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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836
한자 南晩鎭
영어공식명칭 Nam Manjin
이칭/별칭 남갈백(南葛百)
분야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한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4년연표보기 - 남만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남만진 영해면 3.1독립운동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41년연표보기 - 남만진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2년연표보기 - 남만진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남만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영해면 3.1독립운동
출생지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남만진은 1894년(고종 31)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남갈백(南葛百)이다.

[활동 사항]

남만진은 1919년 3월 18일 영해면 3.1독립운동에 참가하였다. 영해면 만세운동은 기독교 측 김세영(金世榮)·권태원(權泰源)·정규하(丁奎河) 등과 지역 유지들의 주도 아래 전개되었다. 특히 권태원이 3월 15일 병곡면 송천리의 정규하를 만나 만세운동을 논의하였는데, 이때 정규하는 "3월 18일 영해 시장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고 독립운동을 하자."고 제안하였다. 정규하의 제안에 권태원이 동의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이후 권태원정규하영해면 3.1독립운동을 위해 동지규합 및 태극기 제작에 나섰다.

3월 18일 오후 1시경 남만진은 정규하·남계병(南啓炳)·남효직(南孝直) 등 2천명의 군중들과 함께 영해면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남만진과 군중들은 영해면에 있는 일제 침략기관 주재소·면사무소·우편소뿐만 아니라, 공립보통학교와 공립소학교 등지를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나아가 정규하는 오후 2시경 약 200여 명의 군중들을 이끌고 인접한 병곡면으로 이동하여 일제 주재소·면사무소 등지에서 만세운동을 펼쳤다.

남만진은 3월 19일 오후 4시경 영해면에 도착한 대구 보병 80연대와 일제 경찰 및 헌병들의 탄압으로 부상(負傷)을 당하였다. 일제는 해산에 불응하는 군중을 향해 실탄을 발포하였고, 일제의 발포로 인하여 4명이 순국하고, 16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때 남만진도 총탄을 맞고 평생을 불편한 몸으로 보냈다.

[상훈과 추모]

1982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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