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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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琴峙里 |
영어공식명칭 | Geumchi-ri |
영어음역 | Geumchi-ri |
영어공식명칭 | Geumchi-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 금치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성민 |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금치리 명칭은 금동마을과 진치마을·대치마을·소치마을에서 유래했다. 금동(琴洞)마을은 선녀들이 샘골에서 목욕한 후 마을 북쪽 300m 지점에 있는 비선등을 오르내리고, 옥녀봉에서 거문고를 타면서 놀았다고 하여 거문고 금(琴) 자를 따 ‘금동’이라 했다고 한다. 대치(大峙)마을은 제석산 중턱 마을에서 낙안으로 다니던 고개의 이름 ‘한재’에서 유래하였고, 큰 고개를 의미하는 ‘한재’를 ‘대치(大峙)’로 표기하였다, 따라서 ‘한재’ 또는 ‘대치마을’이라 한 것이다. 진치(進峙)마을은 임진왜란 때 전라좌수영의 수군과 낙안군의 수비군이 왜군을 물리치기 위해 진을 친 곳이라 해서 ‘진(陣)터’라 했다고 한다. 진터가 있는 고개가 되므로 진터고개에서 진터재로 변했고 한자로 쓰면서 ‘진치(進峙)’가 되었다.
과동(果洞)마을은 본래 큰 모과나무가 있어 ‘모개굴’이라 했는데, 모과는 한자로 목과이기 때문에 ‘목과동(木果洞)’이 되었다고 한다. 모개굴에서 현재의 자리로 마을 터를 옮기면서 ‘목과동’ 대신 ‘과동’이라 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금치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순천군 초하면 진치리·대치리·소치리·과동리·금동리, 초상면 원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순천군 동초면 금치리로 개설되었다. 1929년 동초면이 폐지되면서 순천군 별량면에 속하게 되어 순천군 별량면 금치리가 되었다.
1949년 전라남도 순천시와 전라남도 승주군이 분리되면서 승주군 별량면 금치리가 되었다. 1995년 도농통합 정책에 의해 순천시와 승주군이 통합되면서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 금치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금치리는 북쪽에는 제석산이 있고, 남쪽으로는 금치천이 흐른다. 금치천 주변은 대부분 낮은 구릉과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북쪽 제석산[560m] 능선이 동쪽으로 뻗어 시리봉[382m]을 만들고, 서남쪽으로 이어져 과동 뒷산이 되고, 심바심까지 등을 이루어, 북쪽으로는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 대룡리, 동쪽으로는 별량면 죽산리와 경계가 된다. 제석산 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는 진토재를 만들고, 동쪽으로 뻗어 벌교와 땅금을 대며 개머리등이 된다. 제석산에서 진토재에 이르기 전 한 갈래의 능선은 진치마을의 뒷산이 된다.
[현황]
금치리 면적은 7.98㎢로 별량면 관내 18개 리 중 대룡리에 이어 두 번째이며, 2019년 8월 31일 기준으로 인구는 155가구, 263명[남 131명, 여 132명]이다. 금치리에 속한 자연마을로는 과동마을·금동마을·대치마을·진치마을 등이 있다.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 금치리는 순천으로 진입하는 서남쪽 관문이 되는 곳이다. 국도 제2호선이 남쪽에서 동서 방향으로 이어지고, 철도는 진치마을과 과동마을을 거쳐 동서로 연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