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736
한자 李嵩逸
영어공식명칭 Lee Sungil
이칭/별칭 응중(應中),항재(恒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재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31년연표보기 - 이숭일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90년 - 이숭일 세자익위사 세마 천거
활동 시기/일시 1691년 - 이숭일 장악원주부로 출사
활동 시기/일시 1692년 - 이숭일 의령현감 부임
몰년 시기/일시 1698년연표보기 - 이숭일 사망
출생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택전리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재령
대표 관직|경력 의령현감

[정의]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개설]

이숭일(李嵩逸)[1631~1698]은 천거로 출사하여 의령현감(宜寧縣監) 등을 지냈으며, 문집으로 『항재집(恒齋集)』을 남겼다.

[가계]

이숭일의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응중(應中), 호는 항재(恒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은보(李殷輔)이며, 할아버지는 현감 이함(李涵), 아버지는 증 이조판서(贈吏曹判書) 이시명(李時明)이다. 어머니는 안동장씨 장흥효(張興孝)의 딸 장계향(張桂香)이다. 부인은 한양조씨(漢陽趙氏)와 해주오씨(海州吳氏)이다.

[활동 사항]

이숭일은 1631년에 영해 인량리에서 이시명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숭일이 태어날 때 어머니인 장씨가 신기한 꿈을 꾸었는데, 이 때문에 항상 “이 아이는 반드시 당대에 대인군자(大人君子)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아버지 이시명에게 가학(家學)을 전수받으며, 항상 형인 존재(存齋) 이휘일(李徽逸),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과 더불어 질문하고 이해될 때까지 공부하였다.

아버지 이시명이 만년에 안동의 서쪽으로 갈 때 따라가 교우를 사귀다가 아버지가 죽자 3년상을 마치고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영양의 석보(石保)로 돌아왔다. 이때 아버지의 유허에 집을 짓고 당호를 ‘항재(恒齋)’라 하였다.

1679년(숙종 5)에 조정에서 역학(易學)에 밝은 자를 추천하라고 하자 형인 이현일과 함께 천거되었지만 두 사람 모두 사양하였다. 이후 1690년(숙종 16)에 세자익위사 세마(世子翊衛司洗馬)로 천거되었지만 부임하지 않았다. 이듬해 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로 출사하였고, 그 다음 해에 의령현감이 되었다. 당시 의령에서 선정을 펼쳐 고을 사람들이 ‘이불자(李佛子)’라며 칭송하였다. 이후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시사(時事)가 변하자 귀가하여 학문을 강구하며 지내다가 영양 석보의 광록서당(廣麓書堂)에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형인 이휘일·이현일과 함께 퇴계학맥을 이어받았다. 문집인 『항재집』은 원집 6권 3책, 속집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조카인 이재(李栽)가 수습하여 보관해 오다가 이숭일의 현손(玄孫)인 이우근(李宇根)이 1824년(순조 24)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이어 후손 이수영(李秀榮)이 속집 한 권을 추가하였고, 이수승(李壽昇)과 이현채(李鉉埰)가 원집을 재간할 때 속집 2권 1책을 추가하였다.

[묘소]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택전리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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