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청년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336
한자 星州靑年會
영어공식명칭 Seongju Youth Association
이칭/별칭 성주청년동맹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허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1년 6월 22일연표보기 - 성주청년회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28년 5월 13일연표보기 - 성주청년회 해체
최초 설립지 성주청년회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지도보기
성격 청년 단체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에 있었던 청년 단체.

[설립 목적]

성주청년회는 회원 친목 도모, 풍속 개량, 덕육(德育) 함양, 청년 권익 옹호, 사회의식과 민족의식 함양 등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변천]

1920년 4월 성주면 유지 서병우(徐丙祐)와 배상연(裵相淵) 등이 청년 단체의 설립에 나섰고, 1921년 6월 22일에 성주공립보통학교에서 회원 70여 명이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출범하였다. 설립 당시 간부진은 회장 이기원(李基元), 부회장 도문환(都文煥), 총무 배상염(裵相濂), 이사 10여 명 등이었다가, 10월 임시 총회에서 회장 김원희(金元熙), 부회장 배동옥(裵東玉), 총무 이익주(李翊柱)와 배상연 등으로 개편하였다.

1921년 12월에는 회장 김원희, 부회장 배동옥, 총무 배상염, 서기 이덕봉(李德鳳), 교풍부장 서병우, 문예부장 배상준(裵相準), 편집부장 이계수(李啓受), 사교부장 송필용(宋弼用), 회계부장 배준기(裵準琪), 운동부장 백명기(白明基), 평의장 도준기(都峻模) 등이었다. 회원은 150여 명에 이르렀다. 1924년 무렵에는 회장 서병우, 서무부 도문환·서병우, 운동부 배상준·이근화(李根和), 문예부 이덕봉·도세환(都世煥), 재무부 도인환, 교풍부 이태국(李泰國)·이형돈(李炯敦) 등이었다.

이후 성주청년회는 회원들의 관심과 참여가 저조하여 총회도 열지 못할 정도로 침체되어, 1925년 봄에 관심 없는 회원을 정리하고 조직 체계와 운영을 기존 회장제에서 위원제로 전환하였다. 1928년 고립적이고 분산적인 청년 운동에서 벗어나 역량 결집을 통한 조직적인 청년 운동을 펼치기 위해 청년동맹의 결성을 결정하였다. 1928년 5월 9일 성주청년동맹창립준비위원회 회의에서 마천리(馬千里)·이봉(李棒)·정혁(鄭革)·이소(李笑)를 준비 위원으로 선출하고, 임시 집행부 구성, 규약 작성, 맹원 모집, 청년회 해체 등을 결의하였다. 같은 해 5월 13일 성주청년동맹이 결성되면서 지부로 전환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설립 목적에 따라 강연회 개최, 도서관 건립 등을 통해 청년과 지역민의 봉건 의식을 없애고, 근대 지식과 사상을 전파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강연회는 지역 유지나 청년들이 직접 강연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부분 ‘조선학생대회’, ‘조선청년회연합회’ 등의 외부 강연단의 강연으로 이루어졌다.

청년회는 문화 운동의 일환으로 경제적인 형편이 어려운 청년들을 포함한 지역 주민들을 위해 노동 야학을 운영하였다. 야학은 문맹 타파를 위한 기본적인 교육뿐만 아니라 봉건 의식 타파 및 현실 인식 능력 배양에도 힘썼다. 또한 지역 현안 해결에도 힘쓰고, 1927년에는 중국 만주에 거주하는 조선인의 권익 옹호 활동을 벌이는 등 전국 차원의 사회 현안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최초로 결성된 청년 단체였고, 근대 지식을 보급하며 청년을 포함한 지역 주민의 봉건 의식 타파, 현실 인식 능력 배양, 민족의식 고취 등에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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