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149
한자 樹村里
영어공식명칭 Sucho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해평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해평동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해평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0년 4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해평리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로 개칭
성격 법정리
면적 2.97㎢
가구수 471가구
인구[남/여] 818명[남 412명/여 406명]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조선 전기 연산군(燕山君) 때 원정(圓亭) 여희림(吕希臨)[1481~1553]이 영봉산 및 천곡서원(川谷書院)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니 고목이 된 많은 나무가 우거져 있어 수촌(樹村)이라 명명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천곡서원여희림의 사후에 건립되었으므로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여희림이 성주 불뭇골[야동(冶洞)]에서 이곳으로 이주한 후 마을 앞에 ‘징계나무’가 무성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하여 수촌이라 불렀다는 유래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수촌1리의 자연 마을로 대천(大川)과 수촌[증거(增莒)·원정(元亭)·해평동(海平洞)]이 있고, 수촌2리의 자연 마을로 석지(石旨)[돌마], 수촌3리의 자연 마을로 봉산(鳳山)과 상수촌(上樹村), 하수촌(下樹村), 수촌4리의 자연 마을로 중동(中東)과 중평(中平), 부흥리(復興里), 행촌(杏村)이 있다.

대천은 수촌리의 최남단에 자리하며 이천(伊川)이 가까이 있어 대천이라 하였는데, 이천 제방이 만들어지면서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하였다. 수촌은 고려 때 성산인 여양곡이 마을을 개척하였다는 설과 여희림이 마을을 만들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석지는 약 1400년 전인 조선 전기 여희림이 입향하면서, 마을을 “돌과 같이 굳혀야 한다.”는 뜻에서 석지라 하였다고 전한다. 봉산은 신라 후기 벽진 이씨(碧珍李氏)의 시조 이총언(李悤言)이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당시 마을 앞에 큰 소가 있어 봉이 날아오고, 마을 뒤에는 영봉산이 있다 하여 봉산이라 불렀다. 상수촌과 하수촌은 수촌이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어 북쪽에 있는 중동·중평·부흥리·행촌을 상수촌, 남쪽에 자리한 봉산·석지·수촌·대천을 하수촌이라 부르게 되었다.

중동은 1400년경 성주 도씨(星州都氏) 도윤길이 칠곡군에서 이거한 곳으로, 수촌리의 중앙에 있는 마을이라 중동으로 불렀다. 중평은 부흥리와 중동 사이에 있는 마을이며 큰들 가운데 있는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부흥리는 1600년쯤 도한국(都翰國)이 만들었으며, 모든 마을 사람이 부자가 되고 후손들이 흥한다는 뜻으로 부흥리라 하였다. 행촌은 1400년쯤 중동과 같이 형성된 마을로 마을 앞에 살구나무가 많아 행촌이라고 불렀다.

[형성 및 변천]

고려 전기인 940년(태조 23) 명간방(明澗坊)[밝간이방]에 속하였다. 1555년(명종 10) 목사 노경린(盧慶麟)이 명간방과 암회방(巖回坊)을 합하여 명암방(明岩坊)이라 하였다. 1895년(고종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해평동으로 하고 명암면과 운곡면(雲谷面)을 합한 벽진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벽진면 해평리가 되었다. 1990년 4월 수촌리로 개칭하였다.

[자연환경]

수촌리는 북쪽 영봉산[229.1m] 일대에 분포하는 약 200m 높이 이하의 산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평야지로 이루어져 있다. 평야지는 수촌리의 남쪽 경계를 따라 남동류하는 이천과 북쪽 경계를 따라 남동류하는 운곡천의 범람으로 인해 만들어진 충적 평야이다. 충적 평야를 구성하는 토양은 대부분 하천 범람으로 인한 충적토이며, 경사는 0~2%로 평탄지이다. 하천 북서쪽 지역은 어두운 황갈색의 배수가 약간 양호한 사양질 토양이고, 나머지 지역은 암회색의 배수가 약간 불량한 사양질 토양이다.

[현황]

수촌리벽진면의 중남부에 자리하여 동서남북이 벽진면운정리가암리, 봉계리, 외기리, 매수리, 자산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2.97㎢이며, 수촌1리와 수촌2리, 수촌3리, 수촌4리 4개 행정리에 471가구, 818명[남 412명, 여 40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천이 만든 충적 평야갸 넓게 펼쳐져 있는 평지에 자리한 농촌 마을로 북부의 상수촌, 남서부의 중수촌[봉산], 남부의 하수촌[원정, 석지, 대천]으로 구분된다. 남쪽에 국도 제30호선이 서-남동 방향으로 개설되어 있고, 이곳에서 지방도 제913호선이 북쪽으로 빠져나와 마을 중심지를 지나 북동쪽 자산리로 이어져 있다. 벽진면 행정복지센터를 비롯하여 벽진파출소, 벽진농협이 있고, 교육 기관으로 벽진초등학교벽진중학교가 있다.

문화 유적으로 1516년(중종 11) 여희림이 제자들에게 여씨 향약(呂氏鄕約)을 교육하기 위하여 창건한 월회당(月會堂)[경상북도 기념물], 제남(霽南) 도상욱(都尙郁)[1732~1814]이 1795년(정조 19) 성주목사 성종인의 지원을 받아 완공한 정자인 성주 기국정(星州杞菊亭)[경상북도 문화재 자료]이 있다. 이 외에도 선조들을 추모하기 위한 경수당(敬收堂), 둔천재(遯川齋), 만취당(晩翠堂), 경졸재(景拙齋), 석계정(石溪亭), 호계정(虎溪亭), 국반재(菊伴齋), 원모재(遠慕齋), 환성재(喚惺齋), 모성재(慕誠齋), 소술재(紹述齋), 소학재(小學齋), 숭의재(崇義齋), 행산재(杏山齋), 만연재(漫然齋), 요래정(樂來亭), 추모재(追慕齋), 합경당(合敬堂)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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