캠퍼스와 남산캠퍼스로 이원화되어 있다. 서울예술대학교은 안산캠퍼스에 대학본부를 두고, 예술 교육 전문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서울특별시 중구 남산동3가에 있는 남산캠퍼스는 예술 체험 전문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교육 활동은 안산캠퍼스를 통해서 이루어 지고 있다. 우리 고유의 민족 정서와...
-
일제강점기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에 있었던 소년 감화원. 일본은 1923년 감화령(感化令)을 발표하고 1924년 10월 1일 함경남도 영흥에 조선총독부 직속의 감화원(感化院)으로 영흥학교(永興學校)를 설치하였다. 영흥학교의 설립 목적은 8세에서 18세의 소년으로 불량 행위를 하거나, 불량 행위를 할 우려가 있는 자를 감화시킨다는 것이었다. 불량 행위에는 가벼운 절도뿐만 아니라...
-
18세기 이현환이 지은 문집. 이현환(李玄煥)[1713~1772]은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성수(星叟), 호는 학서(鶴西)· 섬와(蟾窩)이며, 초명은 이수환(李壽煥)이다. 행장이나 비지(碑誌)의 기록이 없어 정확한 생애를 파악하는데 어려운 면이 있는데 『섬와잡저』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이현환은 소릉(少陵) 이상의(李尙毅)의 후손으로, 이학휴(李學休)와 남양홍씨 사이에서 장남...
-
이재덕이 중심이 되어 안산의 성호가문에서 이루어졌던 시회(詩會)를 통해 수창(酬唱)한 시를 모아 놓은 시집. 성고(聲皐) 이재덕(李載德)[1711~1768]은 성호 이익(李瀷)의 족손(族孫)으로 자는 여후(汝厚), 호는 의추재(依楸齋)·성고(聲皐)·치헌(梔軒)이다. 부친 이이환(李頤煥)이 일찍 세상을 뜨자 서울에 살던 재종숙 이현환(李玄煥)의 집에 기거하며 과거를 준비하였...
-
경기도 안산 지역에 오랜 기간 집단을 이루며 살아온 성씨. 안산 지역은 1970년대 후반부터 공업 단지를 조성하며 기존의 마을이 소멸되었다. 현재까지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는 가문은 그리 많지 않다. 조선시대 안산 지역에 사패지를 받아 오랫동안 세거한 성씨로는 진주유씨, 파평윤씨, 전주이씨, 해주오씨 등과, 순천김씨, 양주최씨, 남양홍씨, 김해김씨, 단성이씨 등이 집성촌을 이루고...
-
6·25전쟁 당시 수리산을 비롯한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성포동·부곡동과 서해 연안에서 벌어진 전투. 전투를 주로 담당하였던 터키군은 1월 29일 성포리를 점령하였고, 1월 30일 터키군 포병대와 미 포병대는 화정리의 마하산 지역을 공격하였다. 뒤이어 수일간의 공방전 끝에 유엔군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어 유엔군은 서울을 재탈환하였으며, 수리산전투의 전쟁터였던 안산 지역에서도...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에 있는 사립대학. 뛰어난 개척 정신을 함양하고, 투철한 장인 정신을 고취하며, 성실·근면한 봉사 정신을 추구하는 것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94년 안산공업전문대학으로 설립 인가를 받아, 1995년 기계과·전기과 등 9개 학과 정원 720명으로 개교하였다. 초대 학장에 조영엽 박사가 취임하였다. 1998년 안산공과대학으로 학교 이름을 바꾸었다. 20...
-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경백(敬伯). 할아버지는 예조판서를 지낸 신점(申點)이고, 아버지는 문화부사를 역임한 신순일(申純一)이다. 어머니는 이광현(李匡顯)의 딸이며, 부인은 신경진(辛慶晋)의 딸과 연릉부원군 이호민(李好閔)의 딸이다. 신율(申慄)[1572~1614]은 조선시대 안산군 마유면 죽률리[현 경기도 시흥시 죽률동]에서 태어났다. 1595년...
-
김긍필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안산의 세거 성씨. 안산의 안산김씨는 시조 김긍필(金兢弼)의 아들 김은부(金殷傅)가 안산군개국후(安山郡開國侯)로 봉해진 이래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형성된 안산의 토성이다. 시조 김긍필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후손이며 고려 초 좌복야(左僕射) 벼슬을 하였다. 김긍필의 아들 김은부의 세 딸이 연이어 왕비가 되어 고려 덕종...
