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2047
한자 長忠洞
영어공식명칭 Jangchungdong
이칭/별칭 주녹골(走鹿谷)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판운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엄흥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마을

[정의]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판운리에 있는 자연마을.

[개설]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판운1리장충동(長忠洞)한반도면 광전리 매운(梅雲)평창강을 사이에 두고 형성된 마을이다. 1960년대까지 도로가 없어 배를 이용하여 주천장을 다녔다. 장충동은 충주지씨(忠州池氏)의 집성촌으로 지계최(池繼崔) 장군의 넋을 추모하는 사당인 충모원(忠慕院)이 있다. 지계최 장군은 1592년 판운리 주녹골에서 지세윤과 안동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관서행영(關西行營)의 도원수 장만(張晩)의 휘하에서 서로소모별장(西路召募別將)이 되어 서흥부사(瑞興府使)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1652년에 이괄의 잔당들에 의하여 부인 송씨가 피살되었다. 인조는 지계최 장군을 여동생과 재혼을 시켰으며 판운리주녹골(走鹿谷)장충동으로 바꾸고 교지를 내려 영령을 추모하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지계최 장군은 서흥의 검수참(劒水站)에서 적을 물리치고 인조가 있는 남한산성으로 향하다가 신계(新溪) 전투에서 전세가 불리하자 남향 4배(南向四拜)한 후 자결하였다. 인조는 1636년(인조 14)에 지계최 장군을 ‘갈성진무공신 조선조 충신 가선대부 한성판윤’에 추증하고 충성군(忠城君)에 봉한다는 교지와 함께 지계최 장군의 가족에게 노비 4명, 은 20냥, 말 한 필 그리고 토지 60마지기를 하사하였다.

[명칭 유래]

장충동의 원래 지명은 주녹골이라고 불렀는데, 주녹골 출신인 지계최 장군이 병자호란 때 나라에 큰 공을 세웠으므로 장충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자연환경]

장충동백덕산(白德山)[1350m] 자락의 수리봉이 우백호, 청령골로 내려오는 산맥이 좌청룡을 형성하여 장충동을 감싸고 있다. 마을 앞에 평창강을 품었다가 흘러 보내는 반달 모양의 ‘임산배수’를 구비한 마을로 자연환경이 빼어나다.

[현황]

장충동에 위치한 판운리 지방도 제82호선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장충약수터가 있다. 장충약수터 앞을 지나가는 도로를 따라가면 2007년에 세워진 판운1리 마을회관이 있다. 2021년 현재 20여 가구에 45명의 주민들이 밭농사를 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장충동은 귀촌한 가구가 많고 70세가 넘은 노인들이 많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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