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621
한자 南須
영어공식명칭 Nam Su
이칭/별칭 송정(松亭)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395년연표보기 - 남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417년 - 남수 문선
활동 시기/일시 1440년 - 남수 승훈랑 승급
활동 시기/일시 1443년 - 남수 사헌부감찰 임명
몰년 시기/일시 1477년연표보기 - 남수 사망
거주|이주지 인량리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지도보기
외가|처가 영해도호부 - 경상북도 영덕군
사당|배향지 화재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3길 29-3 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영양
대표 관직 용담현령

[정의]

조선 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개설]

남수(南須)[1395~1477]는 영해의 영양남씨 입향조로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용담현령(龍潭縣令) 등을 지냈다.

[가계]

남수의 본관은 영양(英陽), 호는 송정(松亭)이다. 아버지는 신호위보승중랑장(神虎衛保勝中郎將)을 지낸 남영번(南永蕃), 어머니는 최유의(崔有漪)의 딸 강릉최씨(江陵崔氏), 할아버지는 종부시동정(宗簿寺同正)을 지낸 남승고(南承顧), 증조할아버지는 검교예빈경(檢校禮賓卿)을 지낸 남혁(南奕)이며, 부인은 상호군(上護軍)을 지낸 백인(白璘)의 딸 대흥백씨(大興白氏)이다. 남수는 백인의 딸과 혼인함으로써 처향인 영해(寧海) 지역에 정착하였으며, 그 후손들이 지금까지 세거해 오고 있다.

[활동 사항]

1417년(태종 17) 문선(文選)되었으며, 1425년(세종 7) 다방(茶房)에서 관직을 시작하였다. 이후 직장(直長)·주부(主簿)·통례(通禮)에 임명되었고, 1439년 통선랑(通善郞)에 올랐다. 1440년 승훈랑(承訓郎)에 올랐으며, 판관(判官)·창사(倉使)를 거쳐 1443년 사헌부감찰이 되었다. 이후 용담현령으로 부임하였는데 선정을 베풀고 1448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넘겨주자 더 이상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은거하면서, 스스로 호를 ‘송정거사(松亭居士)’라 하였다.

[학문과 저술]

행적을 엮은 「송정실기(松亭實記)」가 『영산가학(英山家學)』에 수록되어 있다.

[묘소]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 화전(花田)에 묘소가 있다. 묘갈명(墓碣銘)은 김대(金臺)가 지었다.

[상훈과 추모]

남수의 후손들이 남수를 기리고자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3길 29-3에 화재및육영루[경상북도 문화재자료]를 건립하였다. 이 가운데 화재(花齋)남수의 재실이며, 육영루(毓英樓)는 후학 양성을 위해 1774년(영조 50) 건립한 강당이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