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청년연맹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360
한자 盈德靑年聯盟
영어공식명칭 Yeongdeok Youth Federati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허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5년 12월 28일연표보기 - 영덕청년연맹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28년 3월 28일연표보기 - 영덕청년연맹 해체
성격 청년 운동 단체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결성된 청년 연합 단체.

[설립 목적]

영덕청년연맹(盈德靑年聯盟)은 경상북도 영덕 지역 청년 운동의 역량을 결집하고, 청년들에게 계급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변천]

조선청년총동맹이 각 지역 청년운동의 역량 결집을 위해 부·군 단위의 청년연맹의 결성을 결의하자, 1925년 12월 강구청년회삼사동청년회의 주도로 영덕군청년연맹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준비위원회는 지역 청년 단체에게 발기문을 배부하고, 위원들이 청년 단체를 방문하여 참여를 촉구하였다. 1925년 12월 28일에 남정청년회, 삼사동청년회, 오보청년회, 영해청년회, 남정동청년회, 경정청년회 등이 가입한 가운데 창립대회를 개최하였으며, 이후 영덕청년회, 축산청년회, 인량청년회 등이 참여하였다. 간부는 이기석(李基錫)[일명 이걸소(李傑笑)], 유웅경(劉熊慶)·이봉술(李鳳述)·이태범(李泰範)·김학순(金學順)·노현식(盧現植)·박도석(朴道石)·이건우(李建雨) 등이었다.

1927년 4월에 지역과 교통 문제로 영덕군 남부 지역의 5개 면과 북부 지역의 4개 면으로 구분하여 남부 지역에 영덕부, 북부 지역에 영해부를 두었다. 간부는 집행위원장 주병호, 서무부 상무 노병주(盧炳柱), 교양부 상무 김학순, 조직부 상무 이건우(李建雨), 조사부 상무 신수형(申壽亨), 소년부 상무 김우식(金宇植) 등이었다. 조선청년총동맹의 노선 전환에 따라 1928년 3월 28일 영덕청년동맹의 결성을 결의하고 해체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영덕청년연맹은 청년과 일반인에게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사회주의 기념일에 기념식을 거행하고 강연회를 개최하였으며, 기관지인 『야봉(野烽)』을 발행하고, 사상단체 ‘야봉동맹(野烽同盟)’을 결성하였다.

청년에게 자연과학 및 사회과학의 지식을 보급하여 봉건 의식을 타파하고, 식민지 청년으로서의 사명 인식과 계급적 자각을 꾀하기 위해 강연회를 열었다. 또한, 청년과 지역민에게 근대 과학과 사상을 보급하고 농촌의 위생, 조혼(早婚)과 같은 오래된 관습의 폐해, 미신 타파를 목적으로 강연회를 추진하였으며, 영덕 지역에서 일어난 일본인의 만행과 일제 경찰의 민족차별에 항의하는 운동을 벌였다. 청년 교양, 청년 조직의 확대뿐만 아니라 부문 운동을 지원하였다.

[의의와 평가]

영덕청년연맹은 일제강점기 영덕 지역에서 최초로 결성된 청년 연합 단체로서, 청년과 지역민에게 계급의식과 민족의식을 심어주는 데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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