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변사인방안지도』 「영남지도 영덕·영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536
한자 備邊司印方眼地圖嶺南地圖盈德寧海
영어공식명칭 『Bibyonsainbangan Jido』 「Youngnam Jido Yeongdeok·Yeonghae Map」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감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745~1760년 - 『영남지도』 제작
문화재 지정 일시 2008년 12월 22일연표보기 - 『영남지도』 보물 제1585호로 지정
현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고지도
소유자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관리자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제1585호

[정의]

조선 후기 비변사에서 제작한 『영남지도』에 수록된 영덕현·영해부 지도.

[개설]

18세기 비변사(備邊司)에서 제작한 『영남지도(嶺南地圖)』는 정확한 연대를 단정할 수 없겠지만 몇 가지 단서를 통해 대략적인 시기를 유추할 수 있다. 먼저 하동군(河東郡)의 읍치는 1745년(영조 21) 이전되었는데 지도에서는 옮겨진 위치에 표현되어 있다. 이를 통해 지도는 1745년 이후의 상황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창원도호부(昌原都護府)의 지도에는 1760년(영조 36)에 설치되었던 조창(漕倉)인 반산창(盤山倉)이 없는 것으로 보아 1745년에서 1760년(영조 36) 이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안의현(安義縣)와 산청군(山淸郡) 및 고령군(高靈郡) 지도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견된다. 『영남지도』는 2008년 12월 22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지도집은 총 6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국 단위의 군현지도이기 때문에 지도마다 규격이 조금씩 다르다. 조선시대 때 영덕 지역은 영덕현과 영해부로 나뉘어 있었기에 해당 고을의 지도도 각각 그려져 있다. 영덕현 지도는 5책에 수록되어 있고 영해부는 2책에 실려 있다.

영덕현」의 면리(面里)는 황색 바탕의 적색 직사각형 기호가 이용되었는데, 읍치를 중심으로 동면(東面)·서면(西面)·중남면(中南面)·외남면(外南面)·북면(北面)이 자리하고 있다. 역원은 분홍색 바탕의 청색 직사각형 기호를 사용하여 주등역(酒登驛)과 남역(南驛)을 표시하였다. 산세(山勢)는 녹색을 사용하여 회화로 표현했으며, 동쪽에 자리한 별반산(別畔山)이 영해와 접하고 있고, 서쪽은 팔각산(八角山)·대둔산(大芚山)·소지산(所之山)이 경주와 경계를 삼고 있다. 남쪽 방면은 청하현(淸河縣)과 연접하고 있으나 산의 명칭은 생략되었고, 북쪽은 황장봉산(黃腸封山)·임물령(林勿嶺)·변현령(弁峴嶺)이 진보현(眞寶縣)과 근접하고 있다. 하천은 읍치를 기준으로 남천(南川)·북천(北川)·서천(西川) 등으로 표기했으며 청색 바탕의 물줄기를 사용하였다. 각 산에서 발원한 하천은 오십천용추(五十川龍湫)로 모여 크게 형성되고 읍치를 지나 바다로 흘러가고 있다. 도로는 적색과 청색, 황색의 실선을 사용하여 나타냈는데, 모두 읍치에서 뻗어나가 각 군현의 경계와 이어지고 있다.

「영해부」의 방리(坊里)는 황색 바탕을 한 적색 직사각형 기호를 사용했는데 남면·북면·서면·석보면(石保面)이 있다. 역(驛)은 분홍색 바탕의 청색 직사각형 범례를 활용하여 병곡역(丙谷驛)·영양역(寧陽驛)을 나타냈다. 산지(山地)는 산수화(山水畵)로 그려 넣었는데 남쪽 방면에는 화림산(花林山)·국사봉(國師峯) 등이 영덕과 경계를 접하고 있고, 북쪽은 등운산(騰雲山)이 강원도 평해군(平海郡)과 인접하고 있다. 서쪽에는 탄산(炭山)과 오산(烏山), 삼승산(三僧山)이 영양군(英陽郡)과 경계를 두고 있다. 하천은 청색 바탕의 물줄기로 표현했는데 읍치를 기준으로 남천·북천·서천 등으로 표기하였다. 각 산에서 발원한 후 읍내를 좌우로 지나 바다로 흘러가고 있다. 도로는 적색과 청색의 실선을 사용했고 읍치를 중심으로 각 방면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특징]

「영덕현 지도」의 방위(方位)는 동서남북을 묘유오자(卯酉午子)를 사용하여 대치(代置)하였다. 읍치는 성첩(城堞)이 달린 적색 바탕의 직사각형 기호를 사용했는데 주요 관아 건물은 모두 생략되었다. 읍성의 서문인 청심루(淸心樓)는 2층 누정의 기호로 표현되어 있다. 학교시설인 향교와 남강서원(南江書院) 및 사찰인 정수사(淨水寺)·개인사(開印寺)를 팔작지붕 기호를 사용하여 배치하였다. 봉수는 별반산봉대(別畔山烽臺)가 있는데 불씨 형태로 표현했고 청하와 영덕의 봉화대로 연결되는 적색 실선이 그려져 있다. 지도의 상단에 영덕의 주기(註記)가 있는데 호구수(戶口數)·부세(賦稅)·군액(軍額)의 정보가 담겨 있고, 읍내를 중심으로 한성(漢城) 및 군현, 각 면과 산천(山川)까지의 거리가 기록되어 있다.

「영해부 지도」에서 동서남북의 방위는 묘유오자를 활용하여 나타냈으며 동시에 동쪽을 상단으로 배치하였다. 읍치는 적색 바탕의 직사각형 기호를 사용했는데 주요 관청인 동헌이나 객사 등은 생략되었다. 교육시설인 향교와 단산서원(丹山書院) 및 역원이었던 창수원(蒼水院)은 팔작지붕 기호로 표현되었다. 창고인 광제원창(廣濟院倉)은 황색 바탕의 기호를 이용하였다. 사찰은 유금암(有金庵)·장륭암(藏隆庵)·묘장암(妙莊庵)이 있고, 형승으로는 기암절벽의 회화로 표현된 관어대(觀魚臺)가 그려져 있다. 봉수는 대소산봉대(大所山烽臺)와 광산봉대(廣山烽臺)가 불씨 모양으로 존재하는데, 두 봉대를 적색 실선으로 연결시켜 신호 체계를 확인할 수 있게 하였다. 지도 상단에는 주기가 달려 있는데 민호(民戶)·전세(田稅)·군정(軍丁)의 내용이 있고 영해부를 기준으로 경도(京都)·인접 군현·각 면소재지와 산천까지의 거리가 표기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비변사인방안지도』 「영남지도 영덕·영해」는 조선 후기 영덕 지역의 사회와 지리적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사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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