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
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은수(殷叟), 호는 백서(白棲) 혹은 산미(山薇)이다. 1869년(고종 6)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에서 출생하였다. 강인수는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서울에서 동우회(同友會)를 조직하고 국권 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1907년 헤이그 밀사 파견에 연루되어 일본 경찰로부터 수배...
-
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주(晋州). 호는 송석(松石). 평해군수를 거쳐 대한제국 육군 호위영관으로 있을 때인 1907년 8월 1일 일제가 군대를 강제 해산하자 호남 지방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전라북도 임실군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라도 지역의 구례·동복·담양·순창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전라남도 장성군을 무대로 3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일본군과 교전하는 등 항일...
-
1361년 12월 홍건적의 침입 때 공민왕이 경상북도 안동으로 피난한 사건. 원명 교체의 격변기인 고려 후기에는 북로남왜(北虜南倭)로 불릴 만큼 홍건적과 왜구가 창궐하였다. 홍건적은 원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 한족(漢族)을 중심으로 구성된 반란군으로 공민왕 즉위 무렵에 조직되었다. 만주로 진출하여 랴오양[遼陽]을 점령하였다가 원나라 군대에게 쫓기게 된 홍건적은 퇴로(退路)를 한반...
-
1910년 8월 22일에 맺어진 경술국치로 온 국민은 충격에 빠졌다. 당시 이에 항거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졌다. 첫째는 일제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둘째는 일제의 감시를 피해 보다 적극적인 투쟁활동을 벌였다. 후자의 경우 만주 지역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하는가 하면, 만주 지역에서 펼쳐지고 있는 독립군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 마련...
-
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공서(公瑞), 호는 추산(秋山), 또 다른 이름은 권혁린(權赫麟)이다. 1886년(고종 23)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검암리에서 출생하여, 사근도찰방(沙斤道察訪)을 지낸 조부 권헌봉(權憲鳳)의 가르침 속에서 성장하였다. 1910년 한일병합이 되자 권기일은 1912년 3월경 조부모를 남겨둔 채 가족을 이끌...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종백(宗伯), 호는 동산(東山)이며, 또 다른 이름은 권재만(權在萬)이다. 1886년(고종 23)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율세동에서 출생하였으며, 묘는 안동시 안막동에 있다. 권정필은 1919년 11월 만주로 망명하여,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였다. 이후 권정필은 1922년 6월 상하이에서 서울로 들어와 당시 국내에...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이며, 1880년(고종 17)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서 출생하여 1945년 사망하였다. 김규식은 1907년에 안동 진천에 설립된 근대식 학교인 협동학교(協東學校)에서 교사로 활동하였다. 1910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이 멸망하자 김동삼(金東三)·이상룡(李相龍) 등 안동 지역 인사들이 신민회(新民會)와 더불어 해외...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치방(致邦), 호는 속은(俗隱)이다. 1886년(고종 23)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에서 출생하여, 1970년 사망하였다. 김규헌은 의용단원(義勇團員)으로 활동하였는데, 의용단은 1920년 9월에 결성되어 1922년 12월까지 활동한, 서로군정서를 후원하기 위한 국내 비밀결사 조직이었다. 당시 조선민족대동단...
