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812
한자 呂鎬鎭
영어공식명칭 Yeo Hojin
이칭/별칭 응도(都應)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김경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8년 3월 15일연표보기 - 여호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2일 - 여호진 성주 벽진면 해평동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붙잡힘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28일 - 여호진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월을 선고받음
몰년 시기/일시 1947년 3월 2일연표보기 - 여호진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3년연표보기 - 여호진 대통령 표창 추서
출생지 여호진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여호진 거주지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2길 9-10[수촌리 682-2]지도보기
활동지 여호진 활동지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성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응도(都應). 여희림(呂希臨)의 12세손이며, 아버지는 여정규이다.

[활동 사항]

여호진(呂鎬鎭)[1888~1947]은 1888년 3월 15일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해평동[현 벽진면 수촌리]에서 출생하였다.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해평동 성산 여씨(星山呂氏) 집성촌에 살았으며, 1919년 4월 2일 벽진면 해평동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2일 오후 1시경 성주읍 장터에서는 수천 명의 군중이 모여 독립 만세 시위를 하였다. 일제 경찰이 시위 군중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여우룡(呂又龍)·여왕연(呂旺淵)·여문회(呂文會) 등과 함께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해평동에서도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1919년 4월 2일 밤 11시경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해평동 월회당(月會堂) 앞 도로에서 성주읍 장터에서 돌아오는 군중 300여 명을 규합하여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마을로 시위행진을 하다가 일제 경찰에 검거되었다.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제7조에 의거하여 징역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47년 3월 2일에 사망하였다.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2길 9-10[수촌리 682-2]에 여호진의 집터가 남아 있다.

[상훈과 추모]

1993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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