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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한의 출생과 행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1257
한자 申維翰-出生-行跡
이칭/별칭 「신청천의 행적」,「김청전의 출생」,「신청천의 시」,「김삿갓」,「무식한 영해부사」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다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77년 8월12일 - 「신유한의 출생과 행적」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성내1리에 거주하는 박노활의 이야기를 채록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77년 8월12일 - 「신유한의 출생과 행적」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상원리에 거주하는 이휘교의 이야기를 채록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77년 8월12일 - 「신유한의 출생과 행적」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벌영2리에 거주하는 김명봉의 이야기를 채록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77년 8월13일 - 「신유한의 출생과 행적」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벌영2리에 거주하는 최방우의 이야기를 채록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77년 8월14일 - 「신유한의 출생과 행적」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벌영1리에 거주하는 윤경호의 이야기를 채록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78년 4월25일 - 「신유한의 출생과 행적」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거주하는 이장호의 이야기를 채록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78년 4월25일 - 「신유한의 출생과 행적」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거주하는 박중상의 이야기를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0년 - 「신유한의 출생과 행적」 영남대학교출판부에서 간행한 『인물전설의 의미와 기능』에 수록
채록지 「신유한의 출생과 행적」 채록지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성내1리 지도보기
채록지 「신유한의 출생과 행적」 채록지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상원리 지도보기
채록지 「신유한의 출생과 행적」 채록지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벌영2리 지도보기
채록지 「신유한의 출생과 행적」 채록지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벌영1리 지도보기
채록지 「신유한의 출생과 행적」 채록지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인물 전설
주요 등장 인물 신유한|하인|주막 처녀|중국 사신
모티프 유형 신이담|기이담|출생담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신유한의 출생과 행적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신유한의 출생과 행적」은 신유한(申維翰)[1681~1752]의 출생과 행적을 다룬 신이담(神異談)이자 기이담(奇異談), 출생담(出生談)이다. 청천(靑泉) 신유한은 숙종(肅宗)[재위 1674~1720] 때의 문장가로 경상북도 영덕군에는 신유한의 출생과 행적에 관한 전설들이 많이 전해 내려온다.

[채록/수집 상황]

1977년 8월 12일 경상북도 영해면 성내1리에서 박노활의 이야기를 채록였으며,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상원리에서 이휘교의 이야기를 채록하였다. 1977년 8월 12일 영덕군 영해면 벌영2리에서 김명봉의 이야기를 채록하였고, 1977년 8월 13일 영덕군 영해면 벌영2리에서 최방우의 이야기를 채록하였다. 1977년 8월 14일 영덕군 영해면 벌영1리에서 윤경호의 이야기를 채록하였으며, 1978년 4월 25일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서 이장호와 박중상의 이야기를 채록하였다. 1979년 영남대학교출판부에서 간행한 『인물전설의 의미와 기능』에 「신청천의 행적」, 「김청천의 출생」, 「김삿갓」, 「무식한 영해부사」, 「신청천의 시」 등의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내용]

신유한의 아버지인 신태래(申泰來)는 아버지 신구년(申龜年)이 집을 나간 지 수십 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자 아버지가 평소 입던 옷으로 의관장(衣冠葬)을 치렀다. 산을 내려와 저녁이 되어 잠이 든 신태래는 꿈에서 해가 동쪽에서 떠올라서는 갑자가 자신의 입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놀라 일어났다. 태몽이란 걸 직감한 신태래는 아내와 잠자리에 들기 위해 서둘러 아내가 있는 곳으로 갔다. 하지만 아내는 베틀에서 베를 짜느라 남편의 요청을 완강히 거절하였다. 신태래는 어쩔 수 없이 부엌에서 일하고 있던는 여종을 불러 함께 잠자리를 하였다. 이후 여종이 잉태를 하고 후에 신유한을 낳았다.

신유한은 어릴 적부터 총명하고 지혜가 있었다. 자라서는 장원급제를 하고 중국에 사신으로 가서 뛰어난 문장가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신유한이 중국에 머물 때에 신유한의 말을 끄는 하인이 있었다. 그 하인은 중국의 갑부들과 교분을 맺었다. 그 하인은 갑부들 중 한 사람이 상을 당하자 호방하게 신유한에게 만 냥을 빌려 조의금을 냈다. 신유한은 그런 하인이 어리석다고 여겼다. 귀국하여 집으로 돌아온 하인은 몇 달 후 중국 갑부들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죽었다고 연락을 보냈다. 중국 갑부들은 타국에 와 있던 하인이 자신들을 위해 큰돈을 조의금으로 냈다는 사실에 감격하여 7명 모두가 우리나라로 와서 만 냥씩 조의금을 냈다. 결국 하인은 신유한에게 돈을 갚고도 많은 돈이 남아 부자가 되었다.

신유한이 중국에서 돌아올 때 중국 선비와 시 짓기 내기를 하였는데, 신유한이 이기게 되자 중국 선비가 한을 품고 죽어 버렸다. 죽은 선비가 신유한 앞에 다시 나타나 시 짓기 내기를 요구하여 하게 되었는데, 만약 지게 된다면 신유한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였다. 신유한이 걱정을 하자 주막집 처녀가 죽은 선비의 시에 대구할 수 있는 문장을 알려준다. 이것으로 신유한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신유한은 갖은 일을 겪고 조선으로 오지만 신분적 한계 때문에 삶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고향으로 오고자 하였으나 그곳 사람들의 괄시 때문에 돌아오지 못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모티프 분석]

「신유한의 출생과 행적」의 주요 모티프는 '해가 입으로 들어오는 꿈' 이다. 신유한은 아버지가 '해가 입으로 들어오는 꿈'을 꾼 뒤 낳은 아들이다. 하지만 신유한은 종의 자식으로 태어나 신분적 한계를 지닌다. 이 한계는 신유한이 삶에서 많은 좌절을 겪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전승 집단은 「신유한의 출생과 행적」 이야기를 통해 신유한의 신분적 한계를 애처로워한다. 또한 이 이야기를 통해 신유한이라는 인물을 위로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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