-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成), 자는 중언(中彦), 호는 비서(賁西)이다. 만주에 들어가 백두산 기슭에 산다는 뜻에서 백하(白下)라는 별호(別號)를 사용하기도 했다. 1845년(헌종 11)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서 우파(愚坡) 김진린(金鎭麟)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김대락은 1845년 안동에서 세가 좋았던 천전(川前: 내앞) 마을에서 태어나...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초명은 찬식(纘植), 또 다른 이름은 김동만(金東萬)이다. 1880년(고종 17)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서 출생하였다. 만주에서 활약한 일송(一松) 김동삼(金東三)의 동생이다. 김동만은 1910년 대한제국이 멸망하자 김대락(金大洛)·이상룡(李相龍) 등 안동 지역 인사들이 신민회와 더불어 해외 독립운동 기지 건...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본명은 긍식(肯植), 자는 한경(漢卿)이었는데, 만주로 망명해서는 이름을 동삼(東三), 자는 성지(省之), 호는 일송(一松)으로 고쳤다. 1878년(고종 15)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서 김계락(金繼洛)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년 시절에는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의 문하인 김주병(金周秉)에게서 전통 교육을...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 풍산(豐山), 자는 회일(會一)이다. 1894년(고종 31)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풍산김씨 동성마을인 오미리에서 출생하였다. 김만수는 1913년 만주로 망명하여 길남장(吉南庄)의 군사가 되었다. 길남장은 1918년 봄 안동 출신으로 만주 지역 최고 지도자인 이상룡(李相龍)이 화전현에 설치한 병영이다. 그 후 김만수는 1919년 4월...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형일(亨一), 호는 근암(槿庵)이다. 할아버지는 경상도 도사(都事)를 지낸 김진린(金鎭麟, 1825~1895)이며, 만주 독립군 기지 개척의 지도자였던 김대락(金大洛, 1845~1914)이 큰아버지이다. 1866년(고종 3)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1리(내앞마을)에서 김효락(金孝洛)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만...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병렬은 1892년(고종 29) 경상북도 안동에서 의병대장 김관수(金觀洙)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평안남도 맹산에서 거주하다가 1946년 사망하였다. 김병렬은 1918년 평안남도 덕천의 광명학교 교사로 활동하다가 1919년 6월 김두석(金斗石)의 소개로 대한독립청년연합회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집을 하였고, 대한독립단 맹산지단(孟山支團)을 조직하였다....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문조(文祖)이다. 아버지는 김규식(金圭植)이며, 만주 독립군 기지 개척의 지도자였던 김대락(金大洛, 1845~1914)이 큰아버지이다. 1896년(고종 33)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1리에서 장남으로 출생하여 1936년 사망하였다. 묘는 만주에 있다. 김성로는 1907년 대한제국군인 부위(副尉)로 있을 당시...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맹옥(孟玉), 호는 일산(一山), 또 다른 이름은 김종훈(金宗勳)이다. 1890년(고종 27)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내앞마을에서 태어났다. 임하면 천전리에 묘가 있다. 김성로는 1907년 류인식(柳寅植)·김동삼(金東三) 등이 설립한 협동학교(協東學校)를 입학, 졸업하였다.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윤화(潤和), 호는 하구(何求)·학우(鶴友)이다. 1883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현애리에서 태어났다. 김시현은 1899년 서울에 올라가 중교의숙(中橋義塾)에서 수학하였으며, 1908년 이후 교남교육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11년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대학 전문부 법학과에서 공부하였다. 1917년 졸업 후...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여함(汝涵), 호는 응봉(鷹峰). 만주에서 활동한 김연환(金璉煥, 1879~1947)의 아버지이다.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의 후손으로 1850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묘소는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있다. 김양모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 등으로 인해 전국에서 의병항쟁이 펼쳐지...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기중(器仲), 호는 학운(鶴雲)이다. 1879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학봉 김성일(金誠一)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파리장서 의거에 참여한 김양모(金瀁模, 1850~1935)가 아버지이다.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김연환은 1910년 일제에 의해...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근심(謹心). 1868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마리에서 태어났다. 중국 길림성에 묘소가 있다.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김영목은 같은 해 3월 안동면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안동면 만세시위는 총 세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즉 1차는 3월 13일, 2차는 3월 18일, 3차...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영춘은 1924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태어났다.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안동 출신의 한국광복군 대원들은 1944년 일제에 강제로 징병되어 중국 제9전구로 이동 도중 탈출하여 한국광복군으로 편입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외에도 만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만주사변...