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846
한자 鄭宗鎬
영어공식명칭 Jeong Jongho
이칭/별칭 한조(漢朝),뇌헌(磊軒)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권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5년 6월 26일연표보기 - 정종호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 정종호 파리 장서 운동에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7월 31일 - 정종호 일제 경찰에 체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10월 13일 - 정종호 대구지방법원에서 위증죄로 징역 6월 선고받음
몰년 시기/일시 1961년 1월 3일연표보기 - 정종호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2년연표보기 - 정종호 대통령 표창 추서
출생지 정종호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한강길 19-7[수성리 853]지도보기
활동지 정종호 활동지 - 대구광역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성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한조(漢朝), 호는 뇌헌(磊軒). 문목공(文穆公)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14세손이다. 아버지는 정재설(鄭在卨)이며, 성재(省齋) 정재기(鄭在蘷)[1851~1919]의 조카이다.

[활동 사항]

정종호(鄭宗鎬)[1875~1961]는 1875년 6월 26일 경상북도 성주군 청파면 수성리 853[현 수륜면 수성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독립 선언문(獨立宣言文)이 발표되었으나 유림 측은 민족 대표 33인의 명단에 이름도 올리지 못하였다. 이에 곽종석(郭鍾錫)·장석영(張錫英)·송준필(宋浚弼)·김창숙(金昌淑) 등은 유림단의 이름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파리 강화 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청원하는 글을 제출하기로 하였다. 이때 작성된 것이 파리 장서[독립 청원서]이다.

파리 장서는 김창숙이 가지고 비밀리에 용산역을 출발하여 중국 상하이[上海]로 가 프랑스 파리 강화 회의 의장에게 우편으로 발송하는 형태로 추진되었다. 한편, 1915년 대구에서 결성된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 중앙총부 통령(統領) 윤상태(尹相泰)도 곽종석과 장석영 등 유림단이 작성한 파리 장서를 구해 영문본으로 만들어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 단원 김응섭(金應燮)과 남형우(南亨祐)로 하여금 상하이로 가지고 가서 김창숙과 합류하도록 하였다.

이때 정종호는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 통령 윤상태와 경상북도 달성군 월배면 상인동[현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단양 우씨 문중 사이에 파리 장서를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 후 윤상태에 이어 정종호도 1919년 7월 31일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10월 1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관련 사실을 부인하였으나 위증죄로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항소하였으나 1919년 12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심 판결대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1961년 1월 3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2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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