-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에서 발견된 중생대 후기 백악기의 퇴적암층. 1997년 채석장이던 대부광산에서 암석 채취 중 23개의 중생대 공룡 발자국 및 식물 화석이 발견되었고, 2003년 5월 경기도 기념물 제194호로 지정되었으며, 2009년 안산시와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안산 대부광산 퇴적암층 종합 정비 기본계획(안) 최종 보고회가 개최되었다. 지리적으로 공룡알 화석지인 시화...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일동에 있는 사립 전문대학. 기독교 정신과 대한민국 교육 이념에 의해 전문 교육을 함으로써 기독교 정신으로 국가와 지역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전문 직업인의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71년 12월 인천간호전문학교 설립 인가와 학교법인 새빛학원 설립 인가를 받아, 1973년 3월 개교 및 입학식을 하였다. 1978년 12월 20일 인천간호전문대학으로 승...
-
경기도 남서부 해안가에 있는 시. 안산시는 서해안의 공업 도시로 동쪽으로 군포시·의왕시·수원시, 서쪽으로 서해, 남쪽으로 화성시, 북쪽으로 시흥시와 안양시가 이웃하고 있다. 인구는 1986년 시 승격 당시 약 127,000명이었으나 1994년 460,000여 명으로 증가하였고, 2007년 12월 31일 현재 734,713명으로 증가하였다. 안산(安山)이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
조선 전기 안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산(安山). 중종의 장인으로 창빈안씨(昌嬪安氏)의 아버지이다. 안탄대(安坦大)는 1506년(중종 즉위년) 중종반정으로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책록되었고 적순부위(迪順副尉)에 올랐다. 부원군(府院君)의 위치에 있었음에도 집안이 몹시 가난하였고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일에는 결코 눈을 돌리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외손자인 선조가 우대하였으나 강직한...
-
최억을 시조로 하고 최혼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안산의 세거 성씨. 안산의 양주최씨(楊州崔氏)는 입향조 독선당(獨善堂) 최혼(崔渾)이 무오사화의 혼란을 피해 안산 지역에 은신한 이래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형성된 성씨이다. 시조 최억(崔億)은 고려 공민왕 때 학행(學行)으로 양주군(楊州君)에 봉해지고 문경(文敬)이란 시호를 받았다. 최혼이 연산군 때 무오사화로 정국이 혼란하자 몸을 숨...
-
경기도 안산 앞바다의 섬들은 바닷길을 이용하여 중국에서 우리나라 중부, 곧 평택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지역이다. 또한 남해에서 서해를 거쳐 서울로 가기 위해서도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중요한 곳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풍도 앞바다는 수심이 깊어 대형 선박이 정박하기에 좋을 뿐만 아니라, 충청도 서산과 당진, 경기도 평택, 중국과의 항로를 사방으로 감시하기 좋은 곳이...
-
개항기에서 일제강점기 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주(晋州), 아버지는 유원형(柳遠衡)이다. 1870년(고종 7) 지금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 출생으로 3·1운동 당시에는 지금의 상록구 월피동에 거주하고 있었다. 묘는 상록구 부곡동에 있다. 유익수는 3·1운동에 참여하였다. 전국적으로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1919년 3월 30일 능곡리의 윤병소(尹秉昭), 와리(瓦...
-
경기도 안산 출신의 문화예술인. 본관은 진주. 자는 화일(華日), 호는 창농(倡農)·화은(華隱)이고, 초명은 유해창(海昶)이다. 유방(柳霶)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원성(柳遠聲)이고 아버지는 유한수(柳漢秀)이다. 유갑수(柳甲秀)에게 입양되었다. 유해엽은 부곡동 매미골에 있는 경성당에서 거주하며 지역의 역사를 알리는 데 힘을 다했다. 묘소는 상록구 부곡동 선산에 있다. 유해엽은 휘...
-
일제강점기 안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명(異名)은 윤병소(尹秉昭)이다. 1893년(고종 30) 경기도 수원군 음덕면[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 출신으로 3·1운동 당시에는 수암면 능곡리 182번지에 거주하고 있었다. 윤병소는 1919년 3월 30일 시흥군 수암면[지금의 경기도 안산시 수암동] 일대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이해 3월 29일 이봉구(李鳳求)로...
