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752
한자 李華春
영어공식명칭 Lee Hwachun
이칭/별칭 종인(宗仁),덕부(悳夫),회원(晦元),천재(川齋),충절(忠節)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72년연표보기 - 이화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44년 - 이화춘 명경과 급제
몰년 시기/일시 1655년연표보기 - 이화춘 사망
묘소 이화춘 묘소 -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부일리
성격 학자
성별
대표 경력 군자감정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학자.

[가계]

이화춘(李華春)[1572~1655]의 본관은 영천(永川), 초명은 종인(宗仁), 자는 덕부(悳夫)·회원(晦元), 호는 천재(川齋), 시호는 충절(忠節)이다. 증조부는 부사용(副司勇) 이지형(李枝亨), 조부는 생원(生員) 이학(李鶴), 아버지는 공조 정랑(工曹正郎) 이여우(李如瑀), 어머니는 유원지(兪遠之)의 딸 기계유씨(杞溪俞氏)이며, 부인은 김세익(金世益)의 딸 숙인 경주김씨(慶州金氏)이다.

[활동 사항]

이화춘은 기질이 엄하고 단정하였으며,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임진왜란 당시 어린 나이에도 우국(憂國)의 마음을 가졌으나, 부모가 노쇠하여 참전할 수 없었다. 평소 색을 사양하고, 부모의 장례를 예법에 따라 행하며 애통해하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이화춘의 효심을 칭송하였다. 광해군 대의 혼란한 정세를 보고 관직에 대한 뜻을 버리고, 조용히 『심경(心經)』을 읽으며, 사우(士友)들과 강론하였다. 1644년(인조 22) 명경과(明經科)에 급제하여 통훈대부(通訓大夫)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제수되었다.

[묘소]

이화춘의 묘는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부일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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