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774
한자 金煥基
영어공식명칭 Gim Hwangi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9년 1월 21일연표보기 - 김환기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5년 - 김환기 아버지 김창숙에게 군자금을 전달하기 위해 중국 베이징으로 출국
활동 시기/일시 1926년 7월 - 김환기 군자금 모집을 위해 귀국
활동 시기/일시 1927년 2월 - 김환기 일본 경찰에 붙잡힘
몰년 시기/일시 1927년 12월 20일연표보기 - 김환기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김환기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김환기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 504 지도보기
활동지 김환기 활동지 - 경상남도 합천군
활동지 김환기 활동지 - 중국 베이징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제2차 유림단 의거에 참여한 성주 출신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의성(義城). 조선 중엽의 명현(名賢)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1540~1603]의 14세손이다. 아버지는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이며 동생이 김찬기(金燦基)이다.

[활동 사항]

김환기(金煥基)[1909~1927]는 1909년 1월 21일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칠봉2길 50-4[칠봉리 504]에서 김창숙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3월 아버지 김창숙이 한국 유림 대표로 파리 장서[독립 청원서]를 가지고 중국으로 떠난 뒤, 일제의 감시와 탄압으로 집안이 어려워졌다. 김환기는 학교를 그만두고 경상남도 합천의 황매산(黃梅山)에 가서 이회(而晦), 곧 중재(重齋) 김황(金榥)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김황은 김우림(金佑林)이라고도 하는데 곽종석(郭鍾錫)의 문인으로 1919년 3월 파리 장서 초안을 작성했던 유학자이다.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버지의 소식도 간혹 있었다. 1923년 5월에는 “네 아비는 병들어 죽고 말아 너의 성공을 보지 못할 것이 한스럽구나. … 네가 한 번 와서 이 죽어 가는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지 않겠느냐? 너는 이 정상(情狀)을 김황 아저씨 및 문중 여러 어른들께 빠짐없이 말씀드리고 떠날 차비를 서두르도록 하여라”라는 내용으로 중국 방문을 촉구하는 편지를 받기도 하였다. 당시 아버지는 중한호조회(中韓互助會)를 결성하는 등 중국 각지를 다니며 활동하다가 치질이 악화되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1925년 봄 경상북도 지방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여 베이징[北京]의 아버지에게 전달하면서 중국에서 아버지의 활동을 돕게 되었다. 1926년 7월 다시 군자금을 모집하라는 아버지의 밀명을 받고 귀국하여 활동하던 중 1927년 2월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장기간에 걸친 일본 경찰의 혹독한 고문으로 병을 얻어 출옥하였으나 1927년 12월 20일 치료 중에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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