-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쳐 한말에 이르기까지 안산 지역에서 국가의 운명이 위급할 때 자발적으로 조직된 순수한 민간 병사들. 고려사의 기록에 의하면 원종의 개경 환도 결정으로 삼별초군이 강화도 점거가 어려워지자 서해안의 도서를 거치면서 진도로 근거지를 옮기게 되었는데, 남하하는 도중에 처음 정박했던 지역이 대부도 옆의 영흥도였다. 하지만 여몽연합군은 감히 이를 공격할 엄두도 내지 못...
-
일제강점기 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봉문은 1890년(고종 27) 지금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에서 출생하였다. 이봉문은 1919년 3월 30일 당시 수암면 수암리 비석거리에서 면민 2,000여 명과 함께 행진하면서 만세를 불렀다. 순사의 해산 명령에 따르지 않고 태극기를 떠받들고 읍내로 행진하여 주재소·보통학교·면사무소·공자묘 앞에서 만세 시위 행진을 하였다. 해산 후 수...
-
개항기에서 일제강점기 안산 출신의 자선가. 이찬은 본관이 경주(慶州)로, 한말에서 1920년대 초까지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 지역의 재산가로 이름을 떨쳤다. 이찬은 부농(富農)의 아들로 태어나 생존해 있을 당시만 해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남동 일원의 토지는 거의 그의 소유라 할 만큼 대지주였다. 대부분의 농토는 많은 소작인들에 의해 경작되었다. 이찬은 마음이 소박하고 인정이 두터워 스...
-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활동한 향토사학자이자 서지학자. 필명은 이승언(李承彦)이다. 1945년 출생하여 2002년 사망하였다. 이한기는 당시의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 논곡리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부터 지역의 문화 발전에 관심을 갖고 옛것을 발굴하고 연구하며, 후세를 위해 이를 보존하겠다는 일념으로 주변에 흩어져 있는 신문과 고서적, 사료들을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1979년 본격적으...
-
1910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될 때까지 경기도 안산의 역사. 일제는 1910년 8월 29일 조선을 병합하는 강제 조약을 체결하고 통감부를 확장·개조하여 식민지 최고통치기구인 조선총독부를 설립하였다. 이어 일제는 강점 직후인 1910년 9월 ‘조선총독부관제’와 ‘조선총독부중추원관제’ 등의 법령을 반포하여 지배기구의 기본 골격을 마련하고, 아울러 ‘조선총독부지방관관제’를...
-
조선 전기 안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풍양(豐壤). 자는 사척(士惕). 아버지는 병마절도사를 지낸 조안국(趙安國)이며, 어머니는 생원 권세임(權世任)의 딸이다. 조경(趙儆)[1541~1609]은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제주목사를 거쳐, 1591년(선조 24) 강계부사로 있을 때 그곳에 유배되어 온 정철(鄭澈)을 우대하였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도...
-
조선 전기 안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국경(國卿). 아버지는 수군절도사를 지낸 조현범(趙賢範)이고, 어머니는 파성군(坡城君) 윤찬(尹贊)의 딸이다. 훈련원도정·한성부판윤 등을 지낸 조경(趙儆)[1541~1609]이 아들이다. 조안국(趙安國)[1501~1573]은 1524년(중종 19) 무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선전관청선전관이 되었다. 여러 차례 시사대회(試射大會...
-
조선 전기 안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풍양(豊壤). 아버지는 장사랑 조지진(趙之鎭)이다. 조현범(趙賢範)[?~1538]은 1501년(연산군 7)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주부·훈련원판관·오위도총부도사·훈련원부정·훈련원정을 역임하였고, 1506년(중종 1) 의주판관과 1512년(중종 7) 평안도우후를 지냈다. 1520년(중종 15) 부평부사를 거쳐, 1528년 온성부사로 재직하던 중 야...
-
유정을 시조로 하고 유적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안산의 세거 성씨. 안산의 진주유씨(晋州柳氏)는 시조 유정의 17세손 유적(柳頔)이 안산에 아버지 묘자리를 정한 이래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형성된 성씨이다. 유정(柳挺)은 고려의 상장군으로 토진주(土晉州)로 불리는 별파의 시조이다. 유정의 후손들은 원래는 충청북도 괴산에 살았는데 유정의 11세손이자 유시회(柳時會)의 조카인 영정파(永貞...
