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521
한자 心山遺稿
영어공식명칭 Simsanyugo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세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73년연표보기 - 『심산유고』 간행
소장처 국사편찬위원회 - 경기도 과천시 교육원로 86[중앙동 2-6]
간행처 국사편찬위원회 - 경기도 과천시 교육원로 86[중앙동 2-6]
성격 시문집
저자 김창숙(金昌淑)
편자 김황(金榥)|허선도(許善道)
간행자 국사편찬위원회
권책 5권

[정의]

1973년 간행된 성주 출신 독립운동가이자 유학자인 김창숙의 시문집.

[저자]

심산 김창숙은 1879년 경상북도 성주군 사월리[현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에서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의 13대로 후손으로 태어났다. 부친 호림(頀林)과 모친 장씨(張氏) 사이에서 태어난 김창숙의 자는 문좌(文佐)이고, 중국 망명 시절에는 심산(心山)이라고 직접 이름을 지어 불렀다가, 일제의 고문을 받고 나와서는 스스로를 벽옹(躄翁)이라 불렀다. 1905년 스승 대계(大溪) 이승희(李承熙)와 함께 을사오적(乙巳五賊)을 규탄하는 상소를 올렸고, 대한협회 성주지부를 조직했으며, 성명(星明) 학교를 세워 신교육을 보급했다.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두문불출하며 유학(儒學)에 전념했다. 1919년 3.1 운동 직후에 파리 강화회의에 보내는 장서(長書)를 들고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 운동에 헌신했다. 1927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지독한 고문을 받고,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이후 집행정지로 풀려나 대구, 울산 등지에서 요양하다가 몇 년 뒤에 성주 고택으로 돌아왔다. 그 뒤에도 비밀결사인 건국동맹(建國同盟)의 남한 책임자로 활동하다가 해방 직전에 다시 체포되어 왜관경찰서에서 해방을 맞았다. 건국 활동에 참여했으나 정치적 상황과 뜻을 달리하여 성균관과 성균관대학교의 설립을 중심으로 유학 재건에 전념했다.

[편찬/간행 경위]

『심산유고(心山遺稿)』심산 김창숙의 친필인 『심산만초(心山謾草)』, 『벽옹만초(躄翁謾草)』 등이 초고 형태로 전해지다가 김창숙 사후에 유림단 동지였던 중재(重齋) 김황(金榥)[1896~1978]이 편차하여 문집의 형태를 갖추었고, 이후 허선도(許善道)[1927~1993] 교수의 보완 작업을 거쳐 1973년 국사편찬위원회 한국 사료 총서로 간행되었다.

[형태/서지]

5권의 필사본 유고(遺稿)로,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5권으로 편집 간행된 『심산유고』의 제1권에는 3편의 사(詞)로 시작하며, 시는 대략 240의 시제(詩題)로 고적(古跡)에 대한 감회, 시사(時事) 비판, 만사, 평소 감회 등의 시편들이 많이 보인다. 제2권은 모두 92통의 서간문이 수록되어있다. 대체로 사우(師友)와 친척들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글로, 당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끊임없는 근심과 선비로서의 인생관을 표현한 글들이 많다. 제3권은 9편의 서문(序文), 5편의 발문(跋文), 8편의 기문(記文), 3편의 상량문(上樑文), 송(頌) 1수, 명(銘) 2수, 10편의 고유문(告由文), 29편의 제문(祭文)이 들어 있다. 제4권은 10편의 비문(碑文), 2편의 묘지명, 8편의 묘표(墓表), 19편의 묘갈명, 2편의 행장(行狀), 유사(遺事) 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5권은 3편의 잡기(雜記)와 4편의 잡저(雜著) 그리고 부록으로 편집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심산 김창숙의 글들은 사실에 충실하여, 우리나라 항일 독립 운동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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