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1301
한자 憂國家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권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838년 - 박문용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930년 - 박문용 사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894년 이후 - 박문용「우국가」 찬술
편찬|간행 시기/일시 2002년 - 「우국가」 영덕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영덕군지』에 수록
편찬|간행 시기/일시 2006년 - 「우국가」 지식산업사에서 간행한 『문학통사』에 수록
배경 지역 「우국가」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지도보기
성격 가사
작가 박문용

[정의]

고려 후기에 박문용이 신천(新川)의 자연경계를 읊으면서 지은 가사.

[개설]

「우국가」는 박문용(朴文鏞)[1838~1930]이 살던 신천(新川)의 자연경계를 읊으면서, 후반부 끝부분에서 1871년 3월 11일에 영해부에서 일어난 '갑오동학혁명'을 언급하고 있다.

[구성]

「우국가」는 형태 면에서 보면 고전 시가의 한 양식인 가사의 전통을 그대로 잇고 있다. 4·4조와 3·4조가 반복되면서 분량이 긴 연형체(連形體) 시가이다.

[내용]

문명(文明)하신 산간에/ 파옥수간(破屋數間) 있었으랴/ 별경자와 찰한지라/ 거룩할사 지화로다/ 유좌묘향정형(卯向正形)이라/ 천지(天地)로 솟은 물이/ 석천(石泉)에 맑았으니/ 산세 더욱 좋을시고/ 이 옥계 앞에 두고/ 오죽단(烏竹壇) 뒤에 두고/ 옥녀(玉女)자는 금반으로/ 원메에 진봉하고/ 신선한 저 소나무/ 장천(長天)에 춤을 춘다/ 호대용문오채반(虎對龍門五彩盤)은/ 남방(南方)에 가서 두고/ 면수(綿繡)화폭 병풍들은/ 북(北)에 둘러 있고/ 삼승신령(三僧神嶺) 오는 용(龍)은/ 장구봉이 되어 앉고/ 쌍초봉 늘여 앉아/ 수구밖을 말아 있네/ 조령(鳥嶺)을 오는 용(龍)이/ 역마봉을 좌기하며/ 일출봉(日出奉)은 해뜨는 곳/ 산(山) 뒤에 비췄더라/ 기이하고 망망한데/ 누기 누기 있었던고/ 불효자를 낳았으니/ 각득(各得)기소 하였더라/ 칠이탄에 조여하니/ 부추산의 자롱이라/ 오유원(梧柳園)에 숨어 사니/ 팝밭갈아 연명이라/ 고금인물(古今人物) 당하여도/ 주인 좋고 산도 좋다/ 난세신명을 구전하니/ 전후에 무달은 불구하리/ 초려를 불비하고 곡창한데/ 남양땅 제갈공명이 아닌가/ 청천에 싸여 스스로 걸렸으니/ 운중에 앉아 일월을 회롱하고/ 이알부지하고 체산하니/ 반곡간의 그 아니던가/ 팔구대(八九代)을 누려오니/ 함양박씨(咸陽朴氏) 종택(宗宅)이라/ 성주(星州)로부터 와계시니/ 예조판서 후예로다[가선대부]/ 인량촌(仁良村)에 복거(卜居)하니/ 화재(火災)어이 잦았던고/ 이곳 백천 배판하여/ 선형하에 처하시더라/ 그나마 자손들은/ 산재(散在) 각처(各處)하였더라/ 잔 배자[杯]와 아들 잣자/ 명랑하다 등면이라/ 호(虎)척 상페 참혹하고/ 미실마가 더하더라/ 일가 친척 따라들여/ 신천 땅을 옮으시니/ 조부(祖父)님 거류(居留)하샤/ 환고(還古)형제 낳으시나/ 이런 신세 또 있는가/ 삼분재앙 세간이라/ 거리는 어디메요/ 잊을망(忘)자와 서리상(霜)이라/ 양산제 감휼하면/ 십만세가 무강이라/ 생부친을 떨어져서/ 엄실하여 의탁하니/ 양친내외(養親內外) 구몰(俱沒)하니/ 망극하다 미친미모(未親未母) 아닌가/ 무정세월 약류(若流)따라/ 삼년종상 지낸 후에/ 흉년기세 어이하고/ 머슴어미 먹일손가/ 책상서안 어이하고/ 형제 감고 같이할제/ 일년 농사 짓고 나니/ 갑인년에 태풍이라/ 아버님은 나의 사랑/ 천은(天恩)으로 베푸시사/ 사대부(士大夫)의 자손(子孫)으로/ 불학무식(不學無識) 당할손가/ 신천(新川)으로 내려갈제/ 교훈(敎訓)하지 뜻이로다/ 부모님의 덕택(德澤)으로/ 서당에서 노니다가/ 삼십세를 다다르니/ 신혜년의 실모로다/ 내유처 지노(至老)하고/ 외무오척(外無五尺) 지동(至童)이라/ 