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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한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255
한자 孫漢機
이칭/별칭 두삼(斗三),국포(菊圃)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전민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68년 11월 5일연표보기 - 손한기 출생
몰년 시기/일시 1745년 11월 29일연표보기 - 손한기 사망
묘소|단소 손한기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상리리
사당|배향지 상체정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상리리 지도보기
성격 학자
성별
본관 밀양
저술 『국포일고(菊圃逸稿)』

[정의]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학자.

[가계]

손한기(孫漢機)의 본관은 밀양. 자는 두삼(斗三), 호는 국포(菊圃)이며, 1668년(현종 9) 11월 5일에 태어나 1745년(영조 21) 11월 29일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참의(參議)에 추증된 손덕침(孫德沈), 증조는 조산대부(朝散大夫) 손상운(孫祥雲)이며, 조부는 선교랑(宣敎郞) 손봉후(孫奉後)이다. 아버지는 손만정(孫萬禎), 어머니는 생원(生員) 조함세(趙咸世)의 딸인 어머니 함안 조씨(咸安趙氏)이다.

부인 연안 이씨(延安 李氏)는 이이침(李以沈)의 딸로서 슬하에 4남 1녀를 두니, 아들은 손효순(孫孝舜)·손효래(孫孝萊)·손효적(孫孝積)·손효상(孫孝祥)이며, 사위는 이석중(李碩中)이다.·

[활동 사항]

손한기는 형 손한추(孫漢樞)와 더불어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고, 당대 높은 덕망을 갖춘 여러 선배들과 도의로서 잘 어울리며 탁마와 강론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손한기는 평생 남을 높이고 자기를 낮추는 겸손을 저버리지 않았으며, 스스로 호를 쓰지 않았다. 밭둑에 국화를 심어 늘그막에 심성을 수양하는 자료로 삼았는데, 친지와 친구들이 모두 서첨(書簽) 등에 공을 ‘국포(菊圃)’라 칭함에 호가 되었다.

[학문과 저술]

목판본의 2권 1책의 『국포일고(菊圃逸稿)』가 있다.

[묘소]

손한기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古鏡面) 상리리(上梨里) 후곡(後谷)에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상리리에 후손들이 손한추손한기 형제를 추모하여 지은 상체정(常棣亭)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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