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여현(汝見)이다. 학봉 김성일(金誠一)의 종손으로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의 손자이다. 1887년 천년불패의 땅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으며, 묘도 이곳에 있다. 김용환은 할아버지 김흥락의 영향을 받아 쓰러져 가는 나라를 세우고자 1908년 이강년(李康秊) 의진에 참가하여 김현동(金賢東)과 함께 적정(敵情) 탐지의...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이명은 김소창(金笑蒼), 자는 계서(繼西)이다. 1888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김원식(金元植)은 1919년과 1920년 대구를 중심으로 폭탄 구입과 임시정부 자금 지원에 참여하였다가 만주 펑톈성[奉天省]으로 망명하였다. 이후 안동 출신 인물들이 집결해 있던 서로군정서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집과...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풍산(豊山). 이명은 김응범(金應範)이고, 자는 경장(景章), 호는 동전(東田)이다. 1878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에서 태어났다. 의열단원 김지섭(金祉燮)의 일가이다. 김응섭은 1908년 재경 영남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교남교육회의 본회 임원으로 참가하여 교육구국운동에 앞장서서 활동하였다. 1911년 1월...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문백(文伯)이다. 일송 김동삼(金東三)의 6촌 동생으로 1889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서 태어났다. 김장식은 1919년 3월 정인호(鄭寅琥) 등이 조직한 구국단(救國團)에서 활동하였으며, 만주로 망명한 이후에는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서 활동하였다. 김장식이 참여한 서로군정서는 1919년 4월 이상룡(...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주서(周瑞), 호는 근전(槿田)이다. 1891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에서 태어났다. 공산주의 운동을 통해 조국의 독립을 실현하고자 했던 인물이다. 김재봉은 1908년 대구 계성학교를 졸업한 후 1909년 경성공업전습소에 입학하여 염직과를 3년간 수학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1917년 풍산 오미동에...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일중(一中)이다. 만주에 독립군 기지를 개척한 김대락(金大洛, 1845~1914)이 큰아버지이다. 1888년 의성김씨 동성마을인 내앞마을(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1리)에서 김소락(金紹洛)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10년 일제에 나라를 강점당하자 김정식의 큰아버지 김대락은 김동삼(金東三), 이상룡(李相龍)...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중한은 본관이 안동(安東)으로 1897년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상리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국현(國賢), 호는 춘산(春山)이다. 1952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김중한은 1910년 일제가 강제로 국권을 빼앗자 만주로 망명할 것을 결심하여, 1919년 2월 안동 애국지사들...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필락은 본관이 의성(義城)으로 1873년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오대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성옥(聲玉), 호는 오은(梧隱)이다. 1919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오대리 홍은사 바로 뒤에 있다. 일찍이 김대락(金大洛)·김동삼(金東三) 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1910년 이들이 만주로 망명하자, 나라를 떠나면 영원히 잃게 된다고...
-
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 단체. 대한광복회는 군자금 수합, 독립군 양성, 연락 거점 마련, 무기 비축 등을 통하여 독립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3년 의병 계열의 인사들이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에 모여 조직한 광복단과 1915년 대구에서 결성된 계몽운동단체인 조선국권회복단의 일부가 결합하여 1915년 7월 15일 대한광복회를 결성하였다. 여기에 안동 출...
-
조선 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애국계몽운동 단체. 대한협회 안동지회는 교육과 식산흥업으로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한 단체로 국민의 정치 참여 능력 함양과 항일 무장 투쟁을 위한 의용병 양성을 목표로 설립되었다. 1909년 3월 이상룡(李相龍)·류인식(柳寅植)·송기식(宋基植) 등 안동 혁신 유림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설립 초기 안동의 보수 유림들의 반발과 비판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지회...
-
1894년부터 1945년까지 안동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민족운동. 안동의 독립운동은 1894년 갑오의병을 시작으로 1945년 안동농림학교 학생항일운동에 이르기까지 51년 동안 줄기차게 전개되었다. 안동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운동은 의병 항쟁, 애국계몽운동, 항일 투쟁, 3·1운동, 대중운동, 사회주의운동, 학생운동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약육강식의 원리가 세상을 지배하던 19세기...
-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전개한 안동 지역 인사들. 안동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지역이다. 대개 시·군 단위로 30여 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하였는데, 안동 지역의 경우 2009년 현재 321명이 독립운동 유공자로 포상을 받았다. 여기에다 아직도 확인 중에 있는 미 포상 독립운동가 700여 명을 합치면 무려 1,000명이 넘는다. 안동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은 단순히...
