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 소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1266
이칭/별칭 「물레 노래」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동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 시기/일시 1979년 6월 7일 - 「물레 소리」 김말선, 이차순에게 채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0년 - 「물레 소리」 『한국 구비 문학 대계』7-4에 수록
채록지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지도보기
채록지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문덕리 지도보기
채록지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운정리 지도보기
가창권역 전국
성격 민요|노동요
기능 구분 길쌈 노동요
형식 구분 독창
박자 구조 2음보
가창자/시연자 윤유낙|김말선|송봉순|이차순|도순기

[정의]

경상북도 성주 지역에서 여성들이 길쌈할 때 부르는 소리.

[채록/수집 상황]

「물레 소리」는 1980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 구비 문학 대계』7-4에 수록되어 있다. 1979년 6월 7일 처음 채록되었으며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2동[현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문덕1동[현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문덕리],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운정2동[현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운정리]에서 여러 여성 구연자에게 조사 및 채록되었다.

[구성 및 형식]

길쌈은 단순 반복 작업의 연속으로 정제된 형태의 서사 민요가 발달하였으나 노동 형태와 노랫말의 연관성은 없다. 그리하여 서사 민요로서 시집살이의 애환 등 삶의 고달픈 형상을 드러내는 것이 많다.

[내용]

성주 지역에서 물레를 이용하여 실을 뽑는 과정에서 불려진 민요이다. 「베틀 소리」, 「삼 삼기 소리」와 더불어 대표적인 길쌈 노동요의 하나다. 물레질은 단순한 일의 반복이 이어지는 작업이다. 그래서 노동의 형태와 노랫말이 긴밀하게 연관되지는 않는다. 물레질은 농사일과 달리 강도 높은 육체노동이 아니기 때문에 주로 시집살이의 애환과 졸음을 쫓는 말 등을 노래함으로써 지루한 일의 작업 능률을 높인다. 긴 시간 동안 물레질을 하면서 부르기 때문에 비교적 장형의 노래로 발달하였다. 성주에서 채록된 「물레 소리」의 노랫말을 살펴보면 고부 갈등 같은 시집살이에 관한 내용 외에도 길쌈을 해서 전답을 사는 등 여성의 치산(治産)이 나타난다. 이는 조선 후기 여성의 경제 활동 및 치산 능력 중시 풍토가 노랫말에 반영된 것이다.

「물레 노래」[김말선]

남산밑에//싸리고리

진주야대정//취언가락

물리질로//이란살림

논도사고//밭도사고

은가매도//사서놓고

은동우도//사서놨더니

아리왔던//미늘아기

시집왔는//사흘만에

은가매도//깨트리고

은동우도//깨트맀네

아가아가//미늘아가

너거집에//가거들랑

은동울랑//고만두고

은가맬랑//장만해라

미늘애기//하는말이

꽃맹덕을//피트리며

아버님요//저앉지소

어무이요//여앉지소

금과같이//키안아들

꽃과같이//옷을입히

제비같은//말을태와

저거집에//보낼적에

「물레 노래」[이차순]

남산밑에//싸리고리

진주대정//지은가락

물리질로//이룬살림

은가매도//장만하고

은동이도//장만하고

시집온//미늘애기

시집온//삼일만에

은동이도//깨어놓고

은가매도//깨어놨네

아가아가//미늘아가

너거집에//가거들랑

니비종을//다팔아나

은동일랑//고만두고

은가매나//장만해라

어머님요//저안지소

꽃맹석을//피트리며

어머님요//여안지소

화맹석을//피트리며

아버님요//여안지소

이내말씀//들어보소

금과같은//아들애기

꽃과같이//옷을입히

지비같이//말을태여

우리집에//오실적에

우리부모

말잡거니//소잡거니

이내몸이//왔을적에

은동이가//그뭣이고

은가매가//웬말이요

오냐니말//거기두고

내말일랑//여기두자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길쌈은 사대부가 여성들에게 부덕(婦德)으로 권장되었던 양잠업이었다. 사대부의 의복 재료가 명주였으며, 양잠이 다른 직물보다 노동 과정 및 방적 과정이 상대적으로 수월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사회경제적 변화와 장시의 활성화에 의해 치산(治産)의 수단이 되었다. 특히 여성의 생산 노동과 치산 능력이 중요해짐에 따라 단순한 부덕의 영역에서 벗어나 여성의 주요 경제 활동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여성의 생활상, 특히 시집살이와 관련한 내용을 잘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적·역사적 가치가 높다. 또한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여성 경제사적 맥락에서 조선 후기 여성의 경제 활동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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