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806
한자 呂箕東
영어공식명칭 Yeo Gidong
이칭/별칭 자정(子精),자계(紫溪)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진갑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9년연표보기 - 여기동 출생
몰년 시기/일시 2000년연표보기 - 여기동 사망
출생지 여기동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여기동 묘소 -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어은리 지도보기
성격 한학자
성별
본관 성산

[정의]

근현대 성주 출신의 한학자.

[가계]

본관은 성산(星山). 자(字)는 자정(子精), 호는 자계(紫溪). 원정(圓亭) 여희림(呂希臨)의 후손으로, 고조할아버지는 여택규(呂宅奎), 증조할아버지는 여경회(呂慶會), 할아버지는 석은(石隱) 여노연(呂老淵)이다. 아버지는 송준필(宋浚弼), 장복추(張福樞), 김흥락(金興洛)의 문하에서 수학한 이파(伊坡) 여상문(呂相文)이고, 어머니는 도윤상(都允相)의 딸이다. 생가의 할아버지는 여종연(呂鍾淵)이다.

[활동 사항]

여기동(呂箕東)[1919~2000]은 1919년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에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마을 서당에서 수학하여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후 당시 시문(詩文)에 치우치는 선비들의 풍조를 보고 깨달은 바가 있어 성주 수륜면 지촌(枝村)의 뇌헌(磊軒) 정종호(鄭宗鎬)에게 나아가 10여 년간 기숙, 정진하여 스승의 칭찬과 인정을 받았다.

동문(同門)들과 친화했고, 특별히 후산(厚山) 정재화(鄭在華)와는 노년에 이르도록 서로 왕래하며 정의를 쌓았다. 연세대학교의 연민(淵民) 이가원(李家源) 교수와도 친교가 두터워 오랫동안 교유하며 성리학(性理學)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서신으로 주고받았다. 이가원은 여기동이 지은 『자계집(紫溪集)』의 교정과 함께 서문도 써 주었다.

유학이 크게 쇠퇴한 시대를 살면서도, 머리의 상투를 보존하고 고의(古衣)와 고관(古冠)으로 언제나 똑같은 차림새로 주의(周衣)를 입고 살았다. 평생 동안 정주학(程朱學)에 깊이 몰두하여 고문(古文)을 익히고 옛사람의 법도(法度)를 행한 삶이었다. 만년에는 인근 서당의 석채례(釋菜禮)에 수임(首任)으로 여러 번 참여했고, 상주의 옥동서원(玉洞書院)과 옥성서원(玉成書院)의 원장을 맡아 행사를 다녀오기도 하였다. 2000년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자계집』 4권 2책이 있다.

[묘소]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어천촌(漁川村)[현 어은리] 해좌(亥坐) 언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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