-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걸친 세계의 역사는 하나의 커다란 대립 구도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이라는 한쪽과 이에 맞서는 아시아·아프리카의 구국운동과 독립운동이라는 다른 한쪽이 부딪치는 구도였다. 침략국들은 입으로는 인도주의와 인류 공영을 소리 높여 외치면서, 실제로는 약자를 무자비하게 장악하고 탄압하는 모순된 역사를 빚어냈다. 이 같은 제국의의 침략에...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 본관은 전주. 초명은 화종(花宗), 호는 단주(旦州)와 월파(月坡)이다. 1894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계곡리에서 류이흠(柳頤欽)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류림은 안동의 내앞마을에 설립된 근대식 중등학교인 협동학교(協東學校)를 다녔다. 졸업 후 1915년 정진탁과 함께 대구에서 부흥회(復興會)를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1917년에는...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류세진은 1886년(고종 23)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의 전주류씨 동성마을인 무실마을에서 태어났다. 1910년 나라가 일제의 의해 무너지자, 류세진은 독립운동을 위해 1919년 중국 만주로 망명하여 봉천 및 개원 지방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1922년 11월경 대한통의부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대한통의부는 1922년 8월 남만주 지역에서...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풍산(豊山), 또 다른 이름은 류원해(柳原海)이다. 한국광복군으로 활동한 류시보(柳時保)의 아버지이다. 1907년(순종 1)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출생하여 1945년 사망하였다. 류소우는 아들 류시보, 조카 류시훈(柳時薰)과 같이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42년 4월 15일 한국광복군에 입대한 류...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풍산(豊山). 아버지는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한 류소우(柳炤佑)이다. 1925년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출생하여 1994년 사망하였다. 류시보는 아버지 류소우와 함께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42년 8월 13일 류시보는 중국 하남 개봉에서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제1지대 본부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안동 출신의...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풍산(豊山). 또 다른 이름은 류해동(柳海東)·김세진(金世鎭)이다.1895년(고종 32)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구담리에서 출생하여 1945년 사망하였다. 류시언은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비밀 명령을 받고, 같은 해 다시 국내로...
-
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박여(璞汝)·응만(應萬), 호는 성남(星南)이다. 또 다른 이름으로 류시영(柳時榮)·류시영(柳時永)·류시종(柳時宗)·류시연(柳時然)·류승일(柳承一) 등이 있다. 1872년(고종 9)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서 태어났다. 현재 임동면 수곡리에 묘가 있다. 류시연은 1896년부터 1914년 42세에 순국할 때까지...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풍산(豊山).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한 류소우(柳炤佑)의 조카이다. 1917년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출생하였다. 류시훈은 작은아버지인 류소우, 사촌동생인 류시보(柳時保)와 같이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안동 출신의 한국광복군 대원들은 1944년 일제에 강제로 징병되어, 중국 제9전구로 이동 도중 탈출하여...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1894년(고종 31)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고천리에서 태어났다. 류연덕은 일제에 의해 나라가 무너지자 만주로 망명하여 안동 출신 김동삼(金東三)이 총장으로 있는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참여하였다. 대한통의부는 1920년 일제의 간도 출병 이후 남만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들이 보다 효율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겸여(謙汝), 또 다른 이름은 류양범(柳良範)이다. 1901년(고종 38) 전주류씨 동성마을이었던,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서 출생하여 1992년 사망하였다. 류연익은 일찍이 한문을 수학하며 쓰러져 가는 나라를 걱정하였으며,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래(聖來), 호는 동산(東山). 1865년(고종 2) 안동 동후면(東後面, 지금의 예안면) 주진동 삼산에서 류필영(柳必永)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류기영(柳祈永)의 아들로 입양되었다. 류필영은 퇴계 학통을 계승한 류치명(柳致明)의 제자였으며, 1919년 3·1운동 직후 유림들의 항쟁인 파리장서의거에 참여했다가 투옥된...
