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B020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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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
시대 | 조선/조선,근대/근대 |
집필자 | 한양명 |
“동부야~ 서부야~”
“좌로 돌아라~ 우로 돌아라~ 전지하라~”
“와~ 이겼다~ 만세~”
금소리에서는 이렇게 정월 대보름이 되면 동네 한가운데 꽁꽁 얼어붙은 논에서 주민들의 뜨거운 함성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이날 주민들이 동부와 서부로 편을 나누어 동채싸움을 벌였기 때문이다. 동채싸움은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고 동채머리끼리만 누른다’는 간단한 규칙이 있지만, 막상 놀이가 시작되면 승리를 위해 격렬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단다. 동채싸움이 시작되면 ‘맨발로 얼음 위를 뛰어다녀도 추운 줄 모를 정도’로 너나할 것 없이 놀이에 몰입하였다고 임재정 씨가 회고한다. “
아침에 새 짚신을 신고 나오는데 동채싸움이 끝나고 나면 신발이 어디 갔는지도 몰라. 그리고 논바닥은 살얼음이 얼어 있는데 맨발로 다녀도 발 시린지 모른다니까. 한 마디로 신명에 미친 거지.”
동채싸움은 여럿이 모여 하는 놀이이기 때문에 누구 한 명이 잘한다고 해서 승리할 수 없었다. 동채싸움에서 동부가 이기면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었는데, 이는 동부가 시간 개념으로 봄을 상징하고 있어 주술적으로 생산의 계절인 봄의 승리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승부를 조작하며 서부에서 일부러 져주는 일이 없었기에 양 편에서는 승리를 위해 온 힘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동채 만들랴, 해코지 당하지 않기 위해 보초 서랴, 하루 종일 동채싸움 하랴 피곤할 법도 하지만 동채싸움에서 이길 새면 주민들은 밤새 풍물을 치고 술을 마시며 승리를 자축하였다고. 그러다 그 흥에 못 이겨 집집마다 돌면서 지신밟기를 했는데, 그럴 때는 어떤 일이건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아났다고 한다.
금소리 여성들의 신명 역시 만만치 않았다. 여성들은 놋다리싸움을 하면서 “이겨라~ 이겨라~ 웃마 깜둥이 이겨라~~아랫마 깜둥이 이겨라~~” 하고 목청이 터져라 소리치며 남성 못지않은 신명을 발산하였다.
금소의 여성들은 보름 명절 동안 일상생활의 강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들은 ‘의례’라는 명분 아래 집 밖에서 남성 못지않은 격렬한 편싸움을 전개하고 몰입함으로써 다른 사회적 장치에서 좀처럼 맛보기 힘든 해방감을 경험하였던 듯하다. 조영선 할머니는 당시의 일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신명이 나는 표정이었다. “승벽이 한정도 없었어 그땐. 안 나오면 데리러 가고. 우리는 새시절(새댁)이라고 뒤에 따라 댕기고.”
이 기간에 남성들은 여성들의 문밖출입을 통제하지 않았으며, 노래 부르고 춤추는 등의 행위도 탓하지 않는다. 또한 가장 여자답지 못하게 서로 어울려 격렬하게 싸우는 놋다리싸움이 벌어지면 여성들이 마음껏 놀 수 있도록 눈길을 딴 데로 돌리며 보호해 주었단다.
금소에서는 놋다리싸움을 하는 날이면 다른 마을로 시집간 딸들도 응원을 왔는데,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동부에서 살다가 서부로 시집을 갔으면 구경을 와서는 서부를 응원해야 했다고. 그런데 굳이 자신의 고향을 응원하지 않더라도, 역동적으로 이루어지는 동채싸움의 신명을 느끼기 위해 매년 대보름이면 친정마을을 찾아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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