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649
한자 李達新
영어공식명칭 I Dalsin
이칭/별칭 가행(可行),삼민당(三悶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정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44년연표보기 - 이달신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84년 - 이달신 생원시 합격
활동 시기/일시 1690년 - 이달신 큰 흉년에 종족을 구함
활동 시기/일시 1699년 - 이달신 『여지승람』 수정 작업에 참여
몰년 시기/일시 1713년연표보기 - 이달신 사망
출생지 이달신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매호리
성격 문인|학자
성별
본관 경산

[정의]

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문인.

[가계]

본관은 경산(京山). 자는 가행(可行), 호는 삼민당(三悶堂). 천봉(天封)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이형희(李亨禧), 어머니는 야성 송씨(冶城宋氏) 유학 송섬(宋暹)의 딸이다. 동생은 이도신(李道新), 이적신(李迪新)이다. 부인 역시 야성 송씨로 만회정(晩悔亭) 송세빈(宋世彬)의 딸이다.

[활동 사항]

이달신(李達新)[1644~1713]은 1644년(인조 22) 경상북도 성주군 매호리에서 출생하였다. 1684년(숙종 10) 식년시 3등으로 생원에 입격했고, 종조(宗祖) 학가재(學稼齋) 이주(李𦁖)[1599~1669]의 문인(門人)이었다. 1690년(숙종 16)에 큰 흉년이 들어서 종족(宗族)이 굶어 죽을 위험에 처하자, 서울에 올라가 호조에서 은화 200냥을 빚내어 청주에 이르러 곡물을 사서 종족을 구하였다. 다음 해에 산소에서 조상 제사를 지내는 데 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경작하는 논인 위답(位畓)을 팔아서 빚을 갚았다. 1699년(숙종 25)에 조정의 명으로 『여지승람(輿地勝覽)』 수정 작업에 참여했고, 귀암(歸岩) 이원정(李元禎), 소매(訴梅) 장금영(張金永), 나은(蘿隱) 여성거(呂聖擧) 등과 가까웠다. 1713년(숙종 39)에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저술로 『삼민당집(三悶堂集)』이 있다. 종조 이주의 가장(家狀)을 찬(撰)하였다.

[묘소]

본래는 매호리 북쪽 마율산(馬栗山) 사좌(巳坐) 둔덕에 장사 지냈으나, 1992년에 검암산(儉巖山) 서록(西麓) 선영 밑 축좌(丑坐)에 이장하였다.

[상훈과 추모]

유림에서 계(契)를 결성하여 건립한 공암서당(孔岩書堂)에 봉향하였다. 공암서당은 흑산(墨山) 뒤 관동산(冠洞山) 아래에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3.04.20 현재 지명 불일치 성주주 매호리는 현재의 상주시 사벌면 매호리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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