-
1891년 김경조의 12세손으로 태어난 김재봉(金在鳳)은 어린 시절 한학을 배우다가 1908년 대구계성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인 1909년 경성공업전습소에 입학하였다. 1912년 학업을 마치자 곧바로 독립운동에 뛰어든 김경조는 이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국권회복을 위해 노력하다 1920년 『만주일보』 경성지사 기자로 입사하였다. 그러나 조선독립단의 문서를 전달했다는 이유로 입사한 지...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정산리에 있는 문소김씨를 기리는 표열각. 문소김씨 표열각(聞韶金氏 表烈閣)은 흥해배씨 배재형(裵在衡, 1894~1919)의 부인 문소김씨의 효열(孝烈)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배재형은 한일병합 후 가족과 함께 만주로 옮겨 갔다.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활동하다가 갑자기 병이 들자, 문소김씨 부인은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이고 백방으로 약을 구하여 병 구환...
-
이육사는 1904년 4월 4일(음력) 경상북도 안동군 도산면 원촌리(현재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서 이가호(李家鎬)와 허길(許吉)의 차남으로 태어나 1944년 1월 16일(양력) 중국 베이징 주재 일본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본명은 이원록(李源祿)이며 이원삼(李源三), 이활(李活)이라는 이름도 사용하였다. 이육사는 고향의 도산공립보통학교, 영천의 백학학원을 거쳐 일본의 동경정칙...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해옥은 본관이 밀양(密陽)으로 1921년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개곡리에서 태어났다. 1988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개곡리에 있다. 일제강점기 말기 안동 출신의 한국광복군 대원들은 1944년 일제에 징병된 뒤 중국 제9전구로 이동하다 탈출하여 한국광복군으로 편입한 경우가 많았다. 이 밖에도 만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동환은 1919년 음력 12월 차경석(車京錫)이 교주로 있는 흠치교 교단(敎團)에 가입하여 종교 활동을 표방하면서 나라를 되찾는 데 노력하는 한편, 경상북도 지역에서 흠치교 신도를 모집하여 교세를 확장하고자 하였다. 배동환은 1924년 ‘갑자년(甲子年)이 되면 흠치교의 힘으로 조선이 독립할 것’이라고 선전하면서 자금 모집 및 포교에 힘을 쏟다가...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승환은 1885년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주로 망명하여 6월경부터 지린성[吉林省] 유하현(柳河縣)에서 항일 투쟁을 전개하는 한편, 독립군을 모집하기 위해 경상북도 지역에 들어와 활동하고 있던 최재화(崔載華)로부터 무관학교 생도를 모집하라는 명령을 받고 권원하(權元河)·이재영(李縡榮)·조태연(趙台衍)·권재수(權在...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 있는 조선 말기 전통 가옥. 백하구려(白下舊廬)는 김대락(金大洛, 1845~1914)이 1885년 4월 19일에 건립한 것으로 보이는 고가이다. 당호는 김대락의 호인 백하(白下)에서 따 온 것이다. 김대락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초에 국민 계몽과 독립 운동에 헌신하였다. 1977년 대통령표창, 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愛族章)이 추서되었다....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 김대락이 1910년 만주로 망명한 직후부터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쓴 일기. 계몽운동가이자 민족운동가로 협동학교(協同學校) 교장을 지냈던 김대락(金大洛, 1845~1914)은 대한제국이 망하자 66세의 고령에 일가를 거느리고 만주로 망명하였다. 『백하일록(白下日錄)』은 김대락이 만주로 떠난 1911년으로부터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913년까지의 일기문으로, 망...
-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흥 종교. 신종교는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제도종교에 비하여 성립 시기가 오래 되지 않은 종교이다. 일반적으로 신종교는 교리혼합주의(syncretism), 기존 질서에 대한 부정, 현실주의적 구원관, 임박한 종말론의 강조, 선민사상, 신자 집단 내의 강력한 연대감 등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신종교는 19세기 말~20세기 초의 개항기, 일...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 있는 기념관.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은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내앞마을에 있다. 내앞마을은 1907년 협동학교(協東學校)가 설립되어 애국 계몽 운동의 산실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1910년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해 강점되자 만주로 집단 망명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한 김대락(金大洛)·김동삼(金東三) 등을 배출하였다. 학계에서는 안동을 한국 독립운동의 성지로...
