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5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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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瀁模 |
영어음역 | Gim Yangmo |
이칭/별칭 | 김양모(金養模),여함(汝涵),응봉(鷹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근대 |
집필자 | 한준호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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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
성별 | 남 |
생년 | 1850년 |
몰년 | 1935년 |
본관 | 의성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여함(汝涵), 호는 응봉(鷹峰). 만주에서 활동한 김연환(金璉煥, 1879~1947)의 아버지이다.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의 후손으로 1850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묘소는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있다.
[활동사항]
김양모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 등으로 인해 전국에서 의병항쟁이 펼쳐지자 안동의진(安東義陳)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김양모는 1919년 3월 일제의 조선 국권 침탈 과정을 폭로하면서 한국 독립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호소하기 위해 김창숙(金昌淑)이 주도한 파리장서 의거에 유림의 한 사람으로 서명하였다가 체포되었다.
파리장서 의거는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한국 유림 대표 137인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강화회의에 일본의 침략상과 한국의 피해 실정을 밝힌 독립청원서를 보낸 사건이다. 흔히 파리장서 사건·파리장서 운동·제1차 유림단 의거라고 부르기도 한다. 안동 출신으로는 김병식(金秉植)·류연박(柳淵博)·류필영(柳必永)·이만규(李晩煃) 등이 관여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6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