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24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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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恭愍王-五馬隊 |
영어의미역 | Omadae Battle Site of King Gongmin |
이칭/별칭 | 「공민왕의 싸움터 오마도」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인계리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조정현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인계리에서 공민왕의 싸움터 오마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공민왕(恭愍王, 1330~1374)은 고려 제31대 왕으로 이름은 전(顓), 호는 이재(怡齋)·익당(益當)이다. 왕위에 오른 뒤 원나라를 배척하고 친원파인 기씨(奇氏) 일족을 제거하였다. 또한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는 등 국위를 떨쳤으나 최만생(崔萬生)과 홍윤(洪倫)에게 살해되었다.
[채록/수집상황]
1981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인계리에서 주민 이기영(남, 58)이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1981년 일조각에서 출간한 『한국구비전설의 연구』에 수록하였다. 이후 1983년 한국연구원에서 출간한 『한국설화의 유형적 연구』와 1991년 지식산업사에서 출간한 『설화작품의 현장론적 분석』, 그리고 1999년 안동시사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안동시사』에 재수록하였다.
[내용]
1361년 제2차 홍건적의 난을 피해 공민왕이 안동으로 몽진하였을 때의 일이다. 당시 공민왕이 안동에 주재하고 있을 때 적이 내려와 싸움이 일어났다. 그래서 공민왕은 산성을 쌓기 시작하였는데, 예안면 부포리부터 쌓기 시작하여 산 능선을 타고 산성마을이라는 데까지 성을 쌓았다. 그런데 그 길이 얼마나 크고 넓었던지 말 다섯 필을 타고서 왔다 갔다 할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는데, 그 길을 오마대라고 부른다.
[모티프 분석]
「공민왕의 싸움터 오마대」의 주요 모티프는 ‘공민왕의 몽진’과 ‘공민왕이 쌓은 산성’이다. 공민왕이 안동 지역으로 몽진하여 산성을 쌓았다는 전설이자 산성을 쌓은 길이 무척 넓어 말 다섯 필이 오갈 수 있을 정도였다 하여 오마대라 부르게 되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위대한 인물과 안동 지역의 관련성을 자연 지물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구조로서, 말 다섯 필이 끄는 마차는 아무나 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상식을 통하여 공민왕이 안동 지역에 왕림하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더불어 청량산 일대에 공민왕이 왕림하였음을 말 다섯 필이 끄는 마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인 오마대가 증명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안동 지역에는 공민왕의 몽진에 관련한 많은 설화가 전하는데 「용상동 여랑당」·「공주를 태워서 시작된 놋다리밟기」·「서기가 비친 영호루 현판」 등이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