-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검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안동 마령동 기와까치구멍집은 남평문씨(南平文氏) 종택이었다. 원래는 안동시 임동면 마령리 이식골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이식골은 대곡천을 사이에 두고 동향한 마을을 양지마(양지마을)라 하고 서향한 마을을 음지마(음지마을)라 하였는데, 안동 마령동 기와까치구멍집은 양지마의 평지 부분에 있었...
-
1896년 일본군이 안동 지역에서 활동하는 의병을 진압하기 위해 안동부에 불을 지른 사건. 을미사변과 단발령으로 인해 1895년(고종 32) 말부터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1895년 12월 초 안동에서도 의병 활동이 시작되었다. 안동의진은 1896년 인근의 6개 의진과 연합 의진을 결성한 뒤 상주 함창의 태봉에 있는 일본군 병참부대를 공격하였다. 그런데 연합 의진의 공격은...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운동가.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응방(應放), 호는 회산(晦山)이다. 아버지는 광복회에 군자금을 지원했던 안승국(安承國)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던 안상길(安相吉, 1892~1958)이 형이다. 1898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중가구리에서 태어났다. 안상훈은 어릴 때 사숙에서 한문을 수학하였으며, 1923년경부터 풍...
-
김만수(金萬秀)는 1893년 학호공파 김봉조의 10세손이자 김낙선(金洛璇)의 차남으로 오미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심곡공파 김낙운(金洛雲)의 양자로 들어간 김만수는, 양부(養父)로부터 한학을 배운 후 18세에 풍산에 위치한 역동의숙(嶧洞義塾)에서 2년 동안 공부를 하였다. 평소 나라 잃은 아픔을 절감하고 국권회복의 기회를 엿보던 김만수는 1915년 족친인 김응섭(金應燮)과...
-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경상북도 안동의 역사와 문화. 경상북도 북부 중앙, 낙동강 상류에 자리 잡은 안동은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북도 북부 지방의 거점 도시로서의 기능을 담당해 왔다. 풍산읍 마애리 구석기 유적을 비롯한 유적과 유물이 곳곳에 남아 있고,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을 비롯한 많은 인물들을 배출한 역사와 문화의 도시이기도 하다. 1....
-
1894년에서 1909년 사이 안동 지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싸우기 위해 나섰던 자위군. 한국 독립운동은 1894년부터 1945년까지 약 51년 동안 전개되었다. 이 가운데 첫 장을 장식하는 활동이 바로 의병 항쟁이다. 의병 항쟁은 1894년부터 3·1운동 직전인 1909년 말까지 펼쳐졌는데 연구자들은 그 특성에 따라 3시기, 4시기, 5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또 전기의병(18...
-
김석을 시조로 하고 김거두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문소김씨(聞韶金氏) 또는 내앞김씨로도 일컬어지는 의성김씨는 안동 입향조 김거두(金居斗)의 현손 김만근(金萬謹)이 14세기 말 임하면 천전리(내앞)에 정착한 후 지역의 대표적인 명문 사족으로 발전한 가문이다. 의성김씨 시조 김석(金錫)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로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졌고 후손들이 의성을 본관으...
-
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개인이나 소수 인력이 일제를 상대로 벌인 무력 투쟁.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이어진 의열투쟁은 한국 독립운동사에 매우 중요한 항일 투쟁 방식이었다. 안동 출신 인사들로는 김시현(金始顯)·김지섭(金祉燮)·권정필(權正弼)·김정현(金禎顯, 김시현의 동생)·류병하(柳秉夏)·류시태(柳時泰) 등이 참여하였다. 의열투쟁을 전개한 대표적인...
