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운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1310
한자 帝王韻紀
영어공식명칭 Jewangungi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최은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244년 - 이승휴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300년 - 이승휴 사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287년연표보기 - 「제왕운기」 저술
성격 영사시
작가 이승휴

[정의]

1287년 성주 출신 문신인 이승휴가 지은 영사시.

[개설]

이승휴(李承休)[1224~1300]의 자는 휴휴(休休)이고, 자호(自號)는 동안거사(動安居士)이다. 성주의 속현(屬縣)이던 가리현(加利縣) 사람으로 가리(加利) 이씨(李氏)의 시조이다. 이승휴는 1280년(충렬왕 6)에 전중시사(殿中侍史)로서 충렬왕에게 사냥과 유흥을 멈추라고 간언하였다가 파직을 당하여 두타산 구동으로 들어간 후, 1287년(충렬왕 13) 3월에 표(表)와 함께 왕에게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진헌하였다. 당시 이승휴는 몽고 침략과 친원(親元) 정권의 수립 이후 고려 왕권의 강화와 왕실의 권위 회복을 열망하면서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지었다.

[구성]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7언시의 형식을 빌려 서술하였으며 상하 2권 1책이다. 권수에 「진정인표(進呈引表)」가 있고, 각 권마다 이승휴가 쓴 서(序)를 수록하였다. 상권은 반고에서 금까지, 하권은 단군에서 충렬왕까지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서술하였다. 1부는 전조선·후조선·위만 조선·삼한·신라·고구려·백제·발해 등의 사적을, 2부는 고려 건국부터 충렬왕 때까지의 역사를 엮었다.

[내용]

「제왕운기」 상권 병서(幷序)에서, “예로부터 제왕들이 서로 이어받으며 흥하고 망한 일을 경세군자(經世君子)는 밝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고금의 전적은 많고 끝이 없어 앞뒤가 서로 얽혀 있다. 진실로 요점을 추려 시(詩)로 하면 열람하기 편하지 않겠는가.”라고 한 구절을 보면, 이승휴「제왕운기」를 짓게 된 동기가 잘 드러난다. 고금의 전적이 많기 때문에 이를 편리하게 열람할 방법으로 시를 택한 것이다. 그리고 경세군자는 제왕들의 계승 관계를 밝히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보았는데, 여기서 경세군자는 국가와 사회를 책임 있게 경영할 도덕적 인물을 의미한다. 이승휴는 제왕들의 계승과 흥망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사람들에게 도덕적 권계를 줄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이는 유교적 역사 인식 태도에 기초하고 있다. 즉 역사상에 나타나는 정토와 군주권을 강조하고 파행적 정치상을 비판하면서, 군주를 경계하고 신하들에게 경고하여 군신이 각각 제 역할을 다하는 정치를 이룩하고자 한 것이다.

[특징]

당시 현실을 인정하고 군주권을 강조함으로써 현 국왕 중심의 정치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현실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중국과 우리나라의 과거 역사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었고, 이를 시문의 형태로 나타낸 것이다. 이때 고려가 처한 현실에 따라 정통론을 적용하여 서술하였다. 유교적 역사관을 근간으로 하고 있으나 불교와 유교 사관이 혼합되어 나타난다. 서술에서 사실에 대한 고증을 강조하고, 가능한 한 문헌 자료를 전거(典據)로 제시하여 객관성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다만 국왕의 위엄과 왕조의 계통성을 강조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서술에 있어 신이적인 측면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의의와 평가]

원 간섭기 고려의 자주성을 드러내고자 창작된 작품이다. 또한 단군·기자·위만으로 이어지는 삼조선설, 단군 후예론, 발해 고구려 계승론 등은 조선 전기 역사 서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의 경우 역사를 다룬 글 가운데 처음으로 전조선, 후조선, 위만 조선, 사군, 삼한, 신라, 고구려, 백제, 후고구려, 후백제, 발해, 고려의 역사적 전개를 체계적으로 기술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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