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816
한자 金夢龍
영어공식명칭 Kim Mongryong
이칭/별칭 김기락
분야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한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8년연표보기 - 김몽룡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김몽룡 병곡면 3.1독립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김몽룡 영해면 3.1독립운동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73년연표보기 - 김몽룡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3년연표보기 - 김몽룡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김몽룡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병곡면 3.1독립운동
출생지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영리 지도보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김몽룡(金夢龍)[1898~1973]은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영리에서 태어났으며, 이명은 김기락(金起洛)이다.

[활동 사항]

김몽룡은 1919년 3월 18일 병곡면 3.1독립운동에 참가하였다. 병곡면 만세운동은 3월 18일 영해면 만세운동을 주도한 정규하(丁奎河)가 오후 2시경 약 200여 명의 군중들을 이끌고 오면서 전개되었다. 군중은 영해면에서 병곡면으로 가면서 마을 주민들의 참가로 500여 명으로 증가하였다. 오후 4시경 병곡면에 도착한 군중은 정규하·박의락(朴義洛)·김응조(金應祚) 등의 주도로 독립만세를 외치며 병곡주재소와 면사무소를 차례로 파손하였다. 이때 김몽룡은 주재소와 면사무소에서 독립만세를 외쳤을 뿐만 아니라, 정규하 등의 지휘 아래 주재소에서는 건물과 공문서 및 집기를, 면사무소에서도 납세고지서 등 공문서와 집기를 파괴하였다. 이후 김몽룡과 군중들은 오후 6시경 해산하였으며, 3월 19일에 이어진 영해면 3.1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김몽룡은 영해면·병곡면 만세운동이 끝난 3월 19일 이후 일제의 대대적인 검거 작전으로 붙잡혔다. 당시 영해에서 250명, 병곡에서 40명이 붙잡혀 총 290명이 구금되었다. 김몽룡은 대구지방법원 검사국 경주지청을 거쳐 1919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1919년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량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묘소]

김몽룡의 묘는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2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83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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