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791
한자 成德伊
영어공식명칭 Seong Deoki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9년 3월 10일연표보기 - 성덕이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6일 - 성덕이 성주군 가천면 창천 시장 장날 독립 만세 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28일 - 성덕이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월을 선고받음
몰년 시기/일시 1969년 10월 13일연표보기 - 성덕이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6년연표보기 - 성덕이 대통령 표창 추서
출생지 성덕이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도남리 467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성덕이 거주지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도남리 467
활동지 성덕이 활동지 -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성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성덕이(成德伊)[1899~1969]는 1899년 3월 10일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도남동[현 도남리] 467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창천 시장(倉泉市場) 장날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하여 만세 시위를 벌였다. 1919년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경상북도 성주 지역에서는 3월 27일 선남면 소학동[현 소학리]과 가천면 동원동[현 동원리], 4월 2일 성주읍 시장벽진면 해평동[현 수촌리], 4월 3일 지사면 수륜동[현 수륜면 수륜리], 4월 6일 월항면 안포동[현 안포리] 등지에서 만세 시위 운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4월 6일 대가면 도남동에서도 만세 시위 운동이 전개되었다.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창천 시장의 장날인 1919년 4월 6일 오후 5시 김팔수(金八洙)를 비롯한 청년 20여 명과 함께 창천주재소(倉泉駐在所) 맞은편에 있는 대가면 후포(後浦) 뒷산에 올라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면서 시위를 벌였다. 이에 창천주재소 경찰 4명이 출동하였다. 만세를 부르던 청년들은 모두 몸을 피하였고, 김팔수와 함께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8일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69년 10월 13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6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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