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151
한자 鳳溪里
영어공식명칭 Bonggye-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봉계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봉계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봉계동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봉계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3.74㎢
가구수 221가구
인구[남/여] 412명[남 216명/여 196명]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금암동, 명간동, 정곡동, 대가면 본리동 일부를 통합하고 ‘봉계동(鳳溪洞)’을 개설하였는데, ‘봉계’의 지명 유래는 찾기 어렵다. 봉계1리의 자연 마을로 솟질[솥질·정곡(鼎谷)]이 있고, 봉계2리의 자연 마을로 발간이[명간(明澗)], 봉계3리의 자연 마을로 집실[가곡(家谷)] 등이 있다.

옛 명간방(明澗坊)의 중심지였던 솟질은 봉계리가 시작된 마을로 발간이 북서쪽에 있다. 지형이 솥과 같이 생겼으며 마을 앞 도랑에 너비 1.2m, 길이 3m 정도의 솥 모양 돌이 있어 솥질이라 이름하였다. 고려 전기 이견수(李堅守)가 들어와 살면서 ‘솥 정(鼎)’ 자를 붙여 정곡(鼎谷)이라 하였다. 조선 연산군(燕山君) 때 창원 유씨(昌原兪氏) 유양필(兪良弼)이 김천에서 입향하였다. 숙종(肅宗) 때는 안동에서 광주 탁씨 탁선의(卓善儀)가 입향하였고, 그 후손이 지금도 살고 있다. 선조(宣祖) 때 청도(淸道) 백곡(栢谷)에서 김해 김씨(金海金氏) 김풍(金豊)이 입항하였는데, 그 후손이 지금도 거주하고 있다.

발간이는 솟질에서 남동쪽 약 1㎞ 거리에 있는 마을이다. 100m 정도 구릉지가 마을의 남쪽을 둘러싸고 북쪽에는 이천 가의 넓은 평야와 접한다. 마을 이름 발간이는 1630년경 이유형(李惟亨)이 입거하여, 마을 앞 들이 넓고 달이 뜨면 다른 마을보다 밝다 하여 밝안[발간]이라 부른 것이 그 시작이라고 전한다. 이로부터 30여 년 후 이유형의 아들 이보림(李寶林)이 정곡(鼎谷)과의 사이에 있는 마을 앞 들이 넓고 밝다 하여 명간(明澗)이라 불렀다고 한다. 집실은 발간이에서 남쪽으로 약 700m 떨어진 곳에 자리하며, 고려 전기 판중추부사를 지낸 참지문하사(參知門下事) 남양 홍씨(南陽洪氏) 홍언수(洪彦修)가 마을을 이룩하여 ‘집이 있는 골짜기’라는 뜻으로 집실이라 이름하였다는 설이 있다. 한편 고을 사람들은 한양에서 대가의 집이 왔다 하여 대가곡(大家谷)이라 칭하였다고도 한다. 이후 조선 시대에 해평군 김수의 아들 김관상(金寬尙)과 참의 조원수(趙元壽)가 입향하였고, 선조 때는 인동 장씨(仁同張氏) 개옹(㝏翁) 장봉한(張鳳翰)과 그 아들 지분헌(知分軒) 장이유(張以兪)가 입향하여 장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형성 및 변천]

통일 신라 이후 벽진군(碧珍郡)에 속하였다. 고려 전기인 940년(태조 23) 성주군과 통합되어 경산부(京山府) 명간방[밝간이방]에 편제되었다. 1555년(명종 10) 목사 노경린(盧慶麟)이 명간방과 암회방(巖回坊)을 합하고 명암방(明岩坊)이라 하였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금암동, 명간동, 정곡동 등과 합하여 봉계동으로 하고 명암면과 운곡면(雲谷面)을 합한 벽진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벽진면 봉계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봉계리는 솟질 서쪽 당산[95.6m]을 비롯하여 마을의 배후 지역인 남동쪽을 따라 산지가 분포하고, 북동쪽으로는 이천의 범람원, 남쪽으로는 흥산천의 범람원이 형성되어 있다. 범람원을 구성하는 토양은 대부분 하천 범람으로 인한 충적토이며, 경사는 0~2%로 평탄지이다. 배후 산지는 경사 15~30%의 중생대 백악기에 관입한 경상계 불국사층군 화강 섬록암이고, 범람원은 신생대 제4기 충적층으로 회색의 배수가 매우 불량한 사양질 토양이다.

[현황]

봉계리벽진면의 남쪽에 자리하여 북부와 동부, 남부는 벽진면수촌리가암리, 대가면 용흥리, 서부는 대가면 흥산리, 벽진면 매수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3.74㎢이며, 봉계1리와 봉계2리, 봉계3리 3개 행정리에 221가구, 412명[남 216명, 여 19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벽진면 행정복지센터가 자리한 수촌리에서 남쪽으로 약 1㎞ 떨어진 곳에 있다. 솟질 동쪽과 발간이 북동쪽, 그리고 북쪽 경계지인 이천을 따라 도로가 조성되어 있다. 봉계리에는 인동 장씨 70가구, 성주 이씨 55가구 등이 살고 있다.

문화 유적으로 해동청풍비(海東淸風碑)[경상북도 기념물]가 있고, 솟질에 흙을 모아 조산(造山)해서 나무를 심은 옛날의 동제 터인 대경정(大卿亭)이 있다. 이 외에도 조선 숙종(肅宗) 때 무과에 급제하여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른 이태기(李泰起)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한 은계재(隱溪齋), 조선 후기 유학자인 암재(巖齋) 이광택(李光宅)과 벽계(碧溪) 이광익(李光益) 형제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한 합모정(合慕亭), 조선 후기 유학자인 죽오(竹塢) 장도헌(張道憲)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한 죽오재(竹塢齋), 조선 후기 유학자인 침천(枕泉) 장우헌(張羽憲)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한 침천재(枕泉齋)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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