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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357
한자 江口靑年會
영어공식명칭 Ganggu Youth Associati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허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2년연표보기 - 강구청년회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28년 3월 28일연표보기 - 강구청년회 영덕청년동맹 영덕지부 전환으로 해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5년 12월 28일 - 강구청년회 영덕청년연맹 참여
최초 설립지 강구청년회 -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동 지도보기
성격 청년운동단체

[정의]

일제강점기 영덕 지역에 설립된 청년 운동 단체.

[설립 목적]

1920년대 초반 강구청년회(江口靑年會)의 운영 목적은 지역 유지와 청년의 수양, 봉건 의식 타파, 근대 지식 전파 등이었으며, 1920년대 중반 이후에는 청년을 포함한 지역민의 사회의식과 민족의식 고취를 표방하였다.

[변천]

1922년에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동[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의 지역 유지와 청년들이 설립하였다. 1925년 12월 13일에 이봉술(李鳳述)·이태범(李泰範)·한창덕(韓昌德) 등이 영덕군 청년단체 가운데 가장 먼저 혁신총회를 열어 조직을 재편하였다. 회원 연령을 18세 이상 30세 이하로 제한하여 명실상부한 청년단체로 거듭났으며, 기존의 회장제 중심에서 집행위원회 제체로 전환하여 민주적인 운영을 강화하였다. 이봉술·이태범·한창덕·유봉의(劉鳳儀)·한복술(韓福述) 등이 상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조선청년총동맹의 조직 전환의 방침에 따라 1925년 12월 28일에 창립된 영덕청년연맹에 참여하였으며, 이봉술·이태범 등이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28년 3월 28일에 결성된 영덕청년동맹에 가입하여 영덕지부에 소속되었고, 1928년 7월에 강구와 영덕을 중심으로 조직이 편제된 ‘영오 제2지부’로 전환하였다. 유봉의·한복술 등이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20년대 초반에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진학하지 못한 아동을 위한 노동야학과 여성 대상의 야학을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1920년대 후반에는 영명학원(英明學院)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1925년 12월 영덕 지역 청년운동의 발전을 위해 각 청년 단체와 연합하여 영덕청년연맹의 발기를 결의하고, ‘영덕군청년연맹준비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이봉술과 이태범이 외교위원으로 선출되어 지역 각 청년단체에 발기문을 배부하고 직접 청년단체를 방문하여 참여를 촉구하였다. 그 결과 1925년 12월 28일에 영덕청년연맹이 결성될 수 있었다.

[의의와 평가]

강구청년회는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최초로 결성된 동 단위의 청년 운동 단체였으며, 영덕청년연맹의 결성을 주도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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