정구지임 누가할손가/ 합산계교 당연이라/ 노조모(老祖母)와 미소자(未小子)를/ 대가(大家)에다 맡기시고/ 가산(家産)을랑 불원(願)하고/ 동분서주 하시더니/ 계축년(癸丑年) 복첩하샤/ 각거분산(各居分産) 하였더라/ 천시운(天時運)이 부재(不再)하여/ 신해년(辛亥年)이 또 잊지 마라/ 전후사(前後事)를 생각하니/ 죽기라도 부족이요/ 심장 역시 상할지라/ 대강으로 이르리라/ 양인을 또 지수하여/ 우몽치산 있다 하나/ 처량하고 고유사고/ 농유천교 절반이라/ 연소심기 어린 마음/ 부모님을 생각 않고/ 무심 염불 흥치다가/ 수삼년 지나서라/ 무오년에 이십세라/ 남매 함께 성혼(成婚)하니/ 일년재혼(一年再婚) 하노라니/ 있다 해도 어렵도다/ 그 무엇이 더디었던고/ 가을시절 기우도다/ 농가로서 상농이라/ 고용없이 어이 할고/ 출입인사 전폐하고/ 지게 지기 하노라니/ 유건 쓰던 이 내머리/ 헌 갓이 가소롭다/ 붓대 쥐던 이 내손이/ 호미자루 가당한가/ 책보지던 이 내어깨/ 우장삿갓 어인 일고/ 글자 쓰던 이 내손에/ 기심포기 고이하다/ 가는 무명 골라내어/ 세침으로 고이겨도/ 이리차며 저리차며/ 아니신던 이 내발에/ 허벅짚신 헌 보선목이/ 이 아니 가련한가/ 존경하여 한문하고/ 미묘전을 자경하니/ 젖유지로 우애하고/ 형이 없어 위할손가/ 양귀 듣고 있었는가/ 동중서의 성공이라/ 귀경시환 독이서는/ 도정절의 근법이라/ 불성하고 불근하여/ 전인하면 폐인이라/ 농군청에 갈라하니/ 향당퇴물 의세하고/ 선비당에 놀라하니/ 자수농업 수치로다/ 어화초동 목수들아/ 양반이라 두려 마소/ 봉두구면 마주앉으니/ 절재 어이 있을손가/ 너희들의 동료로다/ 담배 아니 태울손가/ 그럭저럭 지내갈세/ 향중세배 다달으며/ 퇴역난 지역난은/ 이를 두고 이름이라/ 어화선비 친구들아/ 돌아서서 웃지 마라/ 농부맵시 볼라하니/ 이 내마음 굴축이라/ 은신할 곳 돌아보니/ 저 사람이 고이여기고/ 당요시대 제순이는/ 역산에서 밭을 갈고/ 은국재상 이윤이는/ 산야에서 밭을 가네/ 자고급금 영신하며/ 궁직(窮職) 흔히 하나리라/ 글이거던 착실하고/ 일이거던 힘써 해라/ 자경자독 하노라니/ 이 아니 궁상이라/ 시름하니 일신이요/ 걱정할사 어버이라/ 자아자는 위하심이거늘/ 부지아자는 위아하고 구오하다/ 무심하다 이 정회를/ 어느 앞에 다할손가/ 외가이라 찾아가니/ 외조모 없이 막연하고/ 처가이라 갈라하니/ 장모 역시 남이로다/ 처처에 구차하니/ 남이 알리 전혀 없네/ 어화남의 모씨들아/ 이 내말삼 들어보소/ 어미 없는 자식마음/ 소년청송 이른시고/ 순히해도 서러하고/ 꾸짖어도 배신이라/ 혈혈단신 길러내어/ 어버이라 믿건만은/ 간교할사 부인이라/ 남의 자식 이간하네/ 있는 흉과 없는 말을/ 소소차문 지어내어/ 부부유정 있건만은/ 부자지정 어이 없소/ 한번 알소 두번 알소/ 십벌지목 아니던가/ 어화세상 동포들아/ 서양사상 배척하고/ 동양학문 중심되어/ 자국보호 일어난다/ 적서구별 없이하고/ 남노여비 철폐하라/ 신미년의 의병난에/ 누대종토 방매해서/ 군자금을 제공하고/ 갑오년의 동학난에/ 불효자가 구초되니/ 모골이 송현하다/ 대구관문 다달으니/ 사령놈들 호령소리/ 혼비백산 간곳 없고/ 자초지종 공초하니/ 무죄로 석방이나/ 설상에 가상이라/ 생부친의 자결부음/ 만천리에 발상내고/ 남녀평등 귀천없이/ 나도 역시 동감이라/ 세월은 멀지 않아/ 계급주의 없으련만/ 조급하게 서둘러서/ 무산되고 말았도다

[특징]

박문용은 대대로 내려오던 토지를 팔아 신미년에 봉기한 의병들에게 군자금을 제공하고, 갑오년에 있었던 '동학농민운동' 때는 자신이 신문을 당해 무죄로 풀려나는 등 여러 가지 일을 겪었다. 박문용은 '남녀 평등 귀천 없는' 것에 자신도 동감이라고 하였으며, 머지않아 계급주의도 없어질 텐데 너무 조급하게 서둘러서 일이 무산되고 말았다는 안타까운 심정을 「우국가」 마지막에 풀어 놓았다.

[의의와 평가]

『영덕군지』에 실려 있는 「우국가」에는 1871년 3월 11일에 영해부에서 일어난 '갑오동학혁명'이 언급되어 있다. 당시 영해 지역에서 일어난 동학란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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