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662
한자 鄭湛
영어공식명칭 Jeong Dam
이칭/별칭 언결(彦潔),일헌(逸軒)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48년연표보기 - 정담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83년 - 정담 무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92년 - 정담 김제군수 부임
활동 시기/일시 1592년 - 정담 웅치전투 참전
몰년 시기/일시 1592년연표보기 - 정담 웅치전투에서 순절
추모 시기/일시 1605년 - 정담 선무원종공신 3등 녹훈
추모 시기/일시 1690년 - 정담 정충각 건립
추모 시기/일시 1782년 - 정담정려비 개립
추모 시기/일시 1710년 - 정담 향현사[충렬사] 제향
출생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지도보기
부임|활동지 전라북도 김제군
부임|활동지 웅치 - 전라남도 보성군 웅치면
사당|배향지 정충각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지도보기
성격 무신
성별
본관 야성[영덕]
대표 관직 김제군수

[정의]

조선 전기 영덕 출신의 무신.

[개설]

정담(鄭湛)[1548~1592]은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웅치전투(熊峙戰鬪)에서 순절하였다.

[가계]

정담의 자는 언결(彦潔), 호는 일헌(逸軒)이며, 본관은 야성(野城)[영덕(盈德)]이다. 아버지는 정창국(鄭昌國)이다.

[활동 사항]

정담은 1583년 무과에 급제하였다. 니탕개(尼湯介)의 난 때 공을 세우고, 여러 벼슬을 거쳐 1592년에 김제군수(金堤郡守)로 부임하였다. 이 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권율(權慄) 휘하의 나주판관(羅州判官) 이복남(李福男), 해남현감(海南縣監) 변응정(邊應井), 의병장 황박(黃璞) 등과 함께 웅치(熊峙)[지금의 전라남도 보성군 웅치면 소재]를 방어하였다. 7월 7~8일 금산을 거쳐 전주로 진격하던 코바야카와 타카카게[小早川隆景] 휘하의 일본군과 웅치에서 백병전을 벌여 일본군의 진격을 막아내었지만, 정담은 이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담은 1605년(선조 38)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3등에 녹훈되었다. 일본군도 정담의 충절에 경의를 표시하기 위해 ‘조조선국충의간담(弔朝鮮國忠義肝膽)’이라는 팻말을 세웠다고 한다. 1690년(숙종 16) 정담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인 정담정려비(鄭湛旌閭碑)를 세웠다. 정담정려비는 정려비(旌閭碑)와 정충각(旌忠閣)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려비는 당초 나무로 만들었지만 훼손이 심하여 1782년(정조 6) 석비(石碑)로 개립(改立)하였다.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증직되었으며, 1710년(숙종 36) 영덕 향현사(鄕賢祠)[충렬사(忠烈祠)]에 제향되었다. 순조 대에 ‘장렬(壯烈)’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