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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목을 자른 효자」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2872
영어음역 Adeurui Mogeul Jareun Hyoja
영어의미역 The Filial Son Who Sacrificed His Son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완장리 매릉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효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설|효행담
주요 등장인물 김치복|아내|아들
관련지명 매릉
모티프 유형 아들을 바쳐서 아버지를 살린 효자

[정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완장리 매릉에서 전해 내려오는 효자 김치복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1985년 4월 15일 완장리 매릉에서 김치복의 8대 방손이 들려준 이야기로, 1985년에 출간한 『내 고장 옛 이야기』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조선 후기에 벼슬이 통정대부로 중추부사에 이르렀던 인물로 김치복이 있는데, 용인시 남사면 완장리 매릉에서 1675년에 태어났다. 김치복은 어려서부터 사친지도(事親之道)를 능히 알고 부모 공경하기를 극진하고 성실하게 하였다. 어느 날 부친이 병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되자 모든 정성을 다하여 간병하였으나 아무 효험이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치성도 드리고 무당을 불러 굿도 하며, 명산대찰에 불공도 드렸으나 부친의 병환은 날로 위중해 갈 뿐 아무런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김치복이 전전긍긍 근심 중에 하루는 탁발승이 나타나 시주하기를 빌었다. 아무 소리 없이 쌀 한 되를 탁발승의 배낭 속에 넣자 탁발승이, “시주님 댁에 필시 우환이 있는 듯하오만 소승이 알아도 될 일인지요?” 하였다. 김치복이 사정을 말하자 탁발승은, “시주님 부친의 환우를 퇴치할 수 있는 한 가지 비방이 있기는 하오나, 어찌 사람으로서 해낼 수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한다.

김치복이, “스님! 부친의 환우만 치유할 수 있다면 지옥인들 마다하겠습니까? 제발 처방을 일러주시오” 하고 간곡히 빌자 탁발승은, “하나의 생명을 구하고자 하면 또다른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켜야 하니, 이 또한 불가에 몸을 담은 사람으로 어찌 말 할 것이며, 그 죄업을 어찌 감당하오리까? 관세음보살!” 하였다. 그래도 김치복이 탁발승의 가사옷을 놓지 않고 비방을 알려 달라고 매달려 끝내는 방도를 알아내기는 했으나, 너무나 끔찍하여 입 밖에 내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부친의 병환은 날로 악화되어 갔다. 김치복의 안타까움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이를 눈치챈 아내가 연유를 묻자 김치복은, “부인! 아버지의 병환에는 15세 난 동자의 머리를 구하여 삶아 드려야 낳는다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소.” 하고 탄식을 하였다. 이 말에 김치복의 아내는, “여보! 자식은 낳으면 또 얻을 수 있으나 부모는 한 번 가시면 다시 얻을 수 없잖소. 그렇다고 남의 집 자식을 죽여서 부친의 병환을 구한다고 하는 것도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고, 마침 큰애가 15세도 되고 하니 그애를 죽여서라도 아버님 환우를 구하십시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김치복의 아내는 이튿날 서당에 가려는 아들에게 하얀 쌀밥을 지어 주고 깨끗한 옷 한 벌을 입혀 주었다. 아들은 영문도 모르고 좋아했으나 부부는 피눈물을 삼켜야 했다. 아들이 돌아올 때쯤 되자 김치복은 부엌칼을 시퍼렇게 갈아 가지고 서낭당고개에서 기다렸다. 오래지 않아 아들이 고개를 넘어오자 김치복은 서낭당 아래로 아들을 데리고 가서 찌른 후, 황급히 그 목을 잘라 보자기에 싸가지고 집에 돌아와서는 아내에게 주었다. 김치복의 아내는 차마 펴보지도 못하고 보자기째 솥에 넣고 불을 땠다.

한편, 아침에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받아 입고 서당에 온 김치복의 아들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서 싱글벙글 하였다. 그날 서당의 훈장은 점심때가 되어 학동들이 점심을 먹으러 나간 사이 잠시 잠이 들었다. 그런데 비몽사몽간에 도인이 나타나서, 김치복의 아들을 내일 부모가 찾으러 올 때까지 보내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훈장은 예사롭지 않은 꿈이라고 생각하여, 일부러 김치복의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며 집에 보내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 김치복은 부친에게 할 수 있는 도리는 다하였으니 목 없는 자식의 시신이라도 묻어 주자고 하여 아내와 함께 시체를 수습할 면포를 가지고 서낭당고개로 갔다. 그런데 근처에 있어야 할 아들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다. 부부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근처 산자락을 헤매다 아들이 다니던 서당 앞까지 가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서당 안에서 아들이 뛰어나오면서, “에구 아버지, 어머니! 용서하세요. 훈장님이 어제 심부름을 시키셔서 집에 못 갔는데 예까지 찾아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한다.

부부는 죽은 줄 알고 있던 아들을 보자 말도 못하고 목놓아 울기만 하였다. 그러자 훈장이 나와서는 꿈 이야기를 하면서 미안한 안색을 지었다. 그때서야 부부는 저간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그렇다면 어제 죽인 아들은 누구란 말인가 하면서 김치복은 아내와 아들, 훈장과 함께 집으로 돌아와 솥뚜껑을 열어 보았다. 솥 안에는 커다란 동삼(童參) 하나가 삶아져 있었다.

김치복은 이 모든 것이 신령님께서 도와주신 것이다 하고는 정한수를 떠다 놓고 기도를 드렸다. 그후 부친의 환우는 씻은 듯이 낳았는데, 이 일을 두고 사람들은 산신령이 그의 효성에 감동하여 동삼을 보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다투어 이 일을 조정에 알리어 1811년에 나라에서 정문을 내렸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다양한 형태의 효행 전설이 실려 있는데, 몸을 팔아 부잣집 종살이를 하면서 눈먼 어머니를 봉양했던 지은이나, 살을 베어 병든 부모께 드렸던 향덕과 성각의 행위는 후대로 내려가면서 효자 및 열녀의 행동 양상의 한 유형으로 되풀이되어 나타난다.

「아들의 목을 자른 효자」는 실존 인물인 김치복의 효행담으로, 자식을 희생하면서까지 아버지를 살리려고 한 김치복과 아내의 효성이 강하게 드러나 있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형태의 효행담은 여러 가지 전설이나 민담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는데, 가난한 형편에 어머니의 음식을 자꾸 빼앗아 먹는 아들을 죽여 어머니를 봉양하려고 하자 신령의 복을 받게 되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소* 김치북의 아들이 너무 불쌍 해요ㅠㅠ
  • 답변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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