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564
한자 金天渫
영어공식명칭 Gim Cheonseol
이칭/별칭 대수(大修),계봉(溪峰)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영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58년연표보기 - 김천설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92년 - 김천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킴
몰년 시기/일시 1641년연표보기 - 김천설 사망
출생지 김천설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김천설 거주지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군자감 주부

[정의]

조선 전기 성주 출신의 유학자이자 의병.

[가계]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대수(大修), 호는 계봉(溪峰). 김용초(金用超)의 7세손으로 할아버지는 김관석(金關石), 아버지는 김담로(金聃老)이다. 어머니는 선산 김씨(善山金氏) 김순(金珣)의 딸이다. 형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김천택(金天澤)[1555~1595]이다.

[활동 사항]

김천설(金天渫)[1558~1641]은 1558년(명종 13)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임진왜란 때는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1552~1617]의 진영에 합류하여 의병 활동을 하였다. 이후 곽재우가 조정에 천거하여 군자감 주부(軍資監主簿)에 제수되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는 벼슬에 뜻이 없어 고향에 은둔하며 학문을 강론하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1641년(인조 19)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김천설을 추모하기 위해 1971년 계봉재(溪峰齋)를 지었고, 건물은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성리 안터 마을에 있다. 재사(齋舍)는 본당(本堂)과 솟을대문으로 일곽(一郭)을 이루고 있다. 본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중앙에 2칸 마루를 두고, 좌·우에 각 1칸씩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 구조로 되어 있다. 온돌방 전면에 툇마루를 두어 대청과 통하게 했고, 시멘트를 덧칠한 기단(基壇) 위에 화강석 초석(礎石)을 놓고 전열(前列)과 후열(後列) 중앙에만 기둥을 세웠다. 솟을대문은 맞배지붕으로 가운데 1칸 대문을 두고 양 측면에 각 1칸씩 온돌방과 창고를 두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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