-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외세의 침략에 맞서 의로운 활동을 한 인물. 안동은 예로부터 충효의 고장, 선비의 고장으로 나라가 어려운 형편에 처했을 때 많은 의로운 이들이 떨쳐 일어났다. 대표적인 예로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을 한 이들, 일제강점기에 나라의 독립을 위해 활동한 사람들을 들 수 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은 5월 4...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사익(士翼), 호는 자화(子華)이며, 또 다른 이름으로 이문형(李文衡)·이영형(李永衡) 등이 있다. 석주 이상룡(李相龍, 1858~1932)의 조카이다. 1895년(고종 32)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법상동에서 출생하여 1946년 사망하였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묘가 있...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호는 백농(伯農·白農)이다. 이동후(李東厚)·이원식(李元植)·이철(李轍) 등 여러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1875년 지금의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에서 태어났으며, 1959년 향년 85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동하는 일찍이 서울에 있던 계산학교(桂山學校)의 교사를 지냈고, 대구협성학교(大邱協成學校)의 교감 등을 역임하였다. 또한 안...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응오(應五)이며, 호는 학산(鶴山)이다. 다른 이름은 이협(李鋏)이다. 1879년 지금의 안동시 예안면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1월 25일 향년 41세로 중국 유하현(柳河縣)에서 순국하였다. 1906년(고종 43) 안동군 주사로 임명되었으며, 재직 시 이상룡·권세연 등의 의병 활동을 지원하다가 구류된 적이 있다. 1...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성(固城). 이대용(李大用)·이계오(李桂五)·이탁(李拓)·이경천(李慶天)·이병화(李秉華) 등 여러 이름을 갖고 있었다. 자는 경천(敬天)이고, 호는 소파(小坡)이다. 할아버지는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李相龍)이다. 1906년 지금의 안동시 법흥동에서 태어났으며, 1952년 향년 47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병화는 1911...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성(固城). 이계동(李啓東)·이상훈(李相勳)·이상희(李相熙)·이경식(李京植)·이기동(李基東) 등 여러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자는 덕초(德初)이고, 호는 척서(尺西)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李相龍)의 동생이다. 1868년 지금의 안동시 법흥동에서 태어났으며, 1937년 향년 70세로 중국 흑룡강성에서 사망하...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만초(萬初)이며, 호는 석주(石洲)이다. 초명은 이상희(李象羲)이나, 1911년 만주 망명 이후 이상룡(李相龍)으로 개명하였으며 계원(啓元·啓源)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858년 지금의 안동시 법흥동 임청각에서 이승목(李承穆)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학문적으로는 퇴계 학통을 계승한 정재(定齋) 류치명(柳致明)의 제자인 서...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여중(汝中), 호는 담옹(淡翁)이다.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李相龍)과 5촌간으로, 1876년 지금의 안동시 법흥동에서 태어났다. 이승화는 1909년(순종 3) 이상룡과 김만식(金萬植)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대한협회 안동지회에 가입하여 구국 계몽운동에 전념하였다. 1911년 이상룡과...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운형(李運衡)은 본관이 고성(固城)이고, 자는 중약(重若)이며, 호는 백광(白光)이다. 1892년 지금의 안동시 법흥동에서 태어났으며, 1972년 향년 81세로 세상을 떠났다.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李相龍)의 조카이다. 이운형은 1907년 세워진 경상북도 북부 지역 최초의 중등학교인 협동학교를 1기로 졸업하였다...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원일(李源一)은 본관이 진성(眞城)이다. 1886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하계마을에서 태어났으며, 1961년 향년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원일은 1911년 사돈인 일송 김동삼(金東三)과 함께 고향인 안동을 떠나 만주로 망명하여, 같은 해 4월 삼원포에서 경학사(耕學社)를 조직하는 데 참여하는 등 해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앞장섰다....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육사(李陸史)는 본관이 진성(眞城)이고, 본명은 이원록(源祿)·이원삼(源三)이며, 자는 태경(台卿), 호가 육사(陸史)이다. 1904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에서 태어났다. 묘소는 도산면 원촌리 이육사문학관 뒷산에 있다. 보문의숙(寶文義塾)의 초대 교장을 지낸 이중직(李中稙)이 할아버지이다. 이육사는 고향 마을에 설립된 근대식 학교인 보문...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준형(李濬衡)은 본관이 고성(固城)이고, 이재섭(李在燮)·이중조(李中組)·이동고(李東皐) 등 여러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자는 문극(文極)이며, 호는 동구(東邱)이다. 1875년 지금의 안동시 법흥동에서 태어났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李相龍)의 아들이다.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호는 기암(起巖)이다. 아버지는 1910년 자정 순국한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이다. 이중업은 1863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248번지에서 태어났다. 부인 김락은 만주로 망명한 김대락의 누이로 3·1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두 눈을 실명하였다. 이중업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시윤(時尹), 호는 창해(滄海)이다. 아버지는 1919년 3월 안동에서 단독으로 만세시위를 벌였던 이상동(李相東)이다.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李相龍)의 조카로, 1883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도곡리에서 태어났다. 이형국은 한일병합이 이루어지자 1911년 1월 무렵 백부(伯父) 이상룡과 함...
