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792
한자 李浚允
영어공식명칭 Lee Junyoon
분야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허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5년 6월 10일연표보기 - 이준윤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33년 4월 - 이준윤 영덕공립보통학교 입학
수학 시기/일시 1939년 3월 - 이준윤 영진공립심상소학교 졸업
수학 시기/일시 1939년 4월 - 이준윤 대구공립상업학교 입학
활동 시기/일시 1943년 5월 - 이준윤 태극단 가입
몰년 시기/일시 1943년 10월 2일연표보기 - 이준윤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1년연표보기 - 이준윤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화개리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영덕공립보통학교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덕곡리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대구공립상업학교 -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태극단 과학국장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이준윤(李浚允)[1925~1943]의 본관은 성산(星山)이며,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화개리에서 아버지 이건호(李建鎬)와 어머니 손봉숙(孫鳳淑)의 슬하에서 3남 2녀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활동 사항]

1933년 4월 영덕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39년 3월 영진공립심상소학교[현 영덕야성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39년 4월 대구공립상업학교에 입학하였다.

이준윤은 재학 중 학교 측의 조선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에 대한 차별을 목격하면서 민족의식이 싹텄다. 1942년 오카 히사시[岡久]가 대구상업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이후 차별 대우가 더욱 심해졌다. 특히 행동을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조행점수(操行點數)에서 두드러졌다. 학교 측의 차별로 조선인 학생은 상급학교의 진학과 취업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인 학생에 대한 차별은 조선이 일제 식민지이기 때문에 비롯된 것으로 인식하고 조선 독립을 희망하였다.

이준윤의 민족의식은 항일 비밀 결사 태극단의 활동으로 이어졌다. 태극단은 1943년 4월 같은 학교 학생 이상호(李相虎)의 주도로 결성되었다. 태극단은 민족 단결로써 조선 독립을 위해 투쟁하며, 나아가 세계 인류의 영원한 자유와 평화, 평등을 추구하는 비밀 결사였다. 5월 대구부 봉산정에 있는 이준윤의 하숙집을 방문한 김상길(金相吉)로부터 태극단의 조직 취지를 듣고 가입하였으며, 과학국장으로 지명되었다. 과학국은 단원 훈련 중 과학 분야를 담당하고, 산하에 박물부(博物部), 이화부(理化部), 항공부(航空部)를 두었다. 이준윤은 과학 훈련을 지휘하고 감독을 하였다. 이준윤은 단장 이상호, 관방국장(官房局長) 김상길 등과 태극단 결성식의 일시, 장소 등을 협의한 끝에 당시 6월 6일 팔공산에서 거행하기로 결정하였다.

태극단은 결성을 결의한 지 한 달도 되지 못한 1943년 5월 말에 한 학생의 밀고로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이준윤은 수업 중 교실에서 김상길, 서상교(徐尙敎), 김정진(金正鎭) 등과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이준윤은 이상호, 서상교, 김정진 등과 함께 일제 경찰에게 연일 조사와 잔혹한 고문을 받았다. 9월 30일 일제 경찰의 고문과 구타로 급성늑막염이 발병하여 사경에 이르러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이준윤은 1942년부터 늑막염에 걸려 오랫동안 치료를 받은 바 있었다. 결국 이준윤은 감옥에서 풀려난 지 3일만 인 1943년 10월 2일에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9년 대구상업고등학교가 명예졸업장을 추서하였으며, 정부는 이준윤의 공을 기려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73년 태극단독립운동기념사업회가 설립되어 태극단독립운동기념탑을 건립했으며, 2003년 모교 후문 쪽에 '태극단학생독립운동기념공원'을 조성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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