-
일제강점기에서 현대 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교육자. 최승만은 1897년(고종 34) 지금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서 출생하여 1984년 사망하였다. 최승만은 장훈초등학교를 거쳐 1915년 보성중학교를 졸업한 뒤 1917년 동경관립 외국어학교 노어과(露語科)에 재학하던 중 유학생 최팔용(崔八鏞) 등과 독립운동을 추진하여 2·8독립선언을 발표하였다. 유학생이 중심이...
-
윤신달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안산의 세거 성씨. 파평윤씨의 시조 태사공(太師公) 윤신달은 고려 태조를 도와 공을 세웠다. 안산에 살고 있는 파평윤씨(坡平尹氏)는 스스로 ‘안산윤씨’라고 칭할 만큼 가세가 번성하였다. 영천부원군(鈴川府院君) 윤사로(尹師路)와 영평위(鈴平尉) 윤섭(尹燮) 등 부마가 2인이고 이조판서 윤강(尹絳)과 윤강의 아들 좌의정 윤지선(尹趾善), 판서 윤지완(尹趾完...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 있는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폭넓은 교육을 통하여 근면하고 정직하며 겸손한 교양인, 전공 분야의 심오한 이론과 고도의 기술을 겸비한 전문인, 다양한 학문의 지식을 사회에 응용할 수 있는 실용인, 문화적 다원성을 이해하고 국제사회에서 활약할 수 있는 세계인, 지역 사회와 국가 나아가서 인류 사회의 번영에 공헌하는 봉사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
조선 후기 안산 지역에서 활동한 유경종의 시문집. 유경종(柳慶種)[1714~1784]은 진주유씨(晉州柳氏) 백참판공파(伯參判公派)의 인물로 자는 덕조(德祖), 호는 해암(海巖)이며, 18세기 안산을 기반으로 활동한 남인계 문인이다. 유경종이 생존 시기에 저술한 작품들을 모아 그 학문과 정신을 함양하고자, 1993년 진주유씨모선록편찬위원회에서 『진주유씨문헌총집(晋州柳氏文獻總輯)』 총...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낙부(樂夫), 호는 해봉(海峯). 증조할아버지는 홍춘경(洪春卿)이고, 할아버지는 홍일민(洪逸民)이다. 아버지는 진사 홍영필(洪永弼)이며, 어머니는 조수(趙琇)의 딸이다. 첨지중추부사·예조참의를 지낸 홍처윤(洪處尹)[1607~1663]이 아들이며, 승정원도승지·형조참판을 지낸 홍수주(洪受疇)[1641~1704]가 손자이다. 홍명원(洪命元...
-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구언(九言), 호는 호은(壺隱)·호곡(壺谷). 할아버지는 관찰사를 지낸 홍명원(洪命元)이고, 아버지는 예조참의를 지낸 홍처윤(洪處尹)이다. 홍수주(洪受疇)[1641~1704]는 1682년(숙종 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간원정언·사간원헌납을 역임하였으며, 1684년 사헌부장령으로 재직 중 붕당 문제로 파직되어 경흥(慶...
-
일제강점기 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순칠은 1877년(고종 14) 지금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에서 출생하여 1932년 사망하였다. 현재 안산시 단원구 와동체육공원에 기념비가 있다. 홍순칠은 1919년 3월 29일 시흥군 수암면 와리에서 독립 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여 태극기를 제작하고 주민을 규합하는 일에 참여하였다. 다음날인 3월 30일 비립동에 집결하기로 하여 주민들에게...
-
일제강점기 안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홍원표는 1875년(고종 12) 경기도 화성에서 출생하여 1919년 3·1운동 당시 부천군 대부면 동리[지금의 안산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1962년 사망하였다. 홍원표는 3·1 독립 선언이 있은 후 전국 각지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함성이 높아지자 이에 적극 호응하여 3월 31일 부천군 대부면에 사는 김윤규(金允圭)·노병상(盧秉相)과 영전리...
-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지임(之任), 호는 안분재(安分齋). 할아버지는 진사 홍영필(洪永弼)이고, 아버지는 경기관찰사를 지낸 홍명원(洪命元)이며, 어머니는 윤민준(尹民俊)의 딸이다. 경기도관찰사·승정원도승지·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홍수주(洪受疇)[1641~1704]가 아들이다. 홍처윤(洪處尹)[1607~1663]은 1639년(인조 17) 알성문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