-
김지섭(金祉燮)은 1884년 오미리에서 김숭조의 11세손으로 태어나 8세에 한학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재주가 뛰어나 천재라는 말을 듣곤 하였다. 24세 되던 해인 1907년 3월에 보통학교 교원시험에 합격하고, 같은 해 5월 경상북도 상주보통학교 교원으로 부임했다가 이듬해에 사직하였다. 1909년 서울로 올라가서 광화신숙 일어전문과에서 일본어를 불과 1개월 만에 수료하고...
-
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종덕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진주강씨는 옹천강씨(瓮泉姜氏)로도 불리며 강이식(姜以式)을 도시조로 하고 강계용(姜啓庸)을 중시조로 하는 진주강씨 박사공파(博士公派)의 후예 강종덕(姜宗德)이 조선 초 안동에 정착한 후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형성된 가문이다. 진주강씨는 고구려 때 도원수를 지낸 강이식의 후손 강진(姜縉)이 통일신라 때 진...
-
진주강씨의 옹천 입향은 1500년경(홍치말) 강두전이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이때 실상은 진주강씨만 들어온 것은 아니고, 밀양박씨와 진성이씨, 안동김씨 등이 함께 들어와서 살았는데, 정확하게 어떤 성씨가 먼저 들어오고 나중에 들어왔는지 선후는 확실하지 않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입향했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다른 성씨들은 대부분 큰 세를 확장하지 못하고 마을을...
-
1920년대 중국 지린성 청산리 일대에서 많은 안동 출신 인물들이 참여하여 전개한 독립운동과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가 간도 지역에서 저지른 한인 학살 사건. 1920년 6월 북간도의 봉오동전투에서 독립군에 크게 패한 일제는 보복의 일환으로 서북간도 지역에 근거지를 구축하고 항일전을 펼치고 있던 독립군을 소멸시키기 위해 ‘간도지방불령선인 초토계획(間島地方不逞鮮人 剿討計劃)’을 세웠...
-
돼지고기, 김치, 메밀묵을 넣고 끓인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향토음식. 메밀은 비옥하지 않은 토질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로, 원산지는 동북아시아, 만주, 몽골, 시베리아, 인도 등 고산지대이다. 우리나라에는 산간 지역인 강원도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다. 토양이 척박하고 밭이 많은 안동 지방에서도 후기 작물로 메밀이 많이 재배되었다. 메밀은 필수 아미노산이 많고, 비타민 B₁, B₂도 쌀...
-
조선 말기 안동 지역에서 서양의 신문화와 신사상을 받아들인 유림. 전통적인 화이관(華夷觀)과 의리론(義理論)에 입각한 위정척사 운동과 의병 운동을 전개하던 안동의 유림들은 1904년부터 서양의 신문화와 신사상을 수용하여 계몽 운동으로 전환하였다. 전국적으로 보면 의병 운동과 계몽 운동이 별도로 추진되었는데 안동의 경우는 의병 운동을 전개하던 척사유림이 혁신유림으로 전환하여 계몽 운...
-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종민(洪鍾民)은 홍홍윤(洪洪潤)을 비롯하여 진영수(陳永洙)·이무(李武)·이유(李有) 등 여러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1913년 지금의 안동시 와룡면 지내리에서 태어났으며, 독립운동 당시에는 서울시 중구 장충동2가 192번지에 거주하였다. 1969년 향년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홍종민은 일제강점기 때 만주로 망명하여 한국독립군과 한국민족혁명단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