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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벌국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490
한자 骨伐國
이칭/별칭 골화국(骨火國),골벌소국(骨伐小國),골화소국(骨火小國)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
집필자 이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236년 2월연표보기 - 골벌국 왕 아음부가 신라에 항복
개정 시기/일시 757년 12월연표보기 - 골벌국 임천현으로 개편
관할 지역 골벌국 - 현재의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화산면, 신령면 일대

[정의]

삼한 시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있었던 소국.

[개설]

골벌국은 신라 양주(良州) 임고군(臨皐郡)의 영현인 임천현(臨川縣) 지역에 있었던 소국(小國)이다. 골화국(骨火國)·골벌소국(骨伐小國)·골화소국(骨火小國) 등으로도 불린다.

[형성 및 변천]

『삼국사기』 권34 지리지에는 신라 조분왕골화소국을 쳐서 멸망시켜 현(縣)으로 삼았다고 하고, 『삼국사기』 권2, 신라본기 조분왕 7년(236)조에는 “봄 2월 골벌국왕(骨伐國王) 아음부가 무리를 거느리고 와서 항복하였다. 이에 왕은 집과 토지를 주어 편히 살게 하고 그 지방을 군(郡)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골벌국은 영천 지역의 대표적인 소국이었으나 3세기 중엽에 신라에 흡수되었다고 하겠다. 처음 군현이 설치된 시기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경덕왕대 한식(韓式)으로의 지명 개정 때에는 임천현(臨川縣)으로 불렸다.

그 후 505년(지증왕 5)에는 파리(波里)[삼척시 원덕읍]·미실(彌實)[포항시 흥해읍] 등 11성(城)과 함께 골화성(骨火城)을 쌓은 기록이 있고, 또한 김유신(金庾信)이 고구려 첩자의 꼬임에 빠져 적국을 정탐하러 가는 길에 골화천(骨火川)[오늘날의 북안천 추정]에서 유숙할 때 나림(奈林)·혈례(穴禮)·골화(骨火) 등 세 곳의 호국신의 도움을 얻어 골화관(骨火館)에서 돌아올 수 있었다는 설화가 남아 있다.

신라 대사(大祀)인 삼산(三山) 중에 골화산(骨火山)이 있으며, 신라 말기 영천 지역의 호족인 황보능장(皇甫能丈)의 근거지가 골화성이었다고 한다. 임천현은 임고군 군치 및 도동현과 함께 고려 초 영주(永州)로 개편되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골벌국은 오늘날의 영천시 완산동북안면 일대로 추정된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 권34, 지리지 양주 ‘임고군’ 항목에는 “임고군(臨皐郡)은 본래 절야화군(切也火郡)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영주(永州)이다. 영현이 다섯이었다. 장진현(長鎭縣)은 지금의 죽장이부곡(竹長伊部曲)이다. 임천현(臨川縣)은 조분왕 때에 골화소국(骨火小國)을 쳐서 얻어 현(縣)을 설치하였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영주(永州)에 합쳐져 속하였다.[臨臯郡 本切也火郡 景德王改名 今永州 領縣五 長鎭縣 今竹長伊部曲 臨川縣 助賁王時 伐得骨火小國 置縣 景德王改名 今合屬永州]]”이라고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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