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청년동맹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365
한자 盈德靑年同盟
영어공식명칭 Yeongdeok Youth League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허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8년 3월 28일연표보기 - 영덕청년동맹 설립
성격 청년 운동 단체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지역에 있었던 청년 단체 연합체.

[설립 목적]

영덕청년동맹(盈德靑年同盟)은 경상북도 영덕 지역 청년의 의식 교양과 훈련 및 영덕 지역 청년 단체를 공고히 다질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1927년 조선청년총동맹은 지역 청년 운동의 역량을 결집하여 활동하기 위해 각 계급 계층의 청년과 종교 청년 단체의 청년을 비롯한 민족주의 계열의 청년까지 포괄하는 군·부 단위의 청년동맹을 결성하기로 결정하였다. 조선청년총동맹의 결정에 따라 영덕 지역 청년들도 청년동맹을 설립하기 위한 활동을 벌였으며, 1928년 3월 28일 영덕청년회관에서 영덕청년동맹의 창립 대회를 가지고 출범하였다. 청년동맹에는 강구청년회·영덕청년회·삼사동청년회·오보청년회·남정청년회·지품청년회 등의 청년 단체가 참여하였다. 그러나 영덕청년연맹에 가입하여 함께 활동했던 영덕 북부 지역의 청년 단체는 참여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영해청년동맹을 결성하였다.

창립 당시 집행위원장은 주병호(朱秉豪)였으며 이후 임광웅(林光雄)이 맡았다. 조직 부서와 간부는 서무재정부 노병주(盧炳柱)·임광웅, 문화선전부 유웅경(劉熊慶)·유봉의(劉鳳儀), 연락조직부 이건우(李建雨)·김상순(金尙順)·장원백(張元柏), 체육부 김학순(金學順)·문왈수(文曰守), 여자부 한남이(韓南伊)·김동란(金東爛), 소년부 오석숭(吳石崇)·주문기(朱文琪)가 선임되었다.

1928년 7월에 지역과 교통 문제를 고려하여 영덕면 중심의 ‘영오(盈烏) 제1지부’와 강구 중심의 ‘영오 제2지부’로 조직을 재편하였다. 영오 제1지부의 집행위원은 임광웅·오석숭·주문기·현창범(玄昌範)·박무(朴武)·전무학(全武學)·노정식(盧精植)·권두선(權斗善)·김상룡(金相龍)이었으며, 영오 제2지부의 집행위원은 유봉의·김학순·한남이·최순득(崔順得)·한복술(韓福述)·한우진(韓禹鎭)·이호도(李浩道)·손응천(孫應千)·김경석(金敬碩) 등이었다. 1929년 영해청년동맹이 해체를 결의하고 영덕청년동맹에 가담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영덕청년동맹은 지역민의 문맹 퇴치와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하여 야학을 개설하거나 일제 관헌의 인가 문제로 야학이 폐지된 곳에서는 정기적으로 학생들을 모아 교양하였다. 또한 각종 강연회를 열어 청년들과 지역민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영덕청년동맹은 조직 확대를 위해 달산면에 지부 결성을 추진하고, 근우회 영덕지부를 설치하기 위해 활동하였다. 영덕청년동맹은 일제 관헌으로부터 지속적인 탄압을 받아 이기석과 노병주 등 간부들이 일제 경찰에 붙잡혀 가 고초를 겪었으며, 수개월간 집회를 금지 당해 활동에 많은 차질을 입었다.

[의의와 평가]

영덕청년동맹은 각계각층의 청년 단체와 다양한 분야의 청년 단체가 참여한 청년 단체였으며, 청년과 지역민의 문맹 퇴치와 근대 지식 보급에 앞장서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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