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도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536
한자 星州都氏
영어공식명칭 Seongju Do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영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성주 - 경상북도 성주군
입향지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지도보기|초전면지도보기
성씨 시조 도진
입향 시조 도윤길

[정의]

도진을 시조로 하고, 도윤길을 입향조로 하는 성주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도진(都陳)을 시조로 하는 성주 도씨(星州都氏)의 근원은 중국 한나라 때의 도계(都稽)이다. 도계는 반란을 일으킨 남월(南越)의 재상 여가(呂嘉)를 사로잡은 공으로 도씨 성을 받았다. 우리나라의 도씨 가계는 고구려에 들어와 유리(琉璃)가 왕위에 오를 수 있게 도운 도조(都祖) 때부터 시작되었다. 백제와 신라의 도씨로는 백제 개루왕(蓋婁王) 때의 재상인 도미(都彌), 신라 김유신(金庾信)을 도와 백제군을 격파한 도유(都儒) 등이 있었다.

[연원]

고려 태조가 건국에 큰 공을 세운 도진에게 정승의 벼슬을 주고 성산부원군(星山府院君)에 봉하며 논밭을 하사하여 성주가 도씨의 관향(貫鄕)이 되었다. 그러나 성주 도씨는 도진에 관한 기록이 정확하지 않아서 고려 명종 때 전리 상서(典理尙書)를 지낸 도순(都順)을 시조로 하고 있다. 입향조는 도윤길이며, 그 후손은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의 수촌에 거주하고 있다. 도윤길의 8촌인 도경(都慶)은 이인임(李仁任)이 실각한 기사화변(己巳禍變)에 연루되어 경산부(京山府)[현 경상북도 성주군]로 유배되었고, 이때부터 후손들이 노포(蘆浦)[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동포리]에 정착하게 되었다.

성주 도씨는 행정공파(杏亭公派), 운재공파(雲齋公派), 소위공파(昭威公派), 시승공파(侍承公派)로 나뉘어져 성주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게 되었다. 행정공파는 도윤길의 증손 양진당(養眞堂) 도맹녕(都孟寧)의 장자 도형(都衡)이 파조이다.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으로 병조좌랑에 있다가 기묘사화(己卯士禍)로 낙향했고, 성주 천곡서원(川谷書院) 동사(東祠)에 제향하였다. 자손들은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초전면 일대에서 세거하였다. 운재공파는 도맹녕의 둘째 아들 도균(都勻)이 파조이다. 형과 같이 김굉필의 문인이었고, 성주의 학문 발전에 기여하였다. 후손들은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 가천면 창천리 천창, 초전면 봉정 등에 거주하였다. 이원정(李元禎)이 편찬한 『경산지(京山志)』의 초고를 집필한 도세순(都世純)도균의 증손이다.

소위공파는 도윤길의 증손이자 봉열대부(奉列大夫) 소위장군(昭威將軍)을 지낸 도영수(都永綏)가 파조이다. 후손들은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월항면 하남에 살고 있다. 시승공파는 6세 도길생(都吉生)이 파조이다. 도길생의 7세손 도종호(都宗虎)는 임진왜란 때 창의하여 사복(司僕)의 직첩을 받았다. 후손들은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동포리 노포, 벽진면 외기리 내원, 성주읍 대황리 칠산, 성주읍 성산리 장자동, 초전면 문덕리 등에 거주하고 있다.

[입향 경위]

고려 말에 문과에 급제하여 봉상대부를 지낸 도윤길이 난세를 피해 벽진의 제산 밑으로 이거하여 수촌이라고 이름했고, 후손들이 계속 수촌 지역에서 세거하였다.

[현황]

성주 도씨는 2010년 6월 말 기준으로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창천 1리와 천창에 14호, 벽진면 수촌 4리와 중동에 93호, 월항면 용각 1리에 45호가 있다.

[관련 유적]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봉학리[새내미]에 23세 국은공(菊隱公) 도상범(都相範)의 정사(精舍)인 국은정사(菊隱精舍)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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