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D0203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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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정현 |
옹천리에서는 한국전쟁 이전까지 해마다 동채싸움과 줄당기기가 번갈아가면서 연행되었다고 한다. 동채싸움은 정월 대보름 당일에 행해졌는데, 전통적으로 옹천1리와 옹천2리는 동부가 되고, 옹천3리는 서부가 되어 편을 구성하였다. 양편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동채싸움을 하기로 결정하면, 각 편에서는 동채를 만드는 데 사용할 나무를 구해서 보름 전날까지 동채를 만들고, 싸움을 할 때 머리꾼으로 나설 사람을 정하는 등의 작전을 짰다.
옹천리에서 사용되던 동채는 일반적인 째기동채(지게 모양의 작은 차전놀이 기구)의 모습과 같지만 그 크기에서 차이가 났다고 한다. 보다 많은 사람이 동채를 멜 수 있도록 동채를 아주 크게 만들었던 것이다.
보름날이 되면 양편은 본격적으로 싸울 준비를 한다. 동채싸움의 인적 구성은 대장과 머리꾼, 동채꾼으로 이루어진다. 대장은 용력이 세고 날쌘 사람으로 선정하였다. 머리꾼 역시 대담하고 힘이 센 사람들 가운데 20~30명을 선정하였으며, 상대팀과 구별하기 위하여 한쪽은 머리에 수건을 동여맸다. 동채를 메는 동채꾼들은 기골이 건장한 30~40대 사람들로 구성했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동채 뒤를 따라다니며 자기편을 응원하였다. 이때 마을의 풍물패들이 함께 하면서 신명을 북돋았다.
싸움 준비가 끝나면 동부와 서부로 나뉜 양편은 놀이장소인 마을 한가운데의 논으로 이동하여 싸움을 전개한다. 이때는 이미 날이 저물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곳곳에서 치켜든 횃불과 밝은 보름달이 주위를 밝혀 주었다.
싸움은 먼저 팔짱을 낀 머리꾼들의 격렬한 충돌로 시작된다. 머리꾼들의 싸움이 어느 정도 전개되어 각 편의 동채가 노출되면 이어서 동채끼리 접전이 시작된다. 서로 동채를 부딪혀서 상대편의 동채를 밑에 깔고 내리누르기 위하여 양편은 대장의 지휘에 따라서 기민하게 움직인다. 상대편의 동채가 땅에 떨어지면 승부가 결정되는데, 이렇게 되면 각각 마을로 돌아가 잔치를 벌이고 밤이 이슥하도록 즐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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