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524
한자 龍潭先生文集
이칭/별칭 『용담집』,『용담문집』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미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11년연표보기 - 『용담선생문집』 간행
소장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60-1]
소장처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신촌동 134]
성격 시문집
저자 박이장(朴而章)
편자 박규환(朴奎煥)
간행자 박인현(朴寅鉉)|박윤현(朴允鉉)
권책 7권 3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32.1×21.4㎝
어미 상하백구 상하내향사판화문흑어미(上下白口 上下內向四瓣花紋黑魚尾)
권수제 용담선생문집(龍潭先生文集)
판심제 용담선생문집(龍潭先生文集)

[정의]

1911년 간행된 조선 후기 성주에서 활동한 문인 박이장의 시문집.

[저자]

박이장(朴而章)[1547~1622]의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자는 숙빈(叔彬), 호는 용담(龍潭)·도천(道川)이다. 판윤(判尹) 박가권(朴可權)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승지(承旨) 박양좌(朴良佐)이다. 23세에 조식(曺植)을 찾아 덕산(德山)에 갔으며, 1572년 향시(鄕試)에 합격하고 이듬해 회시(會試)에 합격하였다. 1574년 노수신(盧守愼)을 찾아가 학문하였다. 1586년(선조 19) 별시을과(別試乙科)에 급제(及第)하여 여러 관직을 거친 후 홍문관 직제학(弘文館直提學)·이조참판(吏曹參判)·대사간(大司諫)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에 김성일(金誠一)의 주청(奏請)으로 종사관이 되어 크게 활약하고, 1615년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이를 반대하는 만언소(萬言疏)를 올렸다가 벼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후 성주에서 주로 저술과 후진 양성에 힘을 쏟으며 만년을 보냈으며, 1738년에 서계(西溪) 김담수(金聃壽)와 함께 성주의 청천서원(晴川書院)에 제향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용담선생문집(龍潭先生文集)』의 권두에 정래석(鄭來錫)이 쓴 1편의 서문과 권말에는 저자의 9세손 박인현(朴寅鉉)과 박윤현(朴允鉉), 그리고 후학 장석영(張錫英)이 쓴 3편의 발문이 있다. 서·발문에 따르면, 박규환(朴奎煥)이 집안에 소장된 유고를 모아 편집하여 간행을 도모하였으나 중간에 박규환이 간행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그 후 10년 뒤 1911년 저자의 9세손 박인현과 박윤현 등에 의하여 간행하게 되었다.

[형태/서지]

7권 3책의 목활자본이다. 판식은 사주 쌍변(四周雙邊)으로 계선이 있으며, 상하백구 상하내향사판화문흑어미(上下白口 上下內向四瓣花紋黑魚尾)이다. 크기는 32.1×21.4㎝, 반곽의 크기는 19.9×15.9㎝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20자이다. 권수제와 판심제는 모두 ‘용담선생문집(龍潭先生文集)’이다. 현재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립중앙도서관,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면우(勉宇) 곽종석(郭鍾錫)[1846~1919]이 지은 저자의 묘지명(墓誌銘)에 의하면, 저자의 저술로 「관혼촬요(冠昏撮要)」, 「정서절요(程書節要)」, 「육경여해(六經蠡海)」, 「심경촬요(心經撮要)」, 「상재만록(桑梓漫錄)」 등이 있으나 저자의 서재(書齋)인 모덕와(慕德窩)의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었다고 한다. 이 저술들은 현재 각종 서목(書目)에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도 서명만 남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보다 구체적인 저작 현황은 다음과 같다.

권1에는 부(賦) 4편[子路百世師賦/芝蘭賦/天門街看花賦/詠杜鵑寄平江賦]과 이민환(李民寏), 이민성(李民宬), 이호민(李好閔) 등과의 송시(送詩)와 증별시(贈別詩), 정구(鄭逑) 등에 대한 만시(挽詩), 그리고 영해부사(寧海府使) 시절과 진보(眞寶)에 우거하던 시절에 지은 시 등 총 102수가 수록되어 있고, 권2에는 1591년과 1603년의 중국 사행길에서 지은 시 175수가 수록되어 있다. 권3에는 교서(敎書) 1편[宣諭東京將士], 소(疏) 2편[斥湖南伯請和疏/萬言疏], 차(箚) 2편[辭執義箚/請設立成均館學制箚], 계(啓) 5편[請直奏倭情啓/赴行朝待罪啓/吏曹待罪合啓/辭冬至上使啓/憲府啓], 연설(筵說) 3편, 책(策) 1편(醫國策)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4에는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춘호(春湖) 유영경(柳永慶) 등을 비롯해 정구(鄭逑), 남이공(南以恭) 등의 문인들과 국정에 관한 일을 주고 받은 등 서(書) 11편[與梧里李相國/ 與春湖柳相國/答鄭道可/與南子安/與鄭輝遠/與文順甫/答河元龍/答河元龍/答文子善/與李子韶/與或人], 예학서와 시집에 대한 서(序) 4편[泮東鄕飮禮序/金鶴峯海楂錄序/松雲大師詩集序/ 山海關詩序], 논(論) 3편[弟死不葬論/富鄭公不弔韓魏公喪論/趙普讀論語論], 제문 3편[祭鄭道可文/祭朴德惺文/祭文子善文], 행장(行狀) 1편[先考復齋府君行狀]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5에는 연보(年譜), 권6에는 노수신(盧守愼)이 지은 시를 비롯한 증시(贈詩) 5편, 이호민(李好閔), 이광정(李光庭), 김륵(金玏) 등이 사행을 떠나며 쓴 이별시 7편, 정구(鄭逑)와 문위(文緯)의 서(書), 저자에 대해 이언영(李彦英) 등이 쓴 만사(挽詞) 7편, 이호민(李好閔) 등이 쓴 제문(祭文) 2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7에는 저자에 대해 조경(趙絅)이 쓴 행장, 신익황(申益愰)이 쓴 유사(遺事), 강현이 쓴 신도비명, 곽종석(郭鍾錫)이 쓴 묘지명, 여팔거(呂八擧)가 쓴 봉안문(奉安文), 상향축문(常享祝文), 황중형(黃中炯) 등이 쓴 청증시상언(請贈謚上言), 구석검(具錫儉) 등이 쓴 복청시상언(復請謚上言)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용담선생문집』의 저자는 홍문관의 실질적 책임자 부제학에 네 차례나 임명될 정도로 문장과 학식이 풍부한 인물이었던 만큼, 그의 문예의 정수와 학문적 성취가 오롯이 담겨있는 문집 내 저작들은 저자의 학